[미디어펜=한기호 기자]정부가 낙태수술(인공 임신중절수술)을 불법으로 시행한 의사에 대한 자격정지 처분을 기존 1개월에서 최대 12개월로 늘리려 했던 계획을 백지화했다.

보건복지부는 전날(18일) "불법 낙태수술에 대한 행정처분 기준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관련 법령은 입법예고 중으로 구체적인 행정처분의 대상 및 자격정지의 기간은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적으로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이르면 19일 차관 주재로 의료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한 후 최종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복지부는 지난달 23일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며 불법 낙태수술 집도를 8가지 '비도덕적 진료행위' 중 하나로 포함시켰다. 

현행 모자보건법상 낙태는 ▲유전적 정신장애·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준강간 ▲근친상간 ▲산모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험한 경우 등 5개항목만 예외적으로 허용될 뿐 나머지는 불법이다.

이번 개정안이 확정되면 불법 낙태 사실이 적발되면 통상 1개월까지였던 자격정지 조치 기간이 최대 12개월로 늘어날 예정이었다.

복지부는 그러나 입법예고 이후 의료계와 여성계를 중심으로 낙태와 의사 처벌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관련 규정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안으로 개정안에 낙태를 진료행위 항목에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며 "낙태 금지가 사문화된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의사들만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반발한 바 있다.

의사 처벌 논란은 낙태 합법화 논쟁으로 번졌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 단체들은 자기결정권 존중을 내세워 낙태 관련법 개정을 요구했다. 15일 서울 보신각 앞에선 400여 명이 참가한 낙태죄 폐지 요구 집회도 열렸다.

여론이 악화되자 복지부는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정진엽 장관은 지난 14일 열린 종합국감에서 "낙태가 필요한 부분에 퇴로를 만들어 놓고 규제를 해야 한다고 판단해 (입법예고안의)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복지부에선 불법 낙태는 형법상 위법이므로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처벌 수위를 종전대로 유지하거나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따른 자격정지 기간을 세분화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일에 대해 복지부가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의 처벌 수위를 높이는 과정에서 별다른 사전 논의나 고민 없이 불법 낙태도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추가해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복지부가 입법예고 전에 산부인과의사회는 물론 대한의사협회와도 논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복지부 관계자도 “관련 단체와 상의 없이 낙태 내용을 집어넣어 문제가 생긴 측면이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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