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선량한 관리자 의무다하면 형사처벌안해, 상법 경영판단 원칙 명문화 시급

   
▲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나라 기업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쯤으로 스스로를 비유하고는 한다. 정치적 시류, 사회 여론에 따라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하고 전과자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법은 지켜야하고 준법경영은 기업 리스크 예방의 핵심이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배임죄이다. 배임죄는 적용범위와 기준이 애매하고 모호해서 기업인들에게 ‘걸면 걸리는 죄’로 인식될 정도로 공포와 원망의 대상이다. 기업인들이 경영을 하다가 배임죄로 처벌을 받은 사례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허다하다. 설령 무죄로 끝난다 해도 압수수색에서부터 기나긴 검찰조사와 재판과정을 거치면서 해당 기업인과 기업은 상처만 남을 뿐이다.


개념적으로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범죄이다. 우리나라에서 배임죄는 형법(업무상 배임), 특정경제가중처벌법(특정재산범죄의 가중처벌), 상법(특별배임죄)에 널리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형벌로 강하게 다스리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를 위배하면 배임죄라 하는 것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범죄 요건의 구체성, 명확성이 확연하게 결여되어 있다. 오늘 내가 내린 결정이 나중에 정상적인 경영판단으로 인정될지 아니면 배임죄로 처벌될지 알기 어려운 구조이다. 기업인들이 매일매일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다 자조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걸면 걸리는 배임죄가 우리나라 기업인들을 보신경영, 소극적 의사결정으로 내몰고 있다. 신사업 진출, 대형 인수합병(M&A), 구조조정 등의 의사결정이 나중에 문제가 되면 혹시라도 배임죄 시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배임죄의 이러한 폐단을 없애지 않는 한 기존 기업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기업가정신은 발현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배임죄를 운영하는 다른 나라에서는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의무를 다한 경우에는 나중에 경영판단 실패로 귀결되어도 형벌로 다스리지 않는 ‘경영판단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을 법에 명시하거나 판례상 원칙으로 확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잠시 얘기를 돌리면, 지난 1월 18일자,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세계 최대의 맥주 그룹인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I)가 한국의 동양맥주를 미화 58억 달러에 재인수한다는 기사이다. ABI는 2009년 7월, 미국의 안호이저-부시와 벨기에의 인베브가 합병하면서 출범했다. 합병과 함께 부채조정의 한 방안으로 그 당시 ABI는 동양맥주를 사모펀드인 KKR 컨소시움에게 18억 달러에 매각하였는데 5년 만에 당시 매각금액의 3배를 주고 되샀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동양맥주가 최근 괄목 성장했으니 매각, 매입 가격의 차이는 그렇다 치자. 흥미로운 점은 ABI 경영진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은데, 2009년 동양맥주 매각으로 부채조정에 성공하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25억 달러의 보너스를 챙겼고 사장 혼자서 약 3억 달러의 보너스를 챙겼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동양맥주를 되사들이면서 또 다시 보너스를 챙기게 되었다고 한다.

   
▲ 한국의 기업인들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배임죄로 인해 매일 교도소 담장위를 걷는 심정이라고 하소연한다. 선진국들은 기업인이 선량한 관리자로서 의무를 다할 경우 형서처벌을 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대통령은 창조경제 실현과 성장회복을 위해선 기업인들을 과도하게 옥죄는 배임죄 관련법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기업인의 정당한 의사결정과 경영판단에 대해선 배임죄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인이 위축되지 않고 역동적인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중순 전경련 회관 준공식에 참석, 허창수 회장 등 회장단과 창조경제 실현과 규제완화 방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만약 한국의 기업인이 이리 했으면 어찌 되었을까? 가정은 위험한 놀이지만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회사(ABI)에 기회손실을 끼쳤고 대표이사가 사익을 챙기었다는 이유로 배임죄 시비에 휘말리면서 압수수색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미국은 경영판단 원칙을 확고하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인지, 이코노미스트의 분석내용도 그에 준하여 판단하고 있다. 보너스 금액이 비정상적으로 높기는 하지만 이는 ABI의 주주들이 승인한 사안이고, 합병 이후 ABI의 주가는 6배나 오르면서 누구도 손해를 본 측이 없으니 시비할 대상이 아니라는 식이다.
 

요약하면, 우리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다시금 재도약의 길로 나서려면 기업인의 기를 살려야 한다. 기업인들의 기를 살리기 위해 뭔가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불리한 제도적 환경을 바로 잡기만 해도 훨씬 나아질 것이다. 우리나라 배임죄의 문제는 익히 많이 알려진 사안이다. 몰라서 안 고치는 게 아니라 행동(제도개혁추진)에 옮겨야 할 때를 놓치고 있는 게 문제다. 더 늦기 전에 기업인의 경영판단에 대해서는 배임죄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또는 상법에 경영판단원칙을 명시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