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새누리당이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이후 지도부 사퇴를 둘러싸고 좀처럼 전열을 가다듬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으로 계파 구분이 다소 흐트러지긴 했지만, 지도부를 장악한 친박(친박근혜)계와 이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비박(비박근혜)계의 대립 구도는 여전하다.

일단 친박계는 빗발치는 지도부 사퇴 요구를 정면 돌파할 태세다.

현직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검찰수사를 받게 된 데다 청와대 참모진과 정부 각료들이 대거 교체되는 시기에 당이라도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논리에 바탕을 뒀다.

이정현 대표는 전날 의원총회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면서도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시간을 갖고 중진 의원들과 대화한 뒤에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사퇴 시점은 다음 달, 또는 내년 초가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친박계 내부에서 나온다.

특히 비박계의 '이정현 때리기' 이면에 비박계의 좌장 격인 김무성 전 대표의 측근 그룹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게 친박계 일각의 시각이다.

결국 현 지도부를 흔드는 게 김 전 대표에게 차기 당권과 대권을 몰아주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비박계는 이런 친박계의 현실 인식이 "참담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용태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중국의 전설적 명의인 편작의 고사를 인용해 "도저히 인력으로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은 환자가 교만방자(驕慢放恣)하여 스스로 병을 진단하고 사리(事理)를 논하지 않는 것이 첫째이고, 무당의 말은 믿고 의원의 말을 믿지 않는 고집이 마지막"이라고 꼬집었다.

하태경 의원도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세 번째 사과까지 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며 "대통령이 상황의 심각성을 여전히 모르신다면 여당 의원으로서의 고뇌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비박계 의원들은 이르면 오는 7일 초·재선과 중진을 망라한 모임을 추진키로 했다. 지도부에서 유일한 비박계인 강석호 최고위원도 예고대로 이날 사퇴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와 당내 '투톱'을 형성해온 정진석 원내대표마저 이 대표의 사퇴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서, 새로운 변수가 될 지 주목된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의 딸 결혼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에게 '당신 물러나라'는 말은 못하는 것이지만, 당이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며 "우리 지도부로는 좀 어렵지 않겠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특히 "당 지도부와 원내 지도부가 모두 물러나는 게 좋다"며 "이 체제로는 갈 수 없지 않겠냐. 일신해야 한다"고 '동반사퇴'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미 전날 의총 도중 내년도 예산안 처리와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마치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내에서 현 지도부가 임기를 채워야 한다는 의견이 계파를 불문하고 거의 없다는 점에서 시기를 못 박지 않은 정 원내대표의 발언은 원론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정 원내대표가 이날 이 대표와 자신의 '동반사퇴'를 거론한 대목은 예사롭지 않다는 시각이 나온다.

당초 중립 성향이었던 정 원내대표는 정기국회 개회 이후 대야 투쟁과 최순실 파문 속에서 줄곧 친박 지도부와 호흡을 같이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사퇴 거론은 이 대표에게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얘기다. 지도부 퇴진을 요구해온 비박계로서는 상대적으로 힘을 얻는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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