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사퇴 압력을 받았다고 인정하면서 이런 설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조 회장이 최씨 사업을 도우려는 문체부 고위관계자의 요구를 거부하고 한진그룹 차원에서 매출액에 비해 적은 출연금을 미르재단에 내는 바람에 비선 실세로부터 미운털이 박혀 한진해운 구조조정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6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구조조정 초기만 해도 한진해운의 회생 가능성이 현대상선보다 높게 점쳐졌다.

두 회사 모두 유동성 문제가 심각했으나 선대 규모나 해운업계에서의 입지 등 면에서 한진해운이 우위를 보여서다.

당시 물동량 기준으로 한진해운은 세계 7위, 현대상선은 17위였다. 또 한진해운은 자율협약 개시 조건 중 하나인 해운동맹 가입을 먼저 완료한 상태였다.

이 무렵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펴낸 보고서에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중 하나를 살린다면 한진해운을 살리는 것이 유리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는 양대 국적선사 중 한 곳이 살아남는다고 가정할 경우 한진해운이 생존하면 시장점유율이 1.9% 줄지만현대상선 생존 시에는 4.1%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후 상황이 급변하면서 한진해운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을 고가에 매각하면서 재기 카드를 쥐었다.

현대증권은 일본계 사모펀드에 6500억원에 매각하려던 것이 불발됐다가 갑자기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1조2500억원에 KB금융지주에 팔렸다.

비슷한 시기 한진해운은 내년까지 1조2000억원의 운영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현대상선과 달리 처분할만한 자산도 마땅치 않았다.

두 선사의 처지가 뒤바뀌면서 한진해운의 상황이 더 나쁘다는 우려가 이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현대상선은 6월 용선료 협상을 마무리한 데 이어 해운동맹 가입 사전단계인 공동운항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자율협약 조건을 모두 이행했다.

한진해운은 운영자금 조달을 위한 자구안을 마련한 뒤 정부에 300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고 결국 8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한진해운의 갑작스러운 법정관리로 '물류대란'이 벌어졌으나 정부는 사태를 수습하지 못해 사전 준비가 미흡했음을 드러냈다.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해운업은 수십 년간 쌓아온 네트워크와 신뢰도를 한순간에 잃었다. 3000억원 지원을 거부한 정부는 뒤늦게 6조5000억원을 지원해 해운업을 살리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당초 이런 구조조정 과정이 이해하긴 어렵지만 금융당국의 원칙론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과라는 것이 업계 평가였다.

그러나 비선실세 논란이 불거지면서 여기마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진해운 노조는 현대증권이 고가에 매각된 것이 비정상적인 거래라고 보고 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현대증권에서 사외이사로 일했다는 점까지 언급하며 모종의 영향력 행사가 있었을 거라고 주장한다.

노조는 이 밖에 현대상선이 해운동맹 본 가입에 성공하지 않았는데도 채권단이 자율협약 조건 이행으로 간주한 것 역시 의도적인 '현대상선 살리기'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조양호 회장이 최순실씨에게 밉보여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넘어갔다는 의혹에 대해 "아니다"고 일축했다.

금융위원회는 용선료 조정, 사채권자 채무조정, 선박금융 유예, 채권은행 채무조정, 소유주 있는 회사의 자금부족은 자체 마련 등 지난해 말 이후 천명한 해운사 구조조정 원칙에 따라 한진해운을 처리했다고 밝혔다.

자구노력을 통해 부족자금을 마련한 현대상선과 달리 한진해운은 부족자금이 1조∼1조3000억원으로 추정됐지만 4000억∼5000억 원의 자구안을 제시했으며 이마저도 집행이 불투명했다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주인인 조 회장의 정상화 의지가 미흡했다는 것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도 최선을 다했지만 조 회장과 한진해운 측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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