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혈전의 불완전한 분풀이보다는 이성적인 완전연소로 뒷끝 없는 매듭을
   
▲ 이원우 기자
불을 손에 넣고서야 문명은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인간이 불을 완벽하게 정복한 건 아니다. 야만스럽게 달아오른 붉은 화염이 문명의 이기와 생명을 집어삼키는 광경을 우리는 여전히 본다.

불꽃이 붉게 보이는 이유는 '불완전연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명의 불꽃은 붉지 않다. 파란색이다. 뒤끝이 남지 않는 완전연소의 컬러. 젠틀해 보이지만 불꽃의 온도는 파란 쪽이 더 높다.

지금,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대한민국을 붉은 화염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대통령이 사과를 하면 할수록 분노는 더욱 붉게 달아오른다. 불완전연소 특유의 그을음도 그림자처럼 커지고 있다.

두 번째 사과에서 대통령이 말한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자괴감이 든다"는 표현은 저잣거리의 조롱으로 수없이 패러디되고 있다. 그럴 만한 일이다. 저건 사실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들이 해야 할 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더러 '그러라고' 뽑아준 국민은 아무도 없었다. 대통령은 아직도 뭔가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을 할 것인가? (What is to be done?) 선택지는 셋이다. ①방치 ②하야 ③탄핵. 지금은 특히 ②가 탄력을 받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야는 좋은 방법인 것 같지 않다. 개인으로서의 대통령에 대한 '분풀이'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법치(法治)와의 거리가 너무 멀다. 

시작이 대통령 개인의 문제였을지언정 결말까지 그럴 순 없다. 필연적으로 이 문제는 대통령이라는 '아이콘'에 대한 이슈로 확대될 것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 대통령은 그만 두고 싶다고 해서 멋대로 그만 두고 도망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 가지 의혹이 있다. 지금 대통령의 하야를 종용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그저 '독재자의 딸'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그녀가 제 발로 권좌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본다면 그들의 가슴은 잠시 후련할지도 모른다. 허나 이미 그녀는 존재 자체로 하나의 헌법기관이며 역사의 계승자다. 스스로 다 던지고 내려와 모든 걸 끝내버릴 '기회'를 줄 수 없고 줘서도 안 된다. 하야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기권이고 법치주의의 후퇴이며 이성의 망각이다.

   
▲ 거리로 나서는 것은 당신의 자유다. 허나 그 이전에 묻겠다. 68년의 역사, 길게는 97년의 정통성을 야만의 붉은 화염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정돈되고 통제가 가능하며 뒤끝을 남기지 않는 '완전연소'다. /연합뉴스

공리주의적 측면에서도 하야는 나쁜 선택이다. 당장은 속 시원해 보이지만 19대 대통령에 대해서부터 이 옵션은 '선례'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 사태가 하야로 귀결된다면 앞으로 임기를 다 채우는 대통령을 보기는 힘들어질 확률이 높다. 대한민국은 좌우여야가 극심하게 분열된 상태임을 기억해야 한다. 붉은 분노는 그을음을 남기고, 하야는 복수를 부를 것이다. 

도저히 지금의 대통령으론 안 되겠다면 최선의 대안은 탄핵일 수밖에 없다. 국회에 의한 탄핵소추는 하야보다 많은 절차를 거친다. 이 문제의 주어(主語)를 '대통령'에서 '국민(국회)'으로 바꾼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감정이 격앙돼 있을수록 디테일은 중요하다.

헬조선이라며 불평을 하든 이민 가고 싶다는 한탄을 하든 일단 나라는 존립시켜야 할 게 아닌가. 이번 사안은 지금보다 은근한 감정 속에서, 보다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분위기와 함께 처리되어야 한다.

거리로 나서는 것은 당신의 자유다. 허나 그 이전에 묻겠다. 68년의 역사, 길게는 97년의 정통성을 야만의 붉은 화염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정돈되고 통제가 가능하며 뒤끝을 남기지 않는 '완전연소'다. 지금, 파란색 분노가 필요하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