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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누가 가짜 신화를 만들었나
평전 쓴 조영래의 과오…영웅만들기 프로젝트 노동의 신 반열 올라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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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6-11-14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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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주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신화,
그걸 만들어낸 조영래를 둘러싼 가짜 신화

발제자 홍수연 사무총장이 확인해준 대로 분신 노동자 전태일은 각급 학교 교과서에 이름을 올린 지 오래됐고, 한국의 위인 100인 중의 한 명이다. 그 바람에 산업화에 힘을 보탠 많은 이들의 역사적 무게보다 22살의 나이에 죽음을 자초했던 노동영웅 전태일의 비중을 더 높이 치는 이 나라의 뒤집힌 현실이 나는 숫제 두렵기조차 하다. 문제는 그게 구조화된 점이다. 종종 지적해온 대로 ‘지식-정보의 총체적 오염’형태로 완강하게 똬리를 틀고 앉은 게 지금의 상황이다. 
 
일테면 전국 255개 초중고 도서관에 있는 350만 권의 장서를 점검했던 교육전문가 조형곤이 제시했던 통계를 재확인해보라. 350만 권 장서 중 이승만 건국대통령에 관한 책이 고작 96권에 불과하니 차라리 희귀도서에 속하지만, 김구는 무려 4800여 권이나 됐다. 놀랍게도 전태일 책은 당당 1800여 권에 달했다. 죽은 전태일은 부활해 노동의 신(神) 반열에 올랐고, 그걸 넘어 정치적 상징 인물로 등극했다. 그걸 새삼 보여줬던 게 2012년 대선 당시 집권당 후보였다. 당시 야당의 과거사 공세에 내몰리던 박근혜 후보는 이렇게 밝혔다. 

전태일, 노동의 신(神) 반열에 오르다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 가치입니다. 그런 점에서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 발언 이후 박근혜 후보는 세 곳을 찾았음을 우린 기억한다. 우선 김대중 묘소를 참배했고, 노무현의 봉하마을도 찾아갔지만, 서울 청계천의 전태일 동상을 보러 가는 행보도 잊지 않았다. 노동권력 전태일의 위상은 그 정도다. 그런 전태일은 ‘아름다운 청년’으로 포장돼 영화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상품, 정치상품으로 팔려나간다. 정말 속상한 건 이 과정에서 잘못된 전태일 관련 정보에 오염돼 끝내 망가지는 이 땅의 청춘들인데, 이들은 전태일을 성자(聖者)로 추앙한 장기표 식의 찬양에 끝내 함몰되고 만다.
 
실제로 장기표는 <전태일 평전> 뒤에 실은 글을 통해 전태일이 단순한 투사가 아니라 “가히 성자의 인품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 (평전 332쪽) 사람으로 띄웠다. 호들갑이 몸에 밴 그는 <전태일 평전>을 “이 시대의 성전(聖典)”이자 “전태일 복음서”(335쪽)라고까지 규정했다. 그리고“바울이 없었더라면 예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요란한 표현과 함께 평전을 쓴 변호사 조영래를 떠받들었다. 이런 판단에 나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데, 기회에  묻는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둘러싼 신화를 발명해낸 조영래도 문제인데, 그는 세상에 알려진 것만큼 균형 잡히고 멀쩡했던 지식인이 맞는가? 그를 둘러싼 의구심을 두 가지 꼽자면, 우선 20대 설익은 시절 짧은 생각으로 <전태일 평전>을 썼고 그 ‘불량 평전’의 여파로 지금의 구조적인 해악 즉 지식-정보의 총체적 오염에 일조한 장본인이다. 둘째 그는 속물 리버럴리스트의 한 명이라서 민주화 굿판으로 날 새는 지금의 한국사회를 만든 사람의 하나로 지목해야 옳다. 폐암으로 사망하기 직전 몇 해 그는 민주화가 순수성을 잃은 채 좌파이념에 물드는 현상을 걱정했다지만, 그렇다고 1980년대 전후 대표적 지식인이자 활동가로서의 과오가 덮어지는 건 아니다.
 
우선 조영래가 쓴 <전태일 평전> 자체가 문제다. 무엇보다 “이 시대의 성전(聖典)”이자 “전태일 복음서”라고 이름 붙이는 것부터 부당하다. 부당해도 너무나 부당한데, 우선 내용이 너무 교조적이고 일방적이다. 장기표 식의 표현대로라면 <전태일 평전>은 “인간해방과 사회개혁을 위한 전태일의 투쟁”, 그리고 “투쟁 이전에 그의(전태일의) 진실되고 아름답고 성스럽기까지 한 삶”을 담았는데, 그건 특정 목적을 감춘 노동영웅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자백과 다름없다.

   
▲ 일반인들은 『전태일 평전』을 통해 만들어진 신화를 기억할 뿐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려는 노력조차 없었다. 그러는 사이 잘못 알려졌거나, 의도적인 목적으로 가공했거나, 혹은 선전선동을 위해 부풀려진 내용들이 무차별로 확대 재생산되어 오늘에 이르렀다./사진=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스틸컷


3류 평전 <전태일>, 그걸 쓴 조영래의 과오

일상 속에 살아있는 숨 쉬는 인간, 실물크기의 20대 초반 근로자 전태일의 모습은 이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지고 은폐됐다. 조영래 식의 싸구려 이분법도 <전태일 평전>을 읽는 젊은 독자들을 오염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선과 악, 옳고 그름으로 나누는 기계적 이분법은 이 평전 전체를 흐르는 논리인데, 10대 독자의 피를 끓게 할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역효과를 줄 뿐이다. 일테면 조영래가 ‘전태일 사상’이라고까지 명명한 “각성된 밑바닥 인간의 사상”(198쪽) “감동적인 민중관(觀)” 이라고 설명한 대목만 봐도 그렇다.
 
어느 날 아침 전태일은 사과 광주리를 머리에 인 채 시내버스를 타려고 차장과 실랑이하는 한 아주머니 모습을 봤다. 그게 전부다. 당시 자주 봤던 광경이고 일상적인 서울시내의 풍경일 수 있지만, 그걸 목도하는 충격을 전후해 전태일은 이른바 “각성된 밑바닥 인간의 사상”, “감동적인 민중관”의 전환을 겪는 걸로 평전은 2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주머니 모습을 보며 전태일은 급기야 통곡을 한다. 실랑이했다는 게 당사 상황의 전부다. 몸싸움으로 번졌다거나 버스에 올라타려다가 굴러 떨어지는 등 불상사가 벌어진 것도 아닌데도 뜬금없이 통곡을 했다?
 
조영래의 묘사능력 부족으로 설명이 짧거나, 아니면 지어낸 억지스러운 얘기란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어색함을 넘어 황당한 상황 설정이 아닐 수 없는데 가관은 그 다음이다. 전태일은 그 장면을 목도한 뒤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저 약하고 어질고 꾸밈없는 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표시했다는데, 다음의 이어지는 군더더기 설명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섣부른 논리 비약은 기가 찰 정도다. 
 
즉 사과장수 아주머니를 본 경험은 “아무리 정직하게 애써도, 아무리 근면 검소 절약했어도 이 권력있는 자, 부유한 자들이 판치는 사회현실 아래서는 이렇게밖에 될 수 없지 않았던가?”는 전태일의 위대한 각성을 낳았다는 것이다. 의인(義人)전태일 만들기에 열중한 탓에 도무지 납득이 안 가는 운동권 식 논리의 범벅이다. 그리고 사과장수 아주머니는 이렇게 묘사되는데, 20대 조영래의 수준이 한 눈에 파악된다. 섣부른 운동권 식 정의감에 들떠 중언부언하는데, 그런 게 평전 전체에 가득하다.

“그것은(아주머니 모습은) 아무 이상도, 희망도, 인간다운 삶의 보람도 지니지 못한 채 그저 버러지 같은 목숨을 이어보려고 아등바등 기를 쓰며 남과 다투며, 때로는 비굴하게 때로는 매몰차게 이웃을 대하며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품위니, 인격이니, 존엄이니 하는 것들과는 담을 쌓고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경멸당하는 모습이었다.”(198쪽)

평전 모순의 하일라이트, 분신자살

운동권 식 정의감에 중언부언하는 조영래 식 글쓰기의 모순이 가장 극명한 게 분신(焚身)자살 대목이다. 문장을 갓 익힌 듯한 20대 조영래의 아마추어 글이 문제의 1970년 11월 13일 상황을 매우 모호하고 혼란스럽게 서술하는데 그치고 있다. 평전의 그 대목을 복기해보자. 그날 평화시장에서는 500명 전후의 노동자들이 경찰들과 밀고 밀리는 국면이었다. 대열에서 빠져나와 “좀 뒤에 합류한다”던 전태일이 다시 등장한 뒤 바로 분신자살을 감행하는데, 그 대목이 이렇게 묘사돼 있다.

“약 10분 후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책을 가슴에 품고 내려왔다. 전태일이 몇 발자국을 내딛었을까? 갑자기 전태일의 등 위로 불길이 확 치솟았다. 불길은 순식간에 전태일의 전신을 휩쌌다. 불타는 몸으로 그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서성거리고 있는 국민은행 앞길로 뛰어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그는 몇 마디의 구호를 짐승의 소리처럼 외치다가 그 자라에서 쓰러졌다. 입으로 화염이 확확 들이찼던 것인지, 나중 말을 똑똑히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으로 변하였다. 이렇게 근로기준법의 화형식이 이뤄졌다. 쓰러진 전태일의 몸 위로 불길은 약 3분가량 타고 있었는데…”
 
요령부득의 묘사이고 구체성이 결여된 나쁜 문장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그중 결정적인 게 “전태일이 몇 발자국을 내딛었을까? 갑자기 전태일의 몸 위로 불길이 확 치솟았다. 불길은 순식간에 전태일의 전신을 휩쌌다.”는 대목이다. 이미 몸에 석유나 신나 등을 끼얹은 상황이었을텐데, 그 설명이 송두리째 생략됐다. 그 시점도 애매하다. 석유나 신나 등을 끼얹은 게 근로기준법 책자를 들고 나왔을 때인지 그 직후의 상황인지도 생략됐다. 무엇보다 자신이 직접 뿌렸는지 누구의 조력이 있었는지도 건너뛴다. “갑자기 전태일의 몸 위로 불길이 확 치솟았다.”는 요령부득의 설명만 나오니 답답할 뿐이다. 발제자 류석춘 교수는 이렇게 조심스럽게 지적하는데 충분히 의미있는 문제제기다. 

“이 마지막 결정적 순간에 관해서도 『평전』은 불분명한 대목을 남긴다. 석유를 뒤집어 쓴 전태일에게 불을 붙인 인물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인가? 다른 동료 운동가인가? 동료라면 누구인가? 『평전』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확인할 수 없는 전태일의 마지막 유언을 강조하며 끝을 맺는다. 2009년 신판으로 출판된 『전태일 평전』의 기록이다. 그러나 1983년 초판 『전태일 평전』은 이 부분의 내용이 전혀 다르다 (부록1 및 부록2 참조). 1983년 초판은 이 대목에서 김개남이 성냥불을 붙인 사실을 명확히 기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태일은 김개남의 도움을 받아 분신하였다. 그렇다면 김개남은 누구인가? 『평전』이 말하듯 이 이름은 가명이다. 그리고 앞에서 추론하였듯 김개남이야말로 학생운동 출신으로 노동운동 현장에 투신한 활동가 조직원일 가능성이 높다.”
 
류석춘 교수의 글은 전태일 분신이 외부세력이 개입한 기획 분신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이런 판단은 발제자 남정욱 교수도 마찬가지여서 1990년대 초 ‘유서대필’ 사건을 시작으로 유행처럼 번지던 운동권 대학생들의 자살을 보고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일갈했던 시인 김지하. 그리고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고발한 당시 서강대 총장 박홍 신부의 발언에 훨씬 앞서사 1970년대에 이미 기획 분신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상식이지만 현대사에서 기획 분신, 기획 살인 혹은 시체팔이의 흑역사를 우리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일테면 대구폭동을 포함한 해방 이후 대형사건은 반(反)대한민국 성향도 닮은꼴이지만, 시위 양상도 비슷하다. 결정적으로‘시체팔이’가 그 하나다. 대구폭동의 경우 당시 대구의대생 최무학 등 5명의 대학생들이 병원에서 콜레라로 죽은 사람들 사체 4구에 흰 시트를 덮은 다음 “이게 대구역에서 경찰에 맞아죽은 사람들”이라며 거짓소문을 퍼트렸다. 그게 시내를 뒤집어놓았고, 폭동의 불길을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 논란 속의 전태일은 잠시 건너뛰자. 대구폭동 30여 년 뒤인 광주5.18 때에는 시체 두 구가 활용됐다. 
 
5월21일 광주역에서 총에 맞고 난자된 상태로 발견된 김재화(당시 25세)-김만두(당시 44세)의 시체를 시민군은 리어카에 실어 끌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물론 이들의 시신에서는 나중 카빈총 탄환이 나왔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게 계엄군의 소행일 리는 없건만 이후 1990년대 ‘죽음의 굿판’으로 연결되는데, 어쨌든 반(反)대한민국 세력들의 시체팔이는 효과를 상당히 거뒀다. 문제는 다시 조영래로 돌아온다. 분명 기획 분신자살을 둘러싼 실체적 진실을 알고 있었을 그는 평전에서 의도적으로 은폐한 것일까? 이점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지금 <전태일 평전> 330쪽에 보면 출판사 편집부에서 쓴 글 ‘개정판을 내면서’의 다음 대목은 충분히 흥미롭다.
 
“저자는 평소에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연이어졌던 이 땅의 숱한 죽음들을 보면서 행여 이 책이 그러한 죽음들에 어떤 영향을 주지 않았나 자책하는 말을 되뇌이곤 했다고 한다.”

   
▲ 전태일은 1965년 가을 평화시장 안의 삼일사의 견습공(시다)로 취직하여 월급 1,500원을 받았다. 사직・해고와 취업을 반복하여 1970년 그의 월급은 23,000원이 되었다. 5년 사이에 15배 이상 증가한 것이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임금이 8배 상승한 것이다./사진=『전태일 평전』(조영래 著) 표지

외눈박이 지식인 조영래 자체가 멀쩡치 않다

전태일 신화를 발명해낸 조영래 자체가 균형 잡히고 멀쩡했던 지식인이 맞는가를 점검해보기 위해 불량도서 <전태일 평전>의 문제점과 별도로 속물 리버럴리스트의 한 명인 조영래의 이념 문제를 함께 거론해야 한다. 조금 전 지적처럼 그는 폐암으로 사망하기 직전 몇 해 동안 그는 민주화가 순수성을 잃은 채 좌파이념에 물드는 현상을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그건 그의 유고집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1991년 창비 펴냄)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런 걱정을 털어놓았다고 원로 언론인 남시욱 전 동아일보 기자는 증언하고 있다. 
 
“‘사회주의권은 이제 끝나가고 있는데도 우리의 젊은이들은 심지어 내 말까지도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이미 2,3 년 전부터 필자를 만날 때마다 (조영래는) 이런 얘기를 했다. 직업상 반체제 인사들과 노동운동가를 많이 접촉하는 그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우리 사회의 저변을 알고 있었다.”(366쪽)

민변 창설자의 한 사람인 조영래의 이념적 지향은 속단하기 어렵다. 일찍 죽었기 때문에 추한 모습을 안 남긴 행운아가 조영래이지만 냉정한 판단을 피할 수는 없다.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평소의 성향과 행동반경으로 판단하건대 그는 지금 좌익 원탁회의의 주요 멤버로 활동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속물 리버럴스트이기 때문이다. 또 그를 만나 강력한 영향을 받은 뒤 좌익으로 돌아선 ‘리틀 조영래’인 현 서울시장 박원순의 경우를 보라. 결정적으로 조영래가 당시 썼던 글이 그의 이념성향을 가늠케 해준다.
 
양동안 교수의 ‘우익은 죽었는가’가 발표됐을 때 조영래는 그걸 반박하는 글을 한겨레에 썼는데, 양 교수를 포함한 대한민국 체제 수호세력을 노골적으로 비아냥댔던 게 그 사람이다. 그들은‘과거의 동굴로 돌아가자는 사람’이자, 민주주의를 압살해온 구체제로의 복귀를 꿈꾸는 ‘극우세력’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제법 독하게 늘어놨다.
 
“요즈음 느닷없이 대두되는 우익궐기론이나, 그와 맥이 닿은 것으로 보이는 체제수호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그것이…민주화의 도전으로부터 구체제를 방어하려는 움직임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게 된 사람이 적지 않을 줄 안다.… 역대 정권에서 막대한 국가예산을 체제유지비로 소모하고 초법규적인 극우적 탄압을 일삼아온 것이 유신 때부터만 쳐도 근 20년이 되었다.”(<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둘 수 없습니다> 226쪽)
 
참고로 조영래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도식에 의해 규정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4.19의 감격으로부터 시작된 60년대와,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일깨운 전태일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70년대, 그리고 광주사태라는 엄청난 민족적 참화로부터 시작된 80년대의 시련을 거치면서 서서히 회복되어온 우리 민족의 도덕적 원기와 사회적 양심….”(‘부천서 성고문사건 변론 요지 앞대목) 그런 요지부동의 고정관념이 노무현 식의 현대사 인식의 원조라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더욱이 박원순 류의 생각과 너무도 닮았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현대사는 참으로 정치적 혼란, 권력의 남용과 인권의 암흑시대의 연속이었다. 암살과 학살, 의문사, 고문과 처형, 투옥과 연금, 해직과 해고, 부당한 재산의 약탈과 몰수가 이 땅을 억압과 수난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그 한들이 쌓여 흐른 반세기였다.”(박원순 지음 <역사를 바로 세워야 민족이 산다> 서문, 1996년 한겨레 펴냄)
 
지난해는 변호사 조영래의 25주기였으며, 오는 12월12일이 그의 기일(忌日)이다. 지금 그의 대표적 저술 <전태일 평전>과 조영래에 대한 평가는 식을 줄 모른다. “버스비를 털어 배고픈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주었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그의 삶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전태일 평전』은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 감동적인 이 시대 최고의 고전입니다.”는 식의 찬사(소설가 공선옥)가 대표적이다. 조영래 신화에 덮어놓고 감격하는 한국사회는 과연 정상이고 멀쩡한가? 올해로 46주기, 거의 반세기 가까운 전태일 분신자살에 대한 재조명과 함께 우린 그걸 함께 물어야 할 시점이다. /조우석 주필

   
▲ 일상 속에 살아있는 숨 쉬는 인간, 실물크기의 20대 초반 근로자 전태일의 모습은 이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지고 은폐됐다. 조영래 식의 싸구려 이분법도 <전태일 평전>을 읽는 젊은 독자들을 오염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선과 악, 옳고 그름으로 나누는 기계적 이분법은 이 평전 전체를 흐르는 논리다./사진=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포스터


(이 글은 7일 자유경제원이 리버티홀에서 주최한 '전태일 생애 바로보기-누가 전태일을 이용하는가' 전태일 분신 46주기 세미나에서 조우석 미디어펜 주필이 발표한 토론문 전문입니다.)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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