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거래소는 뭔가 키워놔서 수익이 될 만하면 빼앗아 가 버리네요. 돈이 월등하게 많으니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어요.”

한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한국거래소가 사사건건 자신들이 벌이는 사업을 방해하거나 비슷한 시장을 만들어낸다면서 이같이 푸념했다.

금투협이 거래소에 넘겨 준 것으로 가장 뼈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코스닥시장이다. 지금은 유가증권(코스피)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코스닥은 사실, 금투협의 전신인 증권업협회가 운영하던 장외 주식시장이었다.

   
▲ 지난 7월 열린 코스닥시장 개장 20주년 기념식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주식이 거래되는 미국 나스닥(NASDAQ)을 벤치마킹해 지난 1996년 7월 1일 이 장외 시장에 경쟁매매 방식이 도입되면서 본격적인 코스닥시장이시작됐다.

하지만 2005년 증권거래소와 코스닥거래소, 선물거래소가 통합하며 지금의 거래소가 출범하면서 금투협은 애써 키워놓은 코스닥을 눈뜨고 내줘야 했다. 당시 코스닥위원회 등 관련 증권업협회 직원 120여명도 모두 거래소로 옮겨갔다.

이뿐 아니다. 거래소는 금투협이 비상장주식 거래시스템인 프리보드를 운용하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코넥스시장을 2013년 7월 개설했다. 이후 두 시장은 상장 종목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고 프리보드는 사실상 급감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

이에 금투협은 프리보드를 개편해 2014년 7월부터 임의지정제도 등을 도입한 ‘K-OTC’를 출범시켰다. 매출액 5억원 이상 비상장사 주식이 거래되는 K-OTC시장은 ‘이희진 파문’ 등으로 안정적으로 장외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관심을 끌기도 했다.

거래소의 금투협에 대한 공격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14일 유망 스타트업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장외시장인 ‘KRX 스타트업 시장’(KSM)을 개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 시장은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한 기업(23사)과 정책금융기관 등 추천기업(14사) 총 37사가 등록된 또 다른 장외시장이다.

하지만 이는 금투협이 현재 운영하고 있는 K-OTC와 이의 2부 시장인 K-OTC BB(K-OTC외 비상장 주식이 거래되는 호가게시판)와 겹칠 우려가 있었다. 때문에 황영기 금투협 회장도 거래소 측에 종목이 겹치지 않도록 신신당부했다고 전해진다.

한재영 금투협 K-OTC부장은 “다행히 KSM과 K-OTC, K-OTC BB가 겹치는 종목은 없다”며 “황영기 회장은 ‘자본시장 내에서 금투협과 거래소가 화목하게 지내야 은행권 등에 맞설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래소가 지나치게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자본시장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볼멘소리는 여전하다.

한 금투협 임원은 “대체거래소(ATS)가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협회차원에서 시장을 만들어도 거래소의 독점체제를 이길 수는 없다”며 “협회는 자본시장과 회원사의 발전을 위해 K-OTC를 적자를 보면서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거래소가 자본시장을 모두 가져가면서 시장의 씨를 말리고 점차 규제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코스피와 코스닥시장만 잘 운영하면 다른 시장에 욕심을 낼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거래소는 현재 금투협이 프리본드 메신저로 점유하고 있는 장외채권 시장도 별도의 플랫폼을 개설해 흡수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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