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 방법과 일정을 둘러싼 청와대와 검찰 간의 신경전이 연일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당초 박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 순순히 응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변호인을 선임한 이후 청와대의 기류는 크게 변했다. 그러자 검찰은 조사를 강행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론을 찾지 못한 채, 내부적으로 우회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국회는 대통령과 검찰을 싸잡아 비판하며 기자회견, 각종 시국회의 등으로 여론전에 몰두한 상태다. 

우리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에게 이른바 ‘불소추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하도록 명시한 헌법은, 사실상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기소를 불가능하게 막고 있는 셈이다. 이는 대통령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며, 그 특권을 헌법이 명시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예외적으로 불소추특권이 적용되지 않는 내란 또는 외환의 죄에 해당되는 범죄는, 말 그대로 국체(國體)를 흔드는 중죄에 해당되며 특히 이와 같은 범죄는 대통령의 직위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에 해당된다. 게다가 내란과 외환의 죄는 국가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속도가 현저히 빠르기 때문에 즉각적인 수사와 처벌이 필요하기도 하다. 헌법의 수호자로서 선출된 대통령의 명백한 헌법 질서 부정까지는 결코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이 정해놓은 일종의 경계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반면 내란 또는 외환의 죄가 아닌, 일반적 위법 행위에 대한 형사상의 기소 및 처벌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헌법은 만인의 도덕적 존경을 받아야 하며, 준법에 있어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대통령에게 형법상 특권을 부여한 것일까. 

대통령은 단순한 행정부의 수반의 지위를 넘어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 기관의 지위를 갖는다. 각 지역구 또는 정당 투표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과 달리, 대통령은 전 국민을 유권자로 하는 국민 투표에 의해 선출된 만큼, 어떠한 헌법기관보다도 높은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 받은 자리다. 

   
▲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 참가 인원수를 일제히 100만명으로 보도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 반대 시위세력인 주최 측이야 '100만 촛불민심'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이 경찰 추산 집계는 뭉개고 '100만 촛불민심'으로 단정해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선동이나 다름없다./연합뉴스

이러한 대통령은 때로는 입법과 사법의 영역을 초월하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며, 특히 국가 공동체가 비상사태에 놓였을 때 헌법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릴 권한을 갖고 있다. 바로 이와 같은 대통령의 직위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헌법은 특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통치행위’ 이론은 오늘날의 사법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취급되고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위법을 저지르더라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지 않다. 헌법은 국회의 탄핵소추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형사상 소추는 불가능할지언정 ‘정치적 소추’는 가능하도록 그 길을 열어두고 있다. 행정부를 견제하고 대통령의 권한 오남용을 감시하는 기능을 가진 국회에게 그 힘을 줬다. 도저히 대통령 직위를 수행하기 어려울 만큼 대통령이 법적·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하고, 이로 인해 국정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국회는 국민을 대표해 대통령직을 박탈하기 위한 사법적 기소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최종적 판단의 몫은 또 다른 독립적 사법 기관인 헌법재판소에 있다. 

헌법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 구성원의 합의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탄생과 성숙에 이르는 지난 현대사를 관통해 온, 반드시 우리가 지켜야 할 정신과 원칙을 담고 있는 역사적 합의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개헌을 하지 않는 이상 헌법의 정신을 존중해야 하며, 그 정신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가 질서를 운영해나가야 할 책무가 있다. 개헌의 요건을 매우 까다롭게 해놓은 것도, 결국 헌법의 정신이 쉽게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청와대·검찰·국회의 샅바싸움이 과연 헌법의 질서 테두리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가. 물론 형사상의 기소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검찰의 수사 또는 조사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대통령의 정상적인 직위 수행을 보장하기 위해 형법상 특권을 보장한 우리 헌법의 정신상, 검찰의 수사 또는 조사도 최대한 조심스러운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과 충돌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더 이상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할 자격과 역량이 없다고 선언한 상태다. 단계적 퇴진, 하야, 군 통수권을 비롯한 일체의 권한 포기 등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식물 대통령’ 판정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다보니 검찰의 대대적이고도 면밀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고 이에 소극적인 대통령과 청와대를 강력히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공은 확실히 국회로 넘어온 것이다. 정상적 대통령직 수행을 부정하려거든, 단순히 말로만 직무 포기를 외칠 것이 아니라 국회가 가진 헌법상의 고유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탄핵 소추안 발의에 따른 역풍이 두려워 탄핵 카드를 일찌감치 포기했다면 대통령의 정상적 업무 집행을 존중하고, 하야 요구나 단계적 퇴진론도 일축해야 한다. 우리 헌법은 ‘정상적 대통령’과 ‘탄핵 소추안이 의결 돼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 둘 중 하나의 대통령만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 어디에도, 이원집정부제에서 외치만을 담당하는 대통령, 총리에게 모든 권한을 준 의전 대통령을 찾아볼 수 없다. 

헌법이 말하지 않은 대통령제를 운영하자는 국회는, 사실상 헌법을 무시한 초헌법적 국회를 자임하는 것이다. 대통령에게만 결단을 내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국회가 결단을 내려달라. /제성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