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 요구는 비민주·반헌법적…권력욕 눈 멀어 촛불 민심 이용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영국의 정치인이자 시인인 월터 롤리 경(Sir Walter Raleigh)의 시 'The Silent Lover(침묵의 연인)'은 'Passions are liken'd best to floods and streams: The shallow murmur, but the deep are dumb;'이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이 구절을 의역하면 '열정은 흔히 강과 시내로 비유되느니, 천박한 열정(사랑)은 시냇물처럼 졸졸거리고, 참다운 열정은 깊은 물처럼 묵묵히 말이 없다'라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도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라는 말이 있고 '내허외식(內虛外飾)'이란 말도 있다. 모두 속이 덜 찬 인간들이 그럴싸하게 겉치레나 하거나 시끄럽게 떠들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경솔하게 떠들지 않는다는 가르침이다.

숫자의 의미와 여론조작

지난 11월 12일 민중총궐기 시위 당시 우리 언론들은 시위참가자수가 사상 최대라는 등 목청을 올리며 대통령 퇴진을 떠들어댔다. 특히 종편방송들은 하루 종일 올림픽 신기록수립 중계나 하듯 광화문시위현장을 생중계하며 신바람이 났다.

이번 시위참가자수 보도를 보면 우리 언론의 시각이나 수준을 엿볼 수 있다. 경찰 측은 최대 26만 명으로 추정했고, 로이터통신과 일본의 유수 일간지들의 헤드라인도 26만 명이었다. UPI 통신, 미국 NBC, Al Jazeera, 호주 ABC 등 세계 언론 대부분은 수십만(hundreds of thousands) 명으로 보도했다. 우리 언론들만 100만 명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셀 수 없는 상황에서 '추정'이란 목적에 따라 늘이고 줄일 수 있는 숫자일 수도 있다. 시위참가자가 100만 명이라고 한들 전체인구 5,168만 명(2016.10. 현재)의 2퍼센트가 안 되고 유권자 4046만 명(18대 대선 기준)의 2.5퍼센트 정도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야당이 들먹이는 '국민'처럼 이번 집회주최측과 언론이 말하는 100만의 '국민'이 대한민국 전국민을 대변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또다시 "호남 지지가 없으면 대선도 포기하고 정치도 그만두겠다"며 "전국적인 대통령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표나 박원순·이재명 시장은 촛불 민심을 팔아 자신들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대통령 퇴진 요구와 퇴진 반대의 의미

지난 미국 대선에서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를 미치광이 막말꾼이나 인종차별자, 여성혐오자 등으로 낙인 찍으면서 트럼프의 인기도와 지지율을 왜곡, 은폐하는데 급급했다. CNN은 심지어 투표 당일까지도 힐러리의 승리를 91퍼센트로 예측하여 전세계인을 경악시켰다. 이런 미국 언론의 장단에 맞춰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국에 재앙이 닥칠 듯 호들갑을 떨던 우리 언론들이 이제는 박대통령 지지도가 5%라고 선동하고 있다.

지난 11월 12일 시위는 과거 자유당정권이나 군사정권 시절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국민들이 목숨 걸고 나섰던 전국적 시위와는 그 목적이나 시위자 구성이 다르다. 죄가 확정되지도 않은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만으로 언론이 주관적, 선동적 보도를 쏟아내고 노동·사회단체들과 야3당이 대통령을 하야(下野)시키기 위해 들고나선 조직적 시위이다.

우리 국민이 역대 대통령들의 가족과 측근의 비리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 적이 있는가? 대통령의 사과나 그간의 정황으로 보아 소위 '최순실 게이트'에서 대통령이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검찰이 조사에 착수했다. 대통령의 거취 문제는 야당, 노동·사회단체, 언론들이 대규모 시위를 명분으로 하야를 겁박(劫迫)할 일이 아니고 검찰 조사 결과를 근거로 민주적, 합헌적 절차에 따라 합당한 책임을 물을 사안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지지자들만 박대통령을 찍은 게 아니다. 좌파정부로의 회귀를 막기 위해 박대통령을 선택한 국민도 적지 않다. 이들이 지금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반대하는 건 대통령의 잘못을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고 이를 구실로 정권을 차지하려는 야당의 기도(企圖)를 막아야 한다는 신념이다. 대통령의 실수가 야당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야당의 반합법적 집권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하야' 요구는 비민주적, 반헌법적 망동

야당이 자신들의 요구를 수락한 대통령의 제안들을 모두 거절하더니 제1야당 대표는 대통령과의 회담 약속을 하루 만에 깨버렸다.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폭언까지 했다. 이번 사태로 어부지리(漁父之利)의 동상이몽에 들떠있는 야 3당의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무례가 도를 넘는다. 언론은 거국내각 구성, 국회추천 국무총리 임명, 대통령의 하야 또는 2선 후퇴 등 위헌적인 주장을 쏟아내며 야당을 옹호하는 논리들로 여론을 오도(誤導)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고(제12조), 제27조 4항에서도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 야당대표를 하며 대통령에게 호통을 칠 수 있는 것도 이 원칙 덕분이다. 대통령도 헌법에서 인정하는 권리가 보장되는 국민이다. 대국민사과를 하고 검찰조사를 받겠다는 대통령에게 하야를 요구하는 것은 비민주적, 반헌법적 망동이다.

위만 볼 줄 알고 내 모습 돌아볼 줄은 모르는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또다시 "호남 지지가 없으면 대선도 포기하고 정치도 그만두겠다"며 "전국적인 대통령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단체들까지 포함하는 비상시국회의에 참여하겠다며 촛불을 쳐들었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박근혜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를 위해 전국을 뛰겠다"고 한다. 모두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과 함께"라고 한다. 이들에겐 시위에 나서는 사람들만이 '국민'인가? '시민'의 뜻이나 챙겨야 할 시장들이 '전국', '국민' 운운하니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는 비난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이런 판에 새누리당은 비박계 주도로 소위 '잠룡'들을 포함한 비상시국위원회를 결성하여 당대표 사퇴를 압박하면서 본격적으로 '한 지붕 두 살림'을 차렸다. 정치판이 모두 이 꼴이니 앞으로 국정이 어떤 지경이 될지 암담하다. 정치판에서 위만 바라보다 보면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자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나라'가 살아야 거머쥘 '정권'도 있다

국가안보가 위태롭고 국제정세가 가변적인 현 상황에서 정치권과 언론 여기저기서 낡은 '빈 수레' 덜걱대는 소리만 요란하다. 이들의 장단에 맞춰 나라가 온통 경박한 춤을 출까 두렵다. 지금 우리 정치권에는 말치레 요란한 '빈 수레'가 아니라 진정 나라를 위하는 'The Silent Lover(침묵의 연인)'이 필요하다.

월터 롤리의 시(詩) 말미에 '벙어리 걸인이 두 배의 동정을 받을 수 있다(A beggar that is dumb, you know, may challenge double pity.)'라는 구절이 있다. 대통령은 요란한 촛불로 뽑는 게 아니고 냉정한 투표로 뽑는다. '나라'가 살아야 여든 야든 거머쥘 '정권'도 있다. 국민 모두가 진중(鎭重)해야 한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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