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정 기자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밀어붙이던 야당 대표가 시대를 역행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이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를 시켜 물리적 충돌을 준비시키고, 최종적으로 계엄령까지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가 돈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번 주말 예정돼 있는 세 번째 촛불집회에서 보수진영의 맞불 집회를 가리켜 보수진영이 의도적으로 물리적 충돌을 일으켜 비상사태를 일으키고, 박 대통령 이를 빌미로 계엄령 선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추 대표는 이런 발언을 하면서 “박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으면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정지시키는 조치에 착착 들어가겠다. 19일 집회 이후 후속 법적 조치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추 대표의 이런 발언은 그가 판사 출신 정치인이라는 점을 의심케 한다. 계엄령에 관한 헌법 규정이 엄연히 있는데도 추 대표는 이를 몰라서 저런 발언을 한 것일까. 

헌법 77조 5항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에 하나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다고 해도 여소야대의 국회는 곧바로 계엄을 해제시킬 수가 있다. 

그렇다면 추 대표의 이날 발언이 설마 시중에서 ‘이러다 대통령이 계엄 선포하는 거 아냐’라며 우스개소리 수준으로 떠도는 말을 갖고 한 것일까. 제1야당의 공개적인 공식 회의석상에서 이런 황당한 수준의 발언이 나온 것이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자마자 더민주 지도부는 “주술정치” “신정정치” “주술적 예언” 등의 표현을 동원해 박 대통령이 추진해온 모든 정책을 비판했다. 더민주는 이번 사태를 좌우 이념을 뛰어넘는 사이비종교의 프레임을 씌우는 전략을 구사했다. 여기에 ‘대통령 하야’ 구호로 촛불집회를 선동하더니 이제는 ‘계엄령’으로 더 많은 촛불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밀어붙이던 추미애 더민주 대표가 18일 시대를 역행하는 "박 대통령이 계엄령 준비"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연합뉴스


추 대표의 발언 이후 청와대는 “제1야당의 책임 있는 지도자가 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한 정치적 선동”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날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추 대표의 계엄령 준비 운운 발언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더이상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발언은 자제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새누리당도 “계엄령은 있지도 있을 수도 없는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라고 반박했다. 염동열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추 대표는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부산 해운대 엘시티 사건에 대한 의혹은 유언비어라며 법적 대응방침을 밝혔다”며 “자신들에 대한 의혹은 유언비어로 단정 짓고, 대통령을 향해선 극단적인 유언비어를 말하는 것은 충격적인 이중 잣대 공세”라고 지적했다.

무조건 하야만 주장하던 야권 일각에서는 총리 추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국회 추천 총리를 받으면 퇴진운동을 철회하겠다”고 박 대통령에 제안했다가 대통령이 수용하자 없던 일로 치부해버렸지만 국정 공백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무조건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만 반대할 경우 돌아올 역풍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단행할 경우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돼 헌법재판소 심판을 거쳐 확정될 때까지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게 된다는 이유가 작용했다. 황 총리의 대통령 권한 대행을 용인할 수 없는 야당으로서는 국회 추천 국무총리 재수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장외투쟁에 나서 ‘대통령 퇴진’만 부르짖던 야당은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채 최순실 사태를 당리당략적으로 끌면서 국정마비 사태만 초래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나마 박 대통령이 김 총리에 대한 지명 철회를 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상황을 부른 셈이다.

그런 반면, 최순실 사태로 초유의 검찰수사를 앞두고 있는 박 대통령의 국정 공백 수습에도 다시 눈길이 쏠린다.

박 대통령은 처음 사태가 터지자 10월25일 대국민사과를 통해 “최순실에 일부 연설문 표현을 도움받았다”며 최씨와의 인연을 시인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같은 달 28일 우병우 민정수석과 ‘측근 3인방’으로 불리는 정호성·이재만·안봉근 비서관을 포함한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일괄 사표제출을 지시했다. 

이어 시민사회 원로들과의 면담을 진행하면서 이번 파문의 수습책과 관련한 의견을 수렴한 박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신임 국무총리에 지명하고 완벽한 책임총리제를 시행하기로 결단했다. 

김병준 내정자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헌법이 규정한 총리로서의 권한을 100% 행사하겠다”며 “개각을 포함해 모든 것을 국회 및 여야 정당과 협의해나가겠다”고 밝힌 만큼 사실상 야당이 주장해온 거국중립내각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여졌다.

그런데도 야당은 김병준 총리 카드를 거부했고,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촛불 민심을 선동, 장외투쟁을 예고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두 번째 대국민담화를 갖고 “수사를 받겠다”고 밝혔다. 초유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과 특검에 의한 수사가 예고된 것이다. 그런데 야당은 기어코 ‘박 대통령의 하야를 기필코 이뤄낼 것’이라며 촛불집회를 앞세웠다.  

그런 와중에도 박 대통령은 한광옥 비서실장과 최재경 민정수석 등 신임 청와대 청와대 정무직 참모들을 차례로 임명했다. 19일 페루에서 열리는 APEC에는 황교안 총리를 파견했으며, 대신 12월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하기로 했다. 

또한 지난 9일 치러진 미국의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선출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와 선거 바로 다음날인 10일 전화통화를 갖고 ‘한미관계가 중요한 데 100% 동의한다’는 트럼프의 화답도 이끌어냈다.  

최순실 사태 이후 야 3당은 거국중립내각을 내세웠다가 번복하고, 국회의 총리 추천을 주장했다가 취소하고, 돌연 추미애 더민주 대표가 단독 영수회담을 건의했다가 야권의 반발에 부딪쳐 무산시켰다. 

국정마비 상태에 아랑곳없이 문재인·안철수 두 전 대표를 포함한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갈팡질팡 행보로 혼란을 부추겼다. ‘최순실의 꼭두각시’라고 조롱하던 박 대통령보다 야 3당의 공조가 일사분란하지 않은 것은 수권능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그동안 야당이 최순실 사태를 비판하되 국가와 국민을 우선으로 여겼다면 벌써 그들이 원하는 수습책을 완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위신이나 국민의 자존감은 안중에 없이 최순실 추문으로 대중을 선동하며 ‘대권 셈법’에만 몰입하다보니 결국 스텝은 꼬이고 헛말만 남발되는 형국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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