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낚시여행] –신진도의 광란의 우럭낚시

   
▲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문학박사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늦봄 보리가 익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을 우럭낚시의 적기가 찾아온다. 그리 먼 바다로 나가지 않아도 근해권에서 제법 씨알 좋은 우럭이 출몰하는 것이다. 이런 시기를 놓칠 수는 없는지라 고등학교 동창 네 명이 충청도 안흥으로 우럭 낚시를 가기로 했다. 모든 낚시가 그렇지만 바다낚시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바로 날씨와 물때이다. 우럭 낚시는 대개 조금 무렵부터 3,4물까지가 좋아, 4물 토요일로 미리 배를 예약했다. 주말이면 배 예약이 힘든지라 한 달 전부터 예약에 들어갔던 것이다.

계절도 좋고 물때가 좋지만 단 하나의 변수가 있다. 바로 바람이다. 제갈공명도 아니고 하다못해 자주 예보가 빗나가는 기상청도 아니기에 바람은 예측조차 할 수 없다. 그저 한 달 후의 날씨가 좋기만을 바랄뿐이다. 하지만 금요일 오전 기상을 확인하니 토요일은 제법 바람이 많이 부는 것으로 나온다. 배가 출항할 것 같기도 하고 못할 것 같기도 하다. 주의보가 떨어지면 물론 출항 자체가 불가능하다. 주의보는 아니지만 거의 주의보 직전까지 가는 예보가 가장 까다롭다.

낚시는 가고 싶지만 가봐야 바람과 파도에 고생만 하고 조황은 형편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는 과감히 낚시를 포기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낚시꾼은 별로 없다. 어렵사리 배를 예약해 놓은지라, 하루 전에 부도를 내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고, 또 예보란 것이 예보인지라 가끔 틀려서 날씨가 좋을 때도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낚시도 병이어서, 병 중에서도 중병이어서, 가고자 한 날 못가면 안달이 나서 견딜 수 없기에 배만 출항한다면 가고야 마는 것이 대다수 꾼들의 생리이다.

이날도 그랬다. 금요일 예보를 보니 토요일 바다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예약해 놓은 배의 선장이 베테랑이고 승객들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지라, 당연히 출조 취소가 될 줄 알고, 기상이 좋게 나오는 남해나 동해 남부로 다른 낚싯배를 알아보던 중, 선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일 정상 출조한다는 것이다. 정상 출조라면 선장이 뭔가 생각이 있을 것이다. 예보가 맞지 않는다는 징후를 포착했거나 또 다른 무엇이 있을 것.

그래, 가자. 새벽 3시에 서해안 고속국도 매송IC에서 만나 차 한 대에 동승하여 안흥으로 냅다 달린다. 태안군 근흥면 안흥은 우럭낚시의 메카다. 안흥 내항과 안흥외항(신진도항)에는 수십 척의 우럭 배들이 있고, 베테랑 선장들도 많다.

   
▲ 안흥 앞바다에서의 일출

인천의 남항이 낚시 입문자나 초보자들이 선호하는 출항지라면, 안흥은 전문 꾼들이 선호하는 출항지다. 안흥 앞바다 일대는 자원이 풍부하고 베테랑 선장들도 많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낚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안흥에서 출항하면 약 두 시간 이내에 가의도, 옹도, 궁시도, 격렬비열도, 황도, 외연도, 어청도와 연도 초입까지 수많은 우럭 포인트가 산재해 있다.

우럭이란 펄 바닥에 서식하는 어종이 아니라 바위가 많은 암초지대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어종이다. 때문에 안흥 일대에 우럭이 많이 잡힌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이 일대 물속 지형이 복잡하고 암초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고려조부터 조선조까지 안흥 앞바다는 공포의 바다였다. 고려 때부터 태종, 세종, 성종, 선조, 효종 대까지 수많은 조운선들이 안흥 앞바다에서 침몰했던 것이다. 때문에 조정에서는 골머리를 앓다가 두 가지 계책을 마련했다. 하나는 운하를 파는 것이었다.

순제는 충청도 태안군(泰安郡)의 서쪽 산마루에 있는데, 길고 곧게 바다 가운데로 수식(數息)이나 뻗쳐 있어 수로가 험조(險阻)한지라, 이름하여 안흥량이라 하였는데, 전라의 조운은 이곳에서 실패가 많아 예나 이제나 걱정거리였다. 산마루가 처음 시작된 곳에 뚫어서 수로를 통할 만한 곳이 있었으므로 전조(前朝)에 왕강(王康)이 뚫으려 했으나, 그 땅이 모두 돌산이어서 마침내 실효를 보지 못했던 곳이다. 이제 하윤이 건의하였다.

"왕강이 뚫던 곳에 지형이 높고 낮음을 따라 제방을 쌓고, 물을 가두어 제방마다 소선(小船)을 두며, 둑[堤] 아래를 파서 조선(漕船)이 포구(浦口)에 닿으면 그 소선에다 옮겨 싣고, 둑 아래에 이르러 다시 둑 안에 있는 소선에 옮겨 싣게 합니다. 이러한 차례로 운반하면 큰 힘을 들이지 아니하고도 거의 배가 전복하는 근심을 면할 것입니다."(태종실록, 1412, 11월16일)

좀 쉽게 말하면 지금의 천수만 북쪽에서 지금의 가로림만까지 운하를 파서 전라도와 경상도의 물자를 서울로 안전하게 옮기자는 발상이었다. 운하를 파자는 이 발상은 고려 때부터 시작해서 17세기 현종 대까지 거듭 이어졌고 실제 공사도 감행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중간에 있는 돌산을 당시의 토목 공사 기술력으로는 도저히 뚫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발상은 중간 물길을 낼 수 없는 돌산 구간만 육로로 수송하자는 것이었다. 천수만 북쪽과 가로림만 남쪽 해안에 각각 큰 창고를 지어놓고, 남쪽의 조운선은 천수만까지만 운항을 하여 창고에 곡식을 부려 놓고 이를 달구지를 비롯한 육로로 가로림만 남쪽으로 이송하고, 이를 다시 배에 실어 서울로 이송하자는 계획이었다. 어쨌거나 이 계획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다가 이렇게 험해 고려나 조선 시대에는 운송에 애를 먹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에 와서는 천혜의 우럭 낚시포인터로 각광받는 곳이 바다 안흥 앞바다 일대인 것이다.

배가 출항할 때가 되어도 바람이 자지 않는다. 이윽고 아침 6시 30분 배가 출항한다. 공사중인 마도 방파제를 지나니 바람이 심하게 분다. 파도의 하얀 이빨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의외로 선장은 마도와 가의도 앞, 출항한 지 20분도 안 되는 곳에서 낚시를 하라고 한다. 출항지 신진도항이 빤히 보이는 곳이어서 고기가 나올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선장을 믿는 수밖에 없다. 은양호 김병두 선장은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올해 63세. 이곳이 고향으로 청년 시절부터 배를 몰았으니 경력이 40년도 넘는다.

   
▲ 베테랑 중의 베테랑 은양호의 김병두선장

본인 말로는 어초낚시나 똥침 포인트(오래된 침선이나 그물 등이 있는 작은 우럭트)를 개척한 것도 자신이 최초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 20년 전만해도 우럭낚시에 있어서 포인트고 뭐고 하는 개념도 별로 없었다. 물때만 맞으면 여밭에서 배를 흘리기만 해도 우럭이 마구마구 물어줄 때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럭 자원이 줄어들어 우럭이 서식하는 곳에 정밀하게 배를 대어야 몇 마리의 우럭이 물어준다. 선장의 실력이 우럭낚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부각한 것이다. 특히 바람이 부는 날은 배를 포인트에 제대로 대기 어렵다. 조류와 바람의 방향을 다 맞추고 조류의 흐름과 바람의 세기를 계산하여 포인트에 진입하여야 하는데 바람이 심한 날은 어지간한 실력의 선장은 빗나가기 일쑤인 것이다. 하지만 김병두 선장은 달랐다. 세 번째 포인트에서부터 우럭이 여기저기 올라오기 시작했다.

   
▲ 쌍걸이도 올리고

이런 날씨에는 선장뿐만 아니라 낚시꾼도 낚시를 잘 해야 한다. 일사분란하게 선장의 신호에 따라 추를 내리고 올려야 서로의 채비가 엉키지 않는다. 하지만 배에는 초보꾼이 많아 여기저기 채비가 엉켜서 난리다. 다행스럽게 우리 일행은 상당히 숙달되어 있어 포인트마다 한두 마리씩 건져 올린다. 씨알은 그리 크지 않지만 이 바람부는 날, 이 정도면 대박이나 마찬가지다. 쌍걸이도 곧잘 나온다. 이 넓은 바다에서 우럭이 사는 곳은 용케 찾아내는 선장의 실력이 경이롭다. 슬그머니 선장에게 다가가 "아니, 이 가까운 곳에 우럭이 이렇게 있네요." 하고 말을 거니 선장 왈, "이럴 때를 대비해서 숨겨놓은 포인트"라고 한다. 이른바 '비포', 선장만의 비밀 포인트다.

   
▲ 매운탕 끓일 준비를 하는 김병두 선장. 은양호의 매운탕은 꾼들 사이에는 소문이 나 있다.

오전 10시가 좀 넘어서 벌써 우리 일행이 잡은 우럭은 먹을 만큼 되었고, 집으로 가져갈 양도 충분할 것 같았다. 오후가 되면 교대로 운전을 해야 하기에 일찍 회를 쳐서 먹기로 한다. 내가 우럭 대여섯 마리를 거두어 회를 친다. 바다가 꼴랑대는 가운데서도 근사한 우럭회 한상이 차려진다.

   
▲ 선상 우럭회 한상. 두껍게 썰어야 맛있다.

친구들끼리 오면 누구는 야채, 누구는 된장과 초장 이렇게 역할 분담을 하기에 제법 구색을 갖춘 회 차림이 된다. 소주도 물론 한 사람이 준비해 온다. 대개 인원 대비 마이너스 한 병을 준비하는 게 우리 일행의 불문율이다. 예컨대 4명이 출조하면 3병, 세 명이 출조하면 두 병, 이것이 원칙인데, 이런, 일행 중의 한 친구가 불문율을 깼다. 내가 세 병을 준비해기로 했는데 그 친구도 세 병을 가져 온 것이다. 물론 넘치는 술은 안마시면 된다. 그런데 이들이 누구인가. 고등학교 동창들이 아닌가. 또한 네 명 모두 호주가다. 그러니 자제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 광란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는 고교 동창들.

가을바다 선상에서의 회 파티는 거나하게 진행된다. 선장은 매운탕을 끓여 점심을 준비한다. 선장은 신진항이 가까우니 파도가 없는 항구에 들어가 점심을 먹기로 한다. 그 선장의 결정에 의해 우리 일행의 낚시도 끝났다. 호주가들에게 소주가 1병 이상 들어가자 그 재미있는 낚시도 별 생각이 없어져 버렸다. 또한 이미 잡을 만큼 잡았기에 일행은 하선을 결정한다. 다른 낚시꾼들은 오후 낚시를 위해 다시 출항한다.일행은 본격적으로 신진항 부두에 있는 횟집으로 직행해 민어 지리탕과 멍게, 피조개 등을 주문해 놓고 파티를 계속한다.

   
▲ 부두 횟집의 민어지리탕.

가을 신진 부두에서 중년 남자 넷이서 신이 났다. 고등학교 동창들은 이래서 편한 것이다. 이해관계 없이 그저 낚시 와서 신나고 술 마셔서 신난다. 이미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갈 상태는 넘었다. 다 포기하고 여기서 하루 자고 내일 가자고 누군가가 주장을 하고 모두 찬동을 한다. 대낮부터이니 술만 마실 수는 없는 법. 일행은 당구장으로 가서 당구 게임을 즐긴다. 당구란 내기가 없으면 재미가 없는 법. 2차 노래방값 내기, 3차 숙박비 내기 등의 게임이 줄을 선다. 우럭낚시는 결국 광란의 밤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하여 신진도의 밤은 저문다.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문학박사
[하응백]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