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29·왓포드)6일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2-0 완승을 이끈 선제골을 터뜨리며 '축구천재'의 위상을 되찾았다, 동시에 그와 홍명보(45) 축구대표팀 감독의 남다른 인연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홍 감독은 런던 올림픽을 앞둔 20126월 당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날에서 뛰고 있던 만 27세의 박주영을 '24세 이상 선수' 와일드카드로 올림픽 대표팀에 승선시키려 했다.
 
   
▲ 박주영이 6일 그리스 아테네 카라이스카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선취골 슛을 하고 있다./AP=뉴시스
 
이란과의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3·4위전에서 보여준 박주영의 책임감과 승부욕이 어린 후배들에게 자극과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박주영은 이날 1-3으로 패색이 짙던 후반 32분 추격을 알리는 팀의 두 번째 골을 쏴 올렸다. 박주영의 골에 용기백배한 한국은 경기 종료 직전까지 물고 늘어진 끝에 지동원(23·아우크스부르크)2골을 더해 4-3 역전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박주영에게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병역기피' 문제였다.
 
2008~2009시즌을 시작으로 AS모나코에서 약 3년간 활약했던 박주영은 아스날 이적을 앞둔 20118월 모나코 왕실로부터 10년짜리 장기체류자격을 얻었다.
 
병역법에 따르면 영주권 제도가 없는 국가에서 무기한 체류자격 또는 5년 이상 장기 체류자격을 얻어 그 국가에서 1년 이상 거주한 사람은 37세까지 국외여행기간 연장허가를 받을 수 있다.
 
박주영 역시 이 제도를 통해 2022년까지 병역연기가 가능해졌다. 박주영은 실제로 20123월 병무청에 병역연기를 신청했다.
 
그러나 '병역기피'라는 국민적 비난이 쏟아졌다. 태극전사가 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이어졌다.
 
때문에 2014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박주영이 절실했던 당시 축구 대표팀 최강희(55) 감독도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카타르, 레바논전에 섣불리 박주영을 기용할 수 없었다.
 
박주영은 그해 613일 마침내 기자회견을 갖고 병역의무의 성실한 이행을 확약했다.
 
박주영은 "군 면제를 노리고 병역을 연기한 것이 아니다. 병역 이행 서약서를 썼고 병무청과 언론에 수차례 병역을 이행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해명했다.
 
홍 감독은 이날 "박주영이 입대하지 않으면 내가 대신 하겠다"'보증'까지 섰다.
 
결국 홍명보호에 승선, 영국 런던으로 향한 박주영은 11일 일본과의 3-4위전에 선발 출전, 전반 37분 일본의 골문을 열었다.
 
한국은 이날 후반 11분 터진 구자철(25·마인츠)의 결승골을 더해 일본을 2-0으로 완파, 1948년 런던올림픽 첫 출전 이후 64년 만에 축구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날 동메달 획득으로 올림픽 축구대표 선수들은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그런 박주영은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번에는 경기력이 문제였다.
 
아스날로 돌아간 박주영에 대한 찬밥 대우는 여전했다.
 
올림픽을 앞둔 2011~2012시즌 소속팀에서 6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던 박주영은 2012~2013시즌에는 주급이라도 아끼려는 아스날의 계산으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하위권 구단인 셀타비고로 임대됐다.
 
셀타비고가 원할 경우 영구이적이 가능한 옵션까지 있었다. 그러나 박주영은 1시즌만 채우고 다시 아스날로 돌아왔다. 22경기 31도움만을 기록할 정도로 부진을 면치 못한 탓이다.
 
박주영이 2011~2012시즌부터 2014~2015시즌까지 계약 기간 4년에 주급 45000파운드(8000만원)로 아스날과 계약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잉글랜드 현지는 물론 국내에서도 '주급 도둑'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홍 감독은 '원톱 스트라이커'의 필요성을 간절히 느끼면서도 박주영을 좀처럼 자신의 구상에 포함시킬 수 없었다.
 
'소속팀 경기에 나서고 있는 선수'를 대표팀 발탁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웠던 그가 '소속팀에서 훈련은 하지만 경기는 관중석에서 관람하는' 박주영을 발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박주영에게 남다른 애착과 미련을 가진 홍 감독이 축구 팬들과 언론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조금 더 지켜보자" 뿐이었다.
 
아스날에서 이미 실패한 박주영이 홍명보호 승선할 방법은 단 하나, '이적' 뿐이었다.
 
마침내 겨울 이적시장 마감과 동시에 박주영은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 왓포드로 임대이적을 발표했다. 자존심도, 주급 삭감도 모두 감내한 결단이었다. 목표는 오직 브라질행이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왓포드에서도 박주영은 뾰족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이번에는 잔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23일 브라이턴 앤드 홉 알비온과의 2013~2014시즌 리그 27라운드(2-0 )의 후반 추가시간 투입돼 약 5분 동안의 짧은 데뷔전을 치렀으나 이후 4경기 연속결장하면서 불안감을 키웠다.
 
그러나 홍 감독은 19일 발표한 그리스 평가전 명단에 과감히 박주영을 포함시켰다. 최 감독이 지휘하던 시절이었던 지난해 26일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에 출전 이후 13개월 만의 발탁이고, 홍 감독 부임 이후 첫 승선이다.
박주영이 하부리그로 소속팀을 옮기는 희생까지 감행했다 해도 홍 감독으로서는 '원칙'을 깨는 용단이었다.
 
홍 감독은 "(박주영 발탁이)우리 기준과 다른 결정이지만, 이번 그리스전이 박주영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해 선발했다"고 설명했다.
 
홍명보-박주영의 사제관계가 끝나버릴 위험을 각오하고 선발출전한 그리스전. 박주영은 제 몫을 다하며 자신의 마음 속 짐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다. 동시에 홍 감독의 오랜 마음 고생까지 속 시원하게 풀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