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조기 퇴진을 선언하는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회에 정권을 이양할 방안을 만들어달라고 밝히면서 탄핵 표결의 ‘D데이’ 9일까지 여야 간 치열한 수싸움이 전개될 전망이다.

사실상 탄핵의 캐스팅보트를 쥔 새누리당 비박계가 대통령 퇴진 기한을 내년 4월로 제시하면서 여야 간 선 협상을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야 3당은 대통령 담화 다음날 거부 의사를 명확히 하면서 기존의 탄핵 절차를 재가동시켰다.  

지금까지 여당은 “내년 4월을 목표로 박 대통령의 질서있는 퇴진을 논의하자”고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야당은 “탄핵 뒤에도 논의가 가능하다”며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담화 발표 직후 신중하던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와 전날 “여야 협의가 필요하다”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30일 ‘선 탄핵’ 주장에 가세했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 의사를 밝혔는데도 야당이 여야협상 카드를 버리고 탄핵 전선에 서둘러 나선 이유는 민병두 민주당 의원의 “대통령이 던진 폭탄을 다시 청와대에 던지면 된다”는 말에서 함축된 것처럼 대통령의 담화를 탄핵을 막기 위한 교란용으로 받아들인 데 있다.

야당은 최순실 사태 처음부터 끝까지 국정마비를 우려하기보다 차기 대선에 올인해 왔고, 그렇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 때마다 국면전환용 꼼수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야당의 주장은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이었고,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지금 국회의 탄핵 추진에 이르렀는데, 비로소 박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 의사를 밝혔다면 국회는 탄핵 추진을 멈추고 새롭게 여야 간 협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실 국회에서 탄핵 결의가 나와서 헌법재판소를 거쳐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최장 내년 6월로 잡고 있는데 새누리당 비박계의 주장대로 내년 4월을 박 대통령의 퇴진 시한으로 결정한다면 차기에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선 시기는 비슷해진다. 

   
▲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세번째 대국민 담화에서 제시한 자신의 향후 거취는 '질서있는 퇴진'으로 요약된다. 국회가 정권이양의 로드맵을 만들어주면 그에 따른 일정과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국회의 합의 내용에 따라 시기만 달라질 뿐 내년 12월로 예정된 대선이 앞당겨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박 대통령이 내년 4월에 사임하게 되면 6월을 전후해 대선이 치러진다./청와대


따라서 여당 비박계는 박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 의사를 밝힌 만큼 또다시 그 퇴진 시기를 내년 4월까지로 명확히 해준다면 굳이 탄핵 절차를 거칠 필요없이 여야가 정권이양 수순을 밟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를 보더라도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결의돼 헌재에서 심리하는 동안 연일 찬반집회가 이어지는 등 정국 혼란은 불 보듯 자명하다. 그런데도 문재인 후보를 옹립하고 있는 민주당은 이날 협박 수준으로 여당 비박계를 압박하고 나서 이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저의를 의심케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탄핵 주도권은 비박계가 갖고 있다”며 정치적 책임을 부각시켰다.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다음달 2일 표결을 밀어붙이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자신 있으면 표결을 9일로 미루자, 협상하자, 대안 모색하자 해보십시오”라며 “단 명단 공개 각오하세요”라고 했다.  

표 의원의 발언은 최소한 여야 간 협상 원칙도 무시한 것으로 문재인 전 대표 측의 다급함을 읽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최순실 사태가 극에 치달았는데도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오름세 없는 콘크리트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결국 박 대통령 탄핵 정국은 여당 비박계가 표 의원과 같은 압박에도 흔들림 없이 현재 자신의 신분이 여당 국회의원이라는 자각과 이에 따른 정치적 판단으로 크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려면 최소 29석의 새누리당 표가 넘어가야 정족수인 200명을 맞출 수 있다. 탄핵 의결 정족수는 국회의원 재적 300명의 3분의 2 이상이며, 현재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무소속을 포함한 야권이 차지하는 국회의원 의석수는 171석이다.

비박계의 비상시국위 대변인 황병철 의원은 이날 “대통령이 자진 사퇴 시한을 못 박지 않는다면 늦어도 12월9일에는 탄핵소추안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지난 세 번째 대국민담화에서 밝힌 것처럼 조만간 또다시 기자회견을 갖고 퇴임 시한을 밝힌다면 비박계의 요구에 부응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자진 사퇴 표명에도 반발하는 야당의 주장이 궁색하고 옹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의 즉각 사퇴 이후 60일 이내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이를 주장한 문 전 대표나 민주당의 주장은 오로지 대선을 염두에 둔 그야말로 꼼수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자명해진 사실이다.

야당은 대통령 담화 이후에도 탄핵 추진을 외치면서 “일단 탄핵 처리 후 대통령의 조기 사퇴도 논의해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상식적인 주장이어서 어리둥절하지만 이런 주장에 국민의당까지 합세하고 있는 이유는 ‘일석이조’의 전략에서 나온 것이라는 해석도 나와 있다. 문재인과 추미애가 주도하는 민주당의 무리수는 문재인의 데미지 손상일 뿐 국민의당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셈법이다.

이제 새누리당의 주류와 비주류는 물론 전직 국회의장 등 정치권 원로까지 나서 박 대통령이 내년 4월까지 물러나는 질서있는 퇴진을 들고나온 가운데 국회의 최종 탄핵 추진이 어떤 결과를 맞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또한 이 결과에 따라 문재인과 박지원 등 야당 지도부의 반응에 또한번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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