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순항할 것으로 점쳐졌던 '탄핵호'가 분열상에 놓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던진 공을 일찌감치 밖으로 쳐내지 못하고, 국회는 자중지란에 빠졌다. 몇명이 탄핵에 동참할 것이냐에서, 탄핵이냐 여야 합의에 따른 퇴진이냐로 프레임이 옮겨져 가자 야당은 초조한 분위기다. 

그런 가운데 터질 것이 터졌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의 이른바 '탄핵 찬반 의원 리스트' 공개다. 물론 정확히 입증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인된 리스트는 아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각 계파의 움직임과 언론 보도를 종합한 '추정'에 불과하다. 리스트가 공개되자 인터넷에서 전화번호까지 포함된 명단이 공개돼 상황은 더욱 민감해졌다. 

새누리당에서 거센 항의를 하는 가운데, 표 의원이 속한 안전행정위원회에서는 해당 문제로 새누리당 장제원 의원과 표 의원이 심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급기야 두 의원이 서로 반말로 호통을 치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표 의원은 '당당한' 표정이다. "소신에 따라 입장 밝히시고 국민께 공개해 알 권리 충복시켜드리는 것이 정치의 도리"라며 본인의 선택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표 의원의 명단 공개와 여론 압박 유도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 100만명의 인파가 모여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주장했다./연합뉴스


우리 법률은 인사에 관한 국회의 각종 투표에 대해서 무기명 투표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여타 법률안이나 각종 정책, 결의안 투표와 달리, 인사에 관한 사안 만큼은 여론과 민심, 당론, 각종 이해관계자의 압력에 구애받지 않고 의원 개개인의 양심과 소신, 철학에 입각해 의사 표현을 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누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할지, 또는 반대할지 추측해보고 가결 가능성을 점쳐보는 것은 충분히 용인할만한 정치 전망이자 해석 행위라고 생각한다. 특히 언론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누군가에게 찬성 또는 반대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국회의원이 할만한 행동은 결코 아니다. 국회의원은 여론을 존중하고 반영해야 할 책무도 있지만, 여론을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할 의무도 있다.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대중의 분노에 기대어 1인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 압박을 가하도록 조장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국회의원에게 맞지 않는 행위다. 

게다가 아무리 소수일지라도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들의 의사가 반영될 여지를 원천적으로 틀어막겠다는 발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오늘날 여의도에서는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소신이, 다른 생각에 대한 탄압과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불통이라고 비난하던 그들이 배타성과 폐쇄성으로 무장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국민이 과연 정치권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제성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