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최순실 사태 이후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 ‘최악의 시간’이 결정됐다. 우왕좌왕하던 야3당이 9일 탄핵표결에 가까스로 일치하자 새누리당 비주류도 숙고 끝에 9일 표결에 동조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 나오는 문장처럼 지금부터 '최악의 시기이자, 최고의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두 도시 이야기’는 시민혁명의 전형으로 기록되면서도 동시에 피의 숙청이라는 두가지 평가를 받고 있는 프랑스혁명을 이야기한 것으로 이번 최순실 사태로 인해 생긴 광장의 촛불은 과거 프랑스혁명에 곧잘 비유된다. 

박 대통령 탄핵열차가 9일 종착지를 향해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도 광장이 만들어 낸 것이린 볼 수 있다. 그동안 문재인 전 대표가 박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종용하면서도 “명예로운 퇴진을 보장하겠다”고 말해 후폭풍을 맞은 일이 있다. 

또 박 대통령의 사임 담화로 평가되는 3차 대국민담화 이후 국민의당은 2일 탄핵표결에 반대했다가 비난 대상에 올랐다. 그리고 새누리당 비주류도 최근 ‘4월 퇴진-6월 대선’을 주장했으나 결국 9일 표결 대열에 참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 모두 광장의 촛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정치권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박 대통령이 지난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하야를 약속하면서 헌법재판소가 탄핵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만 박 대통령은 여야 합의에 따른 법절차 안에서의 퇴진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연합뉴스


‘최순실의 추문’이 천하에 드러나면서 역대 정권마다 있어왔던 비선실세의 국정논단은 박 대통령에게 유독 가혹한 형벌이 될 전망이다. 최태민-최순실 사이비교주에 박 대통령이 조종당해왔다고 믿는 군중이 있기에 ‘박 대통령 하야’에 이어 ‘박 대통령 구속’이 민심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정치는 법 절차에 따라 이번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 현직 대통령직에 있는 박 대통령은 무작정 하야를 할 수가 없다. 만약 대중이 무서워 무조건 대통령직을 내팽겨친다면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해 진짜 탄핵 사유를 만들게 된다. 

이런 까닭에서 박 대통령은 자신의 퇴진 문제를 “임기단축을 포함해 퇴진 시기를 여야가 합의해서 국회가 제안해주면 법절차에 따라 이행하겠다”며 국회에 공을 넘겼다. 하지만 여야는 협상으로 이 문제를 풀지 못했고, 결국 박 대통령은 물론 국회마저 공분의 대상으로 몰리는 부메랑을 맞는 현실을 초래했다.  
 
지금 상황을 엄밀히 말하면 정치권이 협상력을 잃으면서 ‘다수의 독재’가 판을 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상대를 무조건 ‘악’으로 규정한 다수의 대중은 의견이 다르면 무조건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다양성과 균형을 잃은 지금 상황을 민주주의 현장이라고 볼 수 있을까.  

비록 박 대통령이 스스로 검찰 수사를 받지 않았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국정조사와 특검의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광장에서는 ‘박 대통령의 구속’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든 특검이든 법원이든 헌법재판소에서도 엄정한 법의 잣대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결국 지금 촛불민심은 사태 초기 야당이 선동적으로 만들어낸 ‘최순실 괴물세상’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괴물세상은 이제 박 대통령은 물론 여야 정치권을 겨냥 하고 있으며, 한국사회는 다수의 독재자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위기에 빠졌다. 
   
영국 보수주의 정치가인 에드먼드 버크의 말처럼 이성과 법절차 등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요소가 소멸한 세상에 만들어진 괴물 세상이 무엇이든 결정해버리는  그런 시기가 도래한 걸까. 

이런 상황에서도 야당 정치인은 “탄핵 부결되면 전원 의원직 사퇴”를 외치며 대중 속에 숨어버리는 행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어 우려가 크다.   
 
이를 방증하듯 광장에 선 야당 정치인들의 말은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다.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탄핵에 찬성하면 살려주고, 부결되면 새누리를 이 지구상에서 없애버리자”라고 했다. 표 의원은 탄핵에 반대할 것 같은 국회의원 명단인 일명 ‘탄핵 살생부’를 만들어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또 최근 광장에서 핫하게 떠오르면서 지지율도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턱밑까지 쫓아온 이재명 성남시장은 “박근혜를 박정희의 유해 옆으로 보내자”고 했다. 문 전 대표가 광주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발언권도 얻지 못했지만 이 시장은 광화문에서 대중의 요청을 받고 이런 발언으로 부응했다. 

이제 9일 국회에서는 박 대통령의 탄핵 표결이 이뤄질 예정이고, 박 대통령에게는 약 4일간 새로운 카드를 제시할 시간만 남았다. 이 시간이 지나면 박 대통령은 나름의 입장을 표명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고, 법절차에 모든 것을 내맡겨야 한다. 

하지만 벌써부터 탄핵정국에서도 박 대통령에 대한 즉각 퇴진 주장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박 대통령은 이미 모든 기회를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박 대통령의 실책에 이어 정치권의 협상력 부재가 만들어낸 것이어서 앞으로 대한민국호의 향방을 좌우할 부메랑이 여야 모두에게 어떤 모습으로 발현될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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