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대한민국엔 ‘대통령’이 필요하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더 이상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듯하다. 종합편성채널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대통령에 대한 온갖 추문과 루머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고, '정치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연한 이들의 '수다'는 끊이질 않는다. 일부 언론사는 아예 '대통령'이라는 호칭도 생략하는 경제성(?)을 보이고 있다.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여론조사 지지율보다도 더 떨어져 있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대통령의 위상이다.

모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히 하자.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이 없었더라면, 미르-K스포츠 재단 사건이 없었더라면, 그 이후 무미건조했던 몇 차례의 사과도 아닌 사과도 없었더라면 작금의 상황이 벌어졌을까. 탄핵의 대상이 될 만한 중죄(重罪)인지 여부에 대한 논의는 제쳐두더라도, 일단 사안 자체가 회자되기에 민망하고 저급하다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과 언론의 시야가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있느냐' 또는 '대통령직을 계속해야 되느냐, 그만둬야 하느냐'에만 머물러 있다면 이는 이 사회의 책임 있는 주류 지도층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헌법적 절차에 의해, 또는 본인의 결단에 의해 대통령직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있고 또 그 권한을 온전히 수행할 권한과 책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당장 북한군이 침략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진다고 가정해보자. 대규모 전쟁이 아닌 일정 지역에서의 국지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충격과 혼란은 만만치 않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 국가의 군 통수권자는 누구인가. 누가 전쟁을 지휘하고, 최후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가. 누가 미국 대통령과 협상을 해야 하고, 누가 국제사회를 상대로 침략의 부당성을 호소해야 하는가. 좋든 싫든, 원하든 원치 않든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다. 

   


앞서 가정한 상황이 만약 터진다면, 우리 국민과 군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휘를 따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위기 극복과 질서를 위해서일 뿐이다. 국회에서 말하는 '비상시국'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비상시국이 터졌을 때 과연 지금과 같이 조롱과 비하, 희롱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대통령이 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이 외환이나 내란의 죄와 같은, 대통령으로서의 더 이상 기능하기 어려울 만큼의 중대한 반헌법적 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여러 시시비비에 대한 검찰 수사와 특검, 국정조사 등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지금 당장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완전히 중지시켜야할만한 합리적 논거를 찾기는 어렵다. 아무리 최순실 게이트가 심각한 부패-비리의 사슬일지언정, 그것이 헌법의 효력마저 정지시키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 박근혜를 공격하는 데 열중한 나머지, '대통령'의 권위마저 실종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박근혜 대통령'이 필요 없다는 주장은 존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오는 9일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 돼, 직무가 정지되더라도 마찬가지다. 만에 하나 헌법재판소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경우 다시 대통령의 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헌법이 정해놓은 질서이자 원칙이다. 질서와 원칙을 무너뜨리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지게 된다. 

우리 마음속에서 ‘박근혜’라는 이름은 완전히 지우더라도, ‘대통령’마저 지워서는 안 된다. 다음에는 더욱 현명하고 훌륭한 대통령이 선출되기를 희망하는 국민이라면, 더더욱 대통령의 권위와 직위를 온전히 지켜줘야 한다./제성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