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총선 불가피…반이민·고립주의노선 야당 영향력 확대 전망
[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이탈리아 마테오 렌치 총리가 중앙정부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큰 차이로 부결되자 사퇴를 선언했다. 역대 최연소 총리로 취임한 지 2년9개월 만이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내년 상반기 조기 총선을 시행할 것으로 보이며, EU 탈퇴를 선호하는 우파 야당이 우위를 점할 경우 이탈리아판 브렉시트인 '이탈렉시트'(Italexit)가 실현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현행 헌법은 상·하원에 동등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만, 부결된 개헌안은 상원의원 수를 줄이고 중앙 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개헌안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상원과 하원을 모두 통과했지만 최종 관문인 국민투표에서 가로막혔다.

이탈리아 선거관리위원회는 4일 이탈리아 전역에서 치러진 개헌 국민투표 개표 결과 반대가 59.95%, 찬성이 40.05%(재외 국민 투표 제외)로 집계됐다고 5일 밝혔다.

반대의견이 찬성을 약 20%p 차로 압도한 것으로 반대가 5~11%p 앞섰던 2주 전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보다 실제 표심에서 더욱 확대된 것이다. 투표율은 국민투표로선 이례적으로 높은 68.48%을 기록했다.

개헌안 부결은 우파 야당들이 기성 정치인에 대한 심판론과 함께 좌파진영의 지나친 관용·다원주의가 촉발한 반(反)이민 정서와 고립주의를 부상시켜 승리한 또다른 사례이자,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궤를 같이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렌치 정부가 제시한 개헌안은 상원의원을 현행 315명에서 100명으로 줄이고 입법권과 정부 불신임권 등 핵심 권한을 없애는 등 상원의 대폭 약화와 함께 중앙 정부 권한을 강화한다는 게 골자다.

개헌 추진은 양원제 채택 국가 중에선 유일하게 상원과 하원이 입법 거부권과 정부 불신임권 등 권한을 동등하게 지닌 이탈리아의 정치 체계가 정치 불안의 주요 원인이라는 시각에서 기인했다.

렌치 총리는 2차 대전 후 공화정 도입 이래 70년 동안 63번이나 정부가 바뀐 고질적인 정치 불안을 해소하고 정치를 안정시켜 침체된 이탈리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명분 하에 개헌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집권당인 민주당에서 내부 비판에 직면했다. 당내 거물급 인사를 필두로 한 비판론자들은 상원의 축소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손상시킴으로써 민주주의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또 총리에게 너무 큰 권력을 부여해 과거 파시즘의 악몽을 가져온 베니토 무솔리니와 같은 독재자를 출현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부 주장처럼 정치 비용 감소의 효과도 크지 않고 오히려 정치 체계 혼란만 가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렌치 총리의 사퇴로 당분간 이탈리아는 정치적 혼돈과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일단 2018년으로 예정된 총선이 내년 상반기로 앞당겨질 전망이다.

선거를 치를 때까지는 과도정부가 꾸려져 총선을 대비한 선거법 개정에 나설 필요성도 있다. 과도정부 수장을 맡을 렌치 총리 후임으로는 현재 내각 재무 장관을 맡고 있는 카를로 피에르 파도안 장관이나 피에트로 그라소 상원의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정치 지형의 격변도 불가피해졌다. 예상보다 큰 격차로 개헌 투표에서 패한 민주당 세력은 급격히 위축되는 반면, 개헌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서온 제1야당 '오성운동'과 반이민·반EU를 주장하는 '북부리그(NL)'의 영향력은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탈리아 현행 선거법 상으로는 내년 조기 선거를 통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 회의적인 오성운동이 집권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오성운동이 유로존 3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의 유로존 잔류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쳐 이탈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EU의 공동체주의가 한층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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