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를 방불케 했다. 기업 경영권의 향방과 사내 부서 문제, 대외 업무, 예산 계획 등을 둘러싼 거친 지적과 항의가 빗발쳤다. 심지어 회사에서 손을 떼라는 말까지 나왔다. 총수들은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했다.

그런데 그 곳은 주주총회도 아니었고, 주주들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바로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장이었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명분으로 국회의원들은 기업인들을 혼내고 다그치고 조롱했다. 

최순실 게이트의 저질성과 민감성을 고려했을 때, 재단에 돈을 모아준 기업들에게 분노의 화살이 향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치자. 그 동안 수차례 국정감사 증인으로 이름이 올랐으나,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명단에서 빼왔던 재벌 총수가, 여론에 떠밀려 얼굴을 내미는 것에 대한 얄미움도 한몫했으리라. 

게다가 우리나라의 청문회가 언제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청문'을 하는 곳이었던가. 얼굴 알리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의 신나는 슈퍼스타K가 되는 것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부터)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적어도 이건 아니었다. 헌법을 수호하겠다며 청문회를 연 국회가, 우리 헌법의 제1의 원칙인 '자유'를 무참히 짓밟았다. 급기야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은 폭탄선언을 했다. 자신의 할아버지이자 삼성의 창업자인 故 이병철 회장이 주도해 만든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고, 핵심 부서인 미래전략실도 없애겠다고 했다. 국내 최대 기업의 중요한 향방이 청문회장에서 결정되어버린 셈이다. 

청문회장에 앉아있는 국회의원들에게 무슨 권한이 있기에, 도대체 어디서 부여받은 권리가 있기에 기업의 주주 행세를 한단 말인가. 전경련이 잘했든 잘못했든, 왜 국회의원들이 한 민간단체의 존폐를 결정짓는단 말인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며, 정작 본인들이 훨씬 더 강압적인 자세로 기업을 좌지우지 했다. 최순실씨 공소장에 '강요 미수'가 쓰여 있다고 한다. 12월 6일 청문회는 미수도 아닌 말 그대로 '강요'의 연속이었다. 

현대자동차를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으로 만들어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이끈 정몽구 회장은 그나마 고개를 곧추 세우며 강렬한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정 회장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신화적인 기업인 故 정주영 회장이 일궜던 그 기적과 열정의 역사를 곁에서 지켜봤을 것이다. 그런 정 회장의 눈앞에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사농공상'의 전통(?)이 얼마나 쓰게 느껴졌을까.

지난 과거의 '영웅시대'가 완전히 잊힐 때쯤, 하나둘씩 우리를 떠나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그 자리에는 후회와 미련만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역사는 이렇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2016년 12월 6일은 또 한 번 시장경제와 사적자치의 원칙이 '정치'에 의해 유린된 날이었다고./제성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