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 청문회 총출동…전경련 해체론 재부상
탄핵 정국 돌입…"악영향 최소화, 경제회복 집중"
◇ 28년만 재벌 총수 청문회 소환…전경련 존폐기로 봉착

재계 굴지의 총수들이 '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 총출동했다.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 총수 9명이 지난 6일 일제히 청문회장에 불려 나왔다. 기업 총수들이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것은 1988년 5공 청문회 이후 28년 만이다. 

   
▲ 지난 6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 중계방송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총수들은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을 비롯해 최 씨 일가에 대한 금전 지원이 청와대와의 검은 뒷거래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이에 기업들이 출연금이나 기금 명목으로 낸 돈의 뇌물성 여부를 따져보자는 게 청문회의 핵심이었다. 

총수들은 청문회에서 대체로 민감한 질문은 피하면서 미리 준비한 답변을 반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의 지시나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웠다며 '강요' 정황을 시사하면서도 금전의 대가 관계는 부인했다. 돈을 지원하긴 했지만 부정한 청탁을 하거나 대가를 바란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르재단 등 출연금이나 최 씨 일가에 대한 특혜 지원 의혹과 관련한 질의에 '모르쇠'로 일관해 논란을 일으켰다. 총수들은 무성의한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아 눈총을 받았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언제 최순실 씨의 존재를 알았는지에 대한 의원들의 집중적인 추궁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최순실 씨와 관련된 대부분 질의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라고 답해 일부 의원의 질타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직을 사퇴하게 된 경위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조 회장은 의외로 담담했다.

조 회장은 "열심히 했는데 사퇴를 통보받았다"면서도 최순실 씨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물러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런 내용을 신문기사를 통해서 알았기 때문에 정확히 대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청문회를 두고 여론은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인 재벌이 피해자인 척하는 것은 문제라는 입장을 견지했고, 한편에서는 한국 사회의 경제성장을 위해 일해야 할 재벌을 청문회에 부른 것 자체를 비판했다.

재계의 맏형 격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번 청문회에서 해체 위기에 봉착했다. 전경련 최대 회원사인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이 전경련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여러 재벌 기업이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존속 자체가 위협받는 처지에 몰렸다.

일부 의원의 '재촉성' 질문에 일부 그룹 회장들이 마지못해 긍정적 답변을 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회장단을 구성하는 총수들이 전경련의 존재 이유를 옹호하기는커녕 '해체'에 동조했다는 것은 현재 전경련이 처한 상황을 잘 대변한다는 평가다.

이후 전경련은 쇄신 방향에 관한 소속 회원사들의 의견 수렴에 착수했다. 전경련 안팎에서는 미국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싱크탱크로 전환하는 방안,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해 연구단체로 거듭나는 방안, 법정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와 통합하는 방안 등 여러 대안이 거론되고 있다. 

내부에서는 이번 기회에 전경련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하고 인적 쇄신을 하는 등 '환골탈태' 수준의 개혁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조직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공감대가 팽배하게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대통령 탄핵 가결, 불확실성 일부 해소…"흔들림 없어야"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일 결국 국회에 의해 탄핵당했다. 헌정사상 두 번째로 국회의 탄핵을 받은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2004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통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지만 정부의 신속한 대응으로 큰 경제 혼란은 없었다. 

당시 이헌재 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 부처가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시장의 불안을 최소화했고 대외에 한국 경제의 건전성을 알리며 급속한 자금이탈에 대한 우려도 낮췄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최종 판결 전까지 정치 불안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데다 주요 경제지표마저 줄줄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경제 위기가 더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비관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전반적인 경제 상황은 그때보다 더욱 심각하다는 분석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기 직전 해이던 2003년 한국 경제는 고유가와 내수·투자 위축이 맞물리며 2.9%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는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 이후 최저 성장률이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경제 성장률은 5%대를 목표로 삼는 분위기였다. 이듬해인 2004년에는 성장률이 목표치에 가까운 4.9%로 회복했다. 수출도 매달 전년 동기대비 30∼40%씩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목표치가 성장률 3%대로 낮아진 데다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계속해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2.6% 성장한 한국 경제는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2%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 경우 한국 경제는 사상 첫 3년 연속 2%대 성장하게 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국 혼란이 이어지면 불확실성이 더욱 확산돼 경기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이에 경제계는 국회에서 박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자 불확실성 최소화 차원에서 경제 사령탑 단일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단체들은 정국 안정을 통한 경제 살리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환경 변화나 리스크 등이 많은데 이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계획을 정부가 빨리 수립해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기업은 투자, 일자리 창출 등에 노력하고, 정부도 경제 주체들의 불안감과 심리 위축을 막고 대외신인도를 유지하기 위해 정책 추진의 일관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