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 이후 새누리당 친박과 비박 간 묵은 갈등이 결국 폭발했다. 12일 친박계 당 지도부와 비박계의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는 각각 언론 앞에서 서로의 탈당을 요구하며 정면충돌했다.

지난 탄핵 표결에서 일부 친박들까지 탄핵에 찬성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일각에서는 ‘친박의 소멸’도 예상했다. 하지만 친박은 표결일 밤에도 만찬 회동을 열고 세 결집에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친박은 11일 심야회동을 갖고 김무성·유승민 두 의원을 거론하며 비박계와 결별을 선언했다. 당내 ‘혁신과 통합연합’을 출범시키기로 결의했다. 이정현 대표 등 현 지도부 퇴진 이후에도 당을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심야 회동에 참석한 친박계 의원은 41명이지만 위임장을 제출한 의원 10명을 합하면 총 51명이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또 이 모임의 공동대표로 정갑윤 의원, 이인제 전 의원, 김관용 경북지사를 선임했다.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12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원내지도부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 정진석 원내대표, 김광림 정책위의장./연합뉴스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 대변인인 황영철 의원은 12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소위 ‘최순실의 남자’ 명단을 발표, “즉각 당에서 떠나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황 의원은 이날 소위 “최순실의 남자”라며 ‘친박 8적’을 규정하면서 이정현 조원진 이장우 최고위원과 서청원 최경환 홍문종 윤상현 의원, 또 김진태 의원을 거명했다.   

비시위는 다만 정진석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재신임의 뜻을 모았다. 황 의원은 “정 원내대표는 그동안 당에서 균형추 역할을 했다. 중간지대에서 당을 이끄는 역할을 잘 수행해왔다”며 “지금으로서는 정 원내대표가 당을 대표하는 여러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고 힘을 보태줘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비시위는 친박을 향해서는 보수의 재건을 반대하는 수구세력으로 규정한 상태이다. 황 의원은 이날 “친박계가 당을 사당화하려는 술책을 부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친박은 비박을 향해 분파주의적 행동으로 해당 행위를 했다고 반격했다. 친박계 모임 대변인을 맡은 민경욱 의원은 “28만 당원들이 뽑아준 지도부를 신임하지 않아 협상력을 바닥냈다”고 반발했다.

이로써 새누리당은 출범 4년 만에 당이 해체될 위기까지 몰리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최순실 사태 이전부터 대표 보수당으로서 정체성을 정립하지 못했다는 위기감이 있었고, 중요한 안건마다 의견일치를 보이지 못해온 친박과 비박이 함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많았다. 
 
특히 지난 탄핵정국에서 친박 지도부의 리더십은 완전히 상실한 상황으로 이는 찬성표 234표 중 새누리당 소속 의원 절반가량인 62명이 탄핵에 찬성하는 표심으로 나타났다. 야당과 무소속 의원 172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고 가정할 때 새누리당 128명 중 66명만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것이다.

한편, 친박과 비박계가 서로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565억원에 이르는 당의 재산과 302만명의 당원 수와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35년간 명맥을 이어온 새누리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2015년 기준 재산 총액이 토지 165억원, 건물 78억원, 현금 및 예금 155억원을 포함해 총 565억원에 달한다. 현재 146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재산보다 4배 가까이 많다. 

전국 17개 시·도 당사와 302만 명의 당원도 있다. 이중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 수만 38만명(12.5%)에 달한다. 지난해 새누리당이 당비와 국가보조금, 기탁금 등으로 거둔 수입은 561억800만원이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내 일부가 탈당해 재창당을 하거나 특히 당이 해체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많았다. 특히 당이 해체하려면 최고위원회와 전당대회 의결을 거쳐야 하므로 친박 지도부가 이를 용인할 리 없다. 또 신당을 창당하려면 중앙당 1개와 지방당 5개 이상, 당원 1000명 이상이 필요하므로 내년 대선 전까지 조직을 정비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한편, 정진석 원내대표를 위시한 원내지도부가 이날 오후 총사퇴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광림 정책위의장과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까지 원내지도부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데 대해 집권여당 원내대표로서 책임지는 게 온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사의를 밝혔다. 정 원내대표는 “새 원내대표를 조속히 뽑아달라. 그때까지 소임을 다하겠다”고 말해 당내 지도부에 인적 구성에 변화의 여지가 생겼다. 

친박 지도부와 비박계 의원들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충돌하는 와중에 정 원내대표가 전격 사퇴를 발표한 것이 친박 지도부에 부담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이정현 대표도 오는 21일 사퇴를 앞두고 있어 이후 당내 양대 세력의 대립 양상이 어떻게 흘러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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