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음악에도 '주인'이 있을까? 있다면 누구일까. 그 노래를 부른 사람, 만든 사람, 아니면 만든 사람의 아들?

명곡 '아름다운 강산'을 둘러싸고 아름답지 않은 논란이 촉발됐다. 불을 지핀 사람은 이 노래를 만든 신중현의 큰아들 신대철이다.

신 씨는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아름다운 강산'의 탄생배경을 설명한 뒤 "(이 노래는) 박사모, 어버이 따위가 불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촛불집회 집행부는 나를 섭외하라. 내가 제대로 된 버전으로 연주하겠다"고 글을 마무리 했다. 이 글에는 3만명 넘는 네티즌들이 '좋아요' 의견을 표시했다.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아름다운 강산'의 '제대로 된 버전'이란 건 뭔가? 

원작자가 불러야 '제대로 된 버전'인 거라면 신대철 역시 이 곡의 원작자는 아니다. 촛불집회에는 부친인 신중현, 혹은 이 곡을 재해석한 이선희를 섭외하라고 했어야 맞다. 

   
▲ 명곡 '아름다운 강산'을 둘러싸고 아름답지 않은 논란이 촉발됐다. 불을 지핀 사람은 이 노래를 만든 신중현의 큰아들이자 시나위의 리더인 신대철(사진)이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씨가 "나를 섭외하라"고 말한 의중에 대해서는 짚이는 구석이 있다. 그의 글에는 '나의 아버지'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는 '아름다운 강산'에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말 그런가?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순간 우리는 기묘한 '대리전'을 시작하게 된다. 박정희의 딸로 태어나 대통령에까지 당선된 박근혜의 지지자들을, 신중현의 아들로 태어나 음악계의 거물이 된 신대철이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아버지의 노래'에 대한 일말의 권위까지 주장하고 있다. 누가 이 상속을 승인했나? 이게 과연 우리가 원하는 새 시대의 논쟁인가? 

신대철의 설명에 의하면 그의 부친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탄압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아름다운 강산'을 만들었다. 그런데 신대철은 지금 부친의 권위를 빌려 원작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박사모와 어버이연합도 엄연한 시민들이다. 그들이 무슨 엄청난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왜 그들의 노래만큼은 '제대로 된 버전'이 아니어야 하나? 아무리 부친의 작품이라도 이건 억지다. 

   
▲ 신대철 페이스북 캡쳐


신대철의 글 안에는 우리가 최근의 시국을 '단순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 못하다는 여러 정황들이 녹아 있다. 박근혜를 박근혜로 바라보지 못하고, 여전히 그를 '박정희의 딸'이라는 프레임에 가둠으로써 과거의 모든 시대적 비극까지 현 대통령에게 덤터기 씌우려는 의도는 온당치 못하다. 연좌제는 끝났다. 그게 새로운 시대의 규칙이다.

신대철은 이미 스스로도 밴드 '시나위'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로 한국 록계의 거물이다. 그가 이끄는 시나위는 2014년 '밤이 늦었어'를 포함한 2곡의 디지털 싱글을 발표했다. 서태지, 임재범, 김종서 등을 발굴한 한국 록밴드의 아이콘이 여전히 신곡을 내고 활동한다는 건 존경스러운 일이다. 

시나위는 시나위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굳이 아버지의 권위를 빌려와 '아름다운 강산 원작자 코스프레'를 할 필요는 없다. 언젠가 시나위 역시 '어버이연합도 아는 노래'를 갖게 되길 기원한다. 음악은 분열이 아니라 통합의 매개로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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