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새누리당 비박계의 집단 탈당이 예고된 가운데 탈당파와 잔류파 간 서로 ‘가짜보수‘라고 힐난하며 보수 선명성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탈당파는 ‘보수 혁신’을 내세워 새누리당의 잔류파를 향해 “가짜보수”라고 힐난하고 있다. 새누리당을 극우로 몰면서 자신들은 합리적인 보수임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잔류파도 인명진 목사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해 ‘보수 혁신’을 과제로 내세웠다. 인 비대위원장은 26일 “친박핵심 청산은 새누리 개혁의 본질”이라고 밝히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도 찬성한다”고 밝혔다.

최순실 게이트를 불러온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집권여당 전체 가운데 소위 친박 의원들에게만 묻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들끼리 ‘진짜보수’를 내건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것은 당장 추가 탈당과 관련이 깊다. 한쪽은 추가 탈당을 부추기고 또 한쪽은 추가 탈당을 막기 위한 것으로 탈당파는 몸집을 최대한 부풀려 제3당으로 창당하면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영입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을 쪼개면서 제 몸집 불리기 위해 보수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보수층 지지자들은 이들이 제각각 주장하는 ‘진짜보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보수 진영 안에서 ‘보수 논쟁’이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는 만큼 이참에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것에 많은 이들이 찬성할 것이다. 사실 보수 정당은 영남이라는 지역에 기반한 데다 보수의 가치도 ‘보수=반공’이라는 이념적인 이미지로만 각인돼 걸핏하면 꼴통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에 제대로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보수의 가치’가 무엇이고, 그동안 나라 발전에 기여한 ‘보수 세력’ 또는 ‘보수 인사’가 잘 조명되어서 시대에 맞는 새로운 ‘보수의 역할’을 풀어내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새누리당의 탈당파와 잔류파의 보수 경쟁은 그저 현재 탄핵 정국의 책임에서 빠져나가는 데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사건을 대하는 여야 정치인의 태도에서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의 기본 질서가 망각되고 있지만 보수우파 의원 가운데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가 없었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당 의원들이 박 대통령을 향해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모든 국정에서 손을 떼라며 윽박질렀던 일이 그렇다. 또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 모두 주요 증인들과 개별 접촉한 사실이 있는데도 이완영 의원 등 여당 의원에만 비난이 집중한 것도 그렇다.

하지만 이를 조목조목 보수의 논리로 반대하고 야당과 협상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여당 의원은 없었다. 여당 잔류파가 위촉한 인명진 비대위원장마저 취임 일성으로 이완영 의원에 대한 징계부터 거론한 것은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시시비비를 잘 가리자는 것보다 여론을 따르겠다는 태도로 지적받고 있다.  

   
▲ 지난 6차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한 새누리당 해체 요구 집회에서 시민들이 '4월 퇴진, 6월 조기대선'을 당론으로 채택, 탄핵 추진에 제동을 건 새누리당의 대형 깃발을 찢고 있다./연합뉴스


이래서 탈당파나 잔류파나 여당의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은 대체 ‘진짜보수’를 내세워 무엇을 변화시킬 것인지 의아하다.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여당 의원들이 보여준 것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온 모든 대내외 정책을 부정하는 야권에 침묵한 것뿐이다. 실제로 보수신당은 당장 “추경 반대와 법인세 인상”을 선언했다. 침묵을 넘어서 야당과 공조할 기세이다.

그동안 탈당파들도 집권 여당으로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법인세 인상 반대, 한반도 주한미군 사드 배치, 유엔 안보리와 함께해온 대북제재 등 모든 정책을 함께해왔다. 그런데도 선명성 부각이라는 것만 내세워 박 대통령이 추진한 모든 정책을 반대하는 태도로 ‘보수 혁신’을 주장한다면 국민이 납득할까.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회의원들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시장경제주의가 즉, 자유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재벌기업의 범죄는 철저하게 밝혀내 처벌하고 악습은 고쳐나가되 시간이 갈수록 시장경제를 꽃피우도록 해야 하는 책무가 보수우파 정치인에게 있다. 

그래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도 그가 2010년 펴낸 ‘보수의 유언’이라는 회고록에서 ‘보수는 지키는 것과 고치는 것을 똑같이 중시한다’고 말한 바 있다. 흔히 보수는 ‘사회주의적인 개혁에 대항한다’는 의미에서 수구파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많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평소 보수파로 보이지 않으려는 ‘샤이 보수파’가 많은 이유이다. 이들은 선거때에만 투표로 성향을 드러낸다.

하지만 개혁적인 보수파는 무엇을 변화시키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 흔히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놓고 진보와 보수가 싸우지만 이때 보수우파 정치인이라면 선별적 복지에 한목소리를 내고, 사각지대를 방지하는 대안까지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인기 영합적으로 보편적 복지 쪽에 줄을 선다면 포퓰리즘이 판치는 세상을 만들 뿐이다.

그래서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보수란, 더 신중하고 더 단계적이고 더 침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진보에 비해 매력이 떨어지는 보수우파를 선택한 정치인들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무거운 책무를 가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소설가이자 자유주의 선봉에 선 복거일 선생은 “민중주의와 소득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자유주의는 위기 속에 놓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개인을 단위로 하는 자유주의는 사회 전체를 단위로 보는 전체주의와 늘 대립해왔고, 인류가 사회를 이루어가는 한 전체주의는 사람들에게 거의 주술적 호소력을 지녔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는 개개인의 자유를 외치다가도 대중의 목소리가 너무 클 때에는 이와 상반되는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대개 진보는 무엇인가를 급격하게 바꾸고자 할 때 대중을 모아 큰 목소리를 낸다. 이 때마다 다수의 침묵하는 보수가 나오는 배경이다.

복거일 선생의 주장을 새삼 거론하는 이유는 새누리당의 잔류파이든 탈당파이든 또 앞으로 입문할 누구라도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정치인이 되려면 우리 민주 역사에서 자유주의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갈지 소신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소신이 아예 없거나 고민해본 적도 없이 의원 배지를 오래 유지시킬 방법만 좇는다면 늘상 당이 중요한 선택을 내려야 할 때 우파는 대립하고 갈라질 수밖에 없다. 탈당파나 잔류파 새누리당 의원 모두 이제라도 보수우파 시민 목소리를 경청하고 소통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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