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젠다 실종·우울한 경제전망·언론 무책임…광장에 매몰된 의회
   
▲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대표
문턱 효과(Threshold Effect) 앞에서 중남미로 가는 대한민국

문지방을 넘으려면 문턱 높이까지 발을 들어 올리지 않고는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러나  문턱 높이까지만 발을 들어 올리고나면 쉽게 문턱을 넘어 설 수 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문턱 효과다.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살짝 변증법스러워서 보기에 따라서는 긍정적인 패러다임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가령 박정희 정부 시절 동력자원부 장관이었던 양윤세의 증언 등이 그렇다. 

‘얻어먹고’ 사는 한국인에서 ‘벌어먹고’ 사는 한국인으로! 얼마나 떳떳하냐. 자립경제의 확립이라는 국가 지상 목표 달성 과제는... 일보일보 전진해가고 있다....남에게서 공것을 받아먹지 않을 때, 또 이를 바라지 않는 마음의 자세가 독립되었을 때 비로소 자립하였다 할 수 있으리라. 필자는 60년대가 이러한 자세를 확립하는 세대가 될 수 있다 믿으며...한 미국 친구가 필자에게 해준 말이 쟁쟁히 울리고 있다. “경제는 일단 어떤 수준에 도달하면 전진하기 마련이다. 후퇴를 시킬래야 시킬 수 없으리라. 한국경제는 이미 이 수준에 도달하여 있다.” - 양윤세, 〈국제경제인들이 보는 한국- IMF총회의 인상〉, 《신동아》 1965년 12월호 -

그러나 문턱 효과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그 이후의 상황이다. 일단 그 문턱을 넘은 뒤에는 되돌아 나오기가 어렵고 그렇다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나 최악의 경우 불가능하다. 문턱으로 예를 드니까 실감이 안 난다. 핵을 이고 사는 나라답게 방사선으로 예를 들어보자. 방사선은 핵폭발 시 방출되며 초기 핵 방사선과 잔류 핵 방사선으로 구분된다. 이때 인체가 받는 방사선 피해 정도를 따지는 단위는 렘rem이다. 100렘에서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인체는 그 정도의 손상쯤은 얼마든지 치유할 수 있다. 200렘이 되면 아프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구역질이 난다. 이 때의 병명은 ‘방사선 중독’이다. 200렘 중반을 넘어가면 상황이 심각해지고 300렘에서는 집중적인 치료를 받지 않는 한 사망확률은 50%에 달한다. 대략 300렘이 문턱 효과의 발생 지점인 것이다. 

   
▲ 2016년 대한민국은 어떤가. 광장이 의회를 압도하고 그러는 가운데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광장이 의회에 악용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다./사진=연합뉴스


건국 이후 대한민국은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문턱 효과를 발휘하면 달려왔다. 그러나 어느 시점(대략 김영삼 정부 시절로 본다) 이후 부정적인 의미의 문턱 효과 발생을 향하여 질주해 온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명확한 국가 아젠다는 사라졌으며 녹색성장이니 창조경제니 하는 것들이 잠시 선을 보였다가 후임자들에 의해 정치적인 이유로 사라졌다. 김인영 교수의 발제는 그 문턱 너머에 중남미가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에서 출발한다. 중남미란 대체 무엇인가. 김인영 교수는 중남미의 얼굴을 조갑제 기자의 글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중)남미화’의 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갑제는 ‘남미화’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잦은 쿠데타, 부패한 관료-지도층, 강성 노조, 과격한 언론, 좌경적 경제정책, 반미(反美)감정, 계층 갈등, 빈부(貧富)격차, 얇은 중산층, 법질서 붕괴와 범죄증가, 전통적인 가치관의 취약 내지 붕괴, 종교의 정치개입(을 의미한다). 남미화(南美化)의 가장 큰 특징은 좌우(左右)갈등의 만성화로 법질서가 잡히지 않고, 공동체의 규범이 허약하다는 점이다. 남미(南美)는 우리보다 민주화를 먼저 시작했으나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제도, 중산층, 국민교양이 준비되지 않아 쿠데타, 게릴라, 민중봉기가 되풀이 되었다.”

김인영 교수는 ‘남미화’의 여러 특징들 가운데 2016년 한국정치의 문제점으로 ‘민주화를 뒷받침할 제도와 국민교양의 미비, 그리고 과격한 언론, 강성 노조, 반미(反美)정책, 법질서 붕괴, 좌경적 경제정책의 채택’에 주목한다. 100% 동의한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결국 경제문제와 동전의 양면이다.

조갑제 기자가 지적한 빈부격차, 얇은 중산층은 허술한 정치를 조장하는 일종의 기반이자 토대다(정확히는 악순환 구조라고 볼 수 있겠다). 빈부 격차와 얇은 중산층은 보통 8자 경제라고 불리는 중남미 눈사람 형 경제라는 것을 만들어 낸다. 중남미의 8자형 경제로 진입했는지를 따져보는 바로미터는 대략 세 가지다.

주거공간의 분리, 교육 기관의 분리 그리고 시장에서 상류층과 하류층이 분리되는 경우다. 주거공간의 분리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요새 주택’의 등장이다. 그리고 그 요새주택을 폐쇄적으로 연결하는 도로의 존재 유무다. 예전에도 부자들이 사는 동네는 있었다. 성북동 등 강북의 몇몇 유명한 동네가 있었지만 요새는 아니었다. 최근 10년 새 지어진, 초고층으로 솟은 아파트들은 단지 내 출입 자체를 통제한다. 삼성동의 모 아파트는 비가 오고 눈이 올 때도 경비원이 아파트 입구에 서서 출입자를 가로막는다. 그나마 아직 폐쇄도로까지는 안 나간 것 같지만 모를 일이다. 중남미가 배경이 되는 인질극 영화들을 보면 이 요새주택들을 비주얼로 확인할 수 있다. 

   
▲ 경제성장을 위한 명확한 국가 아젠다는 사라졌으며 녹색성장이니 창조경제니 하는 것들이 잠시 선을 보였다가 후임자들에 의해 정치적인 이유로 사라졌다./사진=연합뉴스
  
교육의 분리도 심각하다. 아니 어쩌면 가장 심각한 것이 이 부분인지도 모른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사다리다. 이 사다리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나라는 희망 자체를 잡아먹은 나라다. 이게 나라냐며 광장으로 몰려나왔지만 실은 그들이 비난한 나라는 몰려나온 사람들이 만든 나라다. 다들 자기 자식 더 좋은 대학 보내겠다고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덤볐다. 최씨 모녀는 그 최악의 사례일 뿐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솔직히 위장 전입과 최씨 사례 사이에서 경중 이상 무엇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교육의 분리는 상류층과 하류층의 교육 기관이 분리되는 것이다. 현재 이러한 경향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아이의 학문적 재질보다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한다면(이미 대부분은 그렇게 믿고 있다) 이때부터는 분명 심각한 문제다. 시장의 분리는 하이엔드 마켓과 로엔드마켓의 분리 그리고 공식경제와 비공식경제의 분리라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거기까지 진행된 것 같지는 않다. 

중남미는 민주화를 뒷받침할 제도의 미비(혹은 불신), 경제 성장 동력 상실, 국민 지력 부족 그리고 무책임한 언론이 만들어 낸 결산이다. 2016년 대한민국은 어떤가. 광장이 의회를 압도하고 그러는 가운데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광장이 의회에 악용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이 길의 끝이 중남미에 닿아있다는 김인영 교수의 글에 깊이 공감하며 다만 개인적으로는 중남미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베트남, 그리스 등의 길도 있지 않은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 본다.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대표


(이 글은 29일 마포 리버티홀에서 자유경제원 주최로 열린 ‘위기의 2016 무엇이 문제였나’ 2016 평가세미나에서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대표가 발표한 토론문 원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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