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외풍가림막 쳐준들 온실속 화초가 튼튼하게 자랄까?

   
▲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임신 전부터 먹어야 하는 필수영양제가 유행이라 한다.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똑똑한 엄마들의 선택 덕분에 ‘엽산’을 충분히 섭취하고 태어난다. 신경계통의 발전을 가져오는 엽산의 섭취가 남보다 총명한 아이, 학습능력도 우월한 아이로 태어나게 할 수 있다는 욕구 탓일테니 ‘앞서 나아가고자’하는 욕구 발현은 이미 태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일테다.
 

그렇게 태어나면 학령 전부터 온갖 특기 교육에, 선행학습에 온전히 하루를 바치고, 입학 하면 보습학원에서 복습은 물론 예습까지 철저히 하며 ‘앞서가기’에 열을 올린다.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 없는 사라진 ‘전설’이 되었지만, 오래전 선풍을 끌었던 ‘속셈’학원이 아직도 기억에서 생생하다. 뱃속에서부터 시작되는 ‘선행학습’의 폭풍은 학교 교육과정의 범위를 넘어서 출제되는 상급학교 전형의 시험문제나 대학의 논술 문제들과, 남보다 반걸음이라도 앞서야만 직성이 풀리는 학부모의 욕구가 의기투합하여 사교육 기관에 질질 끌려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연출해왔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교육 규제법)은 이를 보다 못해 만든 법인 것을 모르지 않는다. 이 법에 따르면 학교에서는 선행학습을 ‘조장’하거나 ‘유발’할 수 없게 되므로 이제 이 법이 발효될 2학기부터 초중고교에서 해당 학년의 교육과정을 벗어난 내용을 가르치거나 시험에 출제하면 학교나 교사가 징계를 받게 된다. 공교육기관인 학교는 법을 위반할 시 교원 징계, 재정 축소, 정원 감축 등의 실효적인 제재가 가능하므로 규제가 실시될 경우 경우에 따라 교사들은 더욱 위축될 것이다. 학원 역시 선행교육을 한다고 광고하거나 홍보하는 행위를 규제받게 된다.

그러나 사교육은 광고제한 정도에 불과한 선언적 수준의 규제에 머물러 오히려 사교육을 더 조장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우려도 있다.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학벌주의, 지나친 입시경쟁이 여전히 존재하고, 지나치게 어려운 교육과정 같은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근본적 처방 없이 규제일변도의 처방은 애초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나을 것이라는 예측이 어렵지 않다.
 

물론 이 법대로라면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은’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에 학원을 다닐 수밖에 없다는 명분은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법의 실효성은 우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선행학습은 학교보다는 학원, 교습소 등 사교육기관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사교육기관에 대한 선행교육 규제는 광고 제한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입시제도가 변화하지 않는 한 여전히 남보다 미리 먼저 많이 학습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쳐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를 버리지 못할 것이고 학원의 ‘공포조장 마케팅’과 맞물려 쉽게 근절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걱정할 것은 ‘선행학습’이 아니라 ‘선행학습밖에 보지 못하는 눈’이다. 애초에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지향하고 학생들의 ‘학력 신장’과 ‘사람다운 사람으로 기르기’에 뜻을 두었다면 학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자생적으로 교육의 생태를 정착시킬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외풍을 막아주겠다고 이리저리 바람막이를 쳐준들 온실 속의 화초가 튼실하게 자랄 수는 없을 것이다.


스산한 봄바람이 부는 학기 초, 쏟아지는 온갖 공문 덕분에 ‘온라인 업무포탈’을 열기가 겁이 난다. 의도는 좋으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 부분적인 규제만으로는 고질적인 총체적 난국을 헤쳐나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신명나는 봄이 될 수 있는 날은 언제가 되려는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조윤희  부산 금성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