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점 최다인원 공개에 촛불집회 주최측 불만…집회 전날 언론에 일방 통보
[미디어펜=한기호 기자]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지난 주말 처음으로 역전당한 촛불집회 주최측이 경찰측의 인원 집계를 계속 문제삼자, 경찰이 자체 추산 인원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내놔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지방경찰청은 13일 "기존에는 언론에 30분 또는 1시간 단위로 일시점 운집 인원을 공개했고, 최근에는 가장 많이 모였을 때 한 번만 공개했으나 자꾸 혼란만 야기돼 경찰 추산 인원을 비공개하기로 했다"고 언론에 통보했다.

비공개 방침은 이철성 경찰청장의 최종 판단과도 다르지 않다고 서울경찰청은 밝혔다. 언론과 사전 협의는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의 인원 추산이 갈수록 논란이 되고, 몇 주 전부터는 탄핵 찬반을 놓고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단체들이 동시에 집회하다 보니 어느 집회 참가 인원이 많은지를 두고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무조건적 탄핵 인용, 즉각 하야, '이석기 석방' '사회주의 혁명' 등 구호가 만연하던 민주노총 등 주축의 촛불집회는 새해 첫 주말이던 지난 7일 경찰이 일시점 최다 2만4000여명 참가로 추산했다. 

   
▲ 그동안 퇴진행동측이 총 11번 주최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집회에는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선거비용 사기 등 혐의를 인정받아 총 징역 10년형이 선고돼 복역 중인 이석기 구 통합진보당 전 의원의 석방을 주장하는 각종 퍼포먼스와 서명운동이 빠짐없이 목격돼왔다./사진=미디어펜

박 대통령 탄핵 반대와 사드배치를 비롯한 한미동맹 강화를 주장하고, 존재 여부와 조작 논란을 빚고 있는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폭로 보도, 논란을 묵인하고 인권침해 소지를 드러낸 특검의 수사 태도 등을 규탄하는 태극기 집회는 3만7000명으로 경찰은 집계했다.

이때 공식 인원 집계에서 첫 역전을 당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경찰의 추산 방식이 잘못됐고 집회를 방해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의심된다며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 고소까지 거론하는 등 겁박하고 나섰다.

   
▲ 지난 7일 서울 강남 삼성역 코엑스 인근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엔 경찰 추산 3만7000명이 모여들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JTBC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이 저질러온 광범위한 국정농단의 '스모킹건'이라며 보도한 태블릿PC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강력 제기했다./사진=미디어펜

태극기 집회 주최측이 '100만 촛불'에 빗대어 100만명 안팎으로 발표하는 자체 추산 규모를 명확한 근거가 없이 부풀려졌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당초 퇴진행동측이 자체 추산으로 '100만 촛불'을 거론하기 시작하고 1회 최대 232만명, 연인원 1000만명 돌파 등을 주류 언론과 함께 기정사실화해온 점을 비춰보면 소위 '내로남불', '본말전도'식 논란제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은 집회 시 충돌·안전사고 등 돌발상황 발생에 대비해 시간대에 따라 특정 지점에 모이는 인원의 증감을 헤아리고, 그에 맞춰 경찰력을 증감하거나 이동시킨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일시점 기준 최다 인원 집계를 중시한다. 이를 위해 쓰이는 추산 방식은 '페르미법'이다. 3.3㎡(1평)당 앉으면 5~6명, 서면 9~10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보고 면적당 인원을 추산하는 방식으로 미국, 일본, 이탈리아, 브라질 등 여러 국가 경찰도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단순 일시점 인원이라는 점에서 누적 인원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잣대는 되지 못하지만, 집회의 세(勢)를 가늠하는 기준 중 하나는 될 수 있다.

   
▲ 지난 7일 서울 강남 삼성역 코엑스 인근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엔 경찰 추산 3만7000명이 모여들었다./사진=미디어펜

   
▲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7일 퇴진행동측이 주최한 제11차 박근혜 대통령 탄핵·하야 요구 집회에 참석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지하는 글을 현장 사진과 함께 게재했다./사진=박원순 시장 페이스북 캡처

'연인원 다수'를 주장하면서도 일시점 최다치에서 크게 밀린 퇴진행동측은 경찰의 일시점 추산을 문제삼아 더 이상 공개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경찰은 본래 내부 필요에 따라 인원을 추산하므로 언론에 추산 인원을 공식 발표해온 것은 아니며, 같은 방식을 사용하는 국가들처럼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주최 측은 집회의 전체 규모를 강조해 여론의 크기를 최대한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기 마련이다.

퇴진행동은 박원순 시장이 직접 집회에 참여할 정도로 촛불집회에 우호적인 서울시가 집계한 광화문 인근 지하철역 승·하차인원 통계 등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인원을 추산한다고 주장하지만, 경찰은 이런 방식을 내부적으로 검토했으나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일시점 최다인원 방식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찰은 논란이 지속되자 자체적으로도 아예 인원 추산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매뉴얼을 만들 계획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탄핵 정국과 맞물려 집회 참가자 규모가 국민적 관심사인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인원 비공개 방침을 세운 게 적절하냐는 비판이 나온다.

어떤 인원 추산 방식이든 정확성의 한계가 불가피하다면 경찰측이 '검증된 방식'으로 여기는 페르미법 추산 결과도 국민들에게 판단 참고자료로 제공하는 게 옳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