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유력 대선 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귀국 후 첫 주말인 14일 고향인 충북 음성을 방문해 사실상 대선 출정식을 열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전 생가 주변에서 음성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10년동안 배우고 실천했던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또 “부강하고, 번영하고, 모두의 인격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내가 앞장서겠다”고 말해 대권도전 의지를 내비쳤다.

반 전 총장의 모친이 살고 있는 충주시에서 이날 오후 가진 충주시민인사회에서는 주최측 추산 약 2000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또 반 전 총장이 괴산에서 장모님 묘소에 성묘했을 때에는 괴산군 주민 250여명이 나와 환영했으며 반 전 총장과 인사를 나눴다. 

귀국 이전부터 ‘반기문 대망론’을 불러일으킨 반 전 총장이 비로소 냉엄한 현실정치의 무대에 올랐다. 지난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활동한 경험은 다른 대선후보와 비견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복잡한 국내정치의 매커니즘을 견딜 맷집이 좋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동생·조카 기소, 박연차 23만달러 의혹에 정직한 대응

반 전 총장이 뉴욕에서 귀국하기 이전부터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달러를 받았다는 뇌물수수 의혹이 일었다. 

또 반 전 총장의 동생 반기상과 그의 아들 반주현이 미국 연방검찰에 50만달러 뇌물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이미 사망한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과의 연루설도 있다.

이에 대해 반 전 총장은 “가족이 연루된 것에 당황스럽고 송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마다 친인척 비리와 비선실세 농단이 가장 큰 문제가 되어온 만큼 야권에서는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시하며 보다 강력한 검증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따라서 반 전 총장은 기성 정치인처럼 얼버무리는 화법으로 이미지를 깎아먹어선 안될 것이다.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정직하고 선명한 해명으로 의혹을 하나씩 풀어나가야 그가 기치로 내건 ‘정치교체’에 부합할 수 있다.

또한 ‘박연차 23만달러’와 관련해서도 이미 반 전 총장이 모두 부인하고 나섰으므로 더 이상 추가 의혹이 나와선 안된다. 앞서 반 전 총장은 12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50여년간 대한민국에서, 유엔에서 국가와 민족, 세계 인류를 위해 공직자로서 일하는 가운데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명백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또 그는 기자들과 문답에서도 “박연차 씨가 저한테 금품을 전달했다는 (것은) 도저히 제가 이해할 수 없고, 왜 제 이름이 거기에 등장했는지 알 수 없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분명하게 제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제 말씀이 진실에서 조금도 틀림없다. 얼마든지 거기에 대해 자신있게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 유력 대선 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귀국 후 첫 주말인 14일 고향인 충북 음성을 방문해 사실상 대선 출정식을 열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전 생가 주변에서 음성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10년동안 배우고 실천했던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또 “부강하고, 번영하고, 모두의 인격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내가 앞장서겠다”고 말해 대권도전 의지를 내비쳤다./연합뉴스


◇‘집토끼’ 확보? 대한민국 정체성으로 풀어야

반 전 총장이 귀국 직후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귀국 보고를 하는 것을 차후로 미룬 것을 놓고 박근혜 정권과 거리두기에 나선 것으로 복잡한 속내가 묻어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예방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박 대통령께는 전화로 귀국인사를 하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 탄핵 이전 반 전 총장이 여권의 대선후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지금도 지지층이 보수층과 60세 이상에 집중돼 있는 점을 볼 때 ‘보수 후보’라는 이미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정권 및 보수세력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대선에서 이기려면 중도층과 40·50대, 수도권에서의 우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보수후보라는 낙인이 찍히면 확장성이 제약될 수 있지만 ‘집토끼’는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지지율 반등을 꾀하기 위해서는 섣불리 ‘집토끼’부터 챙길 수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앞으로 정책 제시와 함께 자신의 명확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이야 보수, 진보, 중도로 나뉠 수 있지만 후보의 정체성이 ‘중도’인 것은 표 결집에 큰 도움이 못되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이 앞으로 새누리당이나 새누리당에서 탈당해 창당한 바른정당에 합류할 수도 있고, 제3지대에서 개헌 등을 고리로 해서 비박 비문 세력을 규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 정치권의 폐단인 주류에 맞서는 반대 구도로 세력을 규합하는 편협함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따라서 반 전 총장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선택해야 한다. 정치도 경제도 외교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우선하면 해답이 뚜럿하다. 바로 시장경제주의, 반 포퓰리즘, 선별적 복지 등이 해답이다.

그래서 소박하지만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기치를 내걸어 명분있는 ‘빅 텐트’를 만드는 것이 정치교체의 이미지에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

◇선명한 국정 로드맵 제시가 관건

역대 대통령들의 국정 능력에 실망한 민심은 이번 대통령선거에는 특히 후보들에 대한 검증은 물론 역량을 꼼꼼히 들여다볼 태세이다. 

일각에서는 반 전 총장이 평생 외교관이었고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으로 해외에 머물렀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산적한 국정과제를 고민할 기회가 없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하지만 반 전 총장 측 관계자는 지난 12일 “대한민국이 직면한 저출산·고령화·양극화 등의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글로벌한 문제”라며 “(반 전 총장은) 한국 현실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지만 한국이 직면한 문제들을 세계 여러 국가들이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또 대선의 화두로 떠오른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해 “원칙적으로 불가피하다”며 “재벌이 모든 걸 통제하니까 중소기업이 살아날 길이 없다”고 공감한 바 있다. 

반 전 총장은 최근까지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SDG) 대표인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와 경제 정책에 대한 많은 논의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과 신성장산업을 통한 친환경정책을 강조하는 삭스 교수의 철학이 반 전 총장의 경제정책의 골격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 전 총장이 귀국하는 도중에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을 읽은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향후 신성장산업·일자리 공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함께 반 전 총장은 보수층으로부터 통일과 외교안보 이슈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크다. 그는 현안인 한일 위안부 협상과 관련해선 “10억엔이 소녀상 철거와 관련된 것이라면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 차라리 일본에 돌려줘야 한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또 사드배치 결정에 대해선 한미간 정부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반 전 총장의 캠프에 외교관과 이명박정부 인사들이 주축이 돼있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은 바 있다. 이제 반 전 총장은 철학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인사라면 누구라도 만나 아이디어를 공유해 시장경제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실천 가능하고 지속적인 정책 공약에 우선 집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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