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앞다퉈 목소리 높여…대기업 죽이기 괴물제도로 변질
   
▲ 이동응 경총 전무
정치권이 여‧야할 것 없이 앞 다투어 경제민주화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보스 포럼에서는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는 판국에 우리나라에서는 뒤처지면 표를 손해본다는 강박관념의 유행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와 '민주화'라는 이질적인 단어가 결합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제9차 헌법개정 당시 김종인 의원이 독일의 '경제의 민주화' 논의를 소개하면서 인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독일에서는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이 1970년대에는 뜨거운 정치화두였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독일의 경제민주화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 규제, 재벌구조와 시장 개혁 등 경제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주장되며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20대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상법 개정안들도 경제민주화를 간판으로 내걸었다. 아마 지금의 정치‧사회 분위기라면 '재벌개혁', '정경유착 근절'을 기치로 내세운 어떤 법안이라도 당위성을 부여받을 듯하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라는 단어의 인위적이고 모호한 의미만큼이나 최근 거론되는 상법 개정안 내용은 문제가 많다.

우선 상법 개정안 내용은 경제민주화=대기업 규제라는 등식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 같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고 기업 경영 권한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자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다. 면면을 살펴보면 마치 경제민주화는 정치적 의미의 민주주의, 즉 민심과 여론을 반영하자는 것처럼 보인다.

   
▲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제9차 헌법개정 당시 김종인 의원이 독일의 '경제의 민주화' 논의를 소개하면서 인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독일에서는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이 1970년대에는 뜨거운 정치화두였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독일의 경제민주화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 규제, 재벌구조와 시장 개혁 등 경제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주장되며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기 위한 상법 개정안을 보자. 개정안은 감사위원인 이사를 다른 이사들과 분리선임해 이사회 구성에서부터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 이는 1주 1의결권 원칙과 주주가 지분을 갖고 있는 만큼 경영자를 임면하고 통제한다는 회사법의 기본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한 사외이사를 뽑을 때도 우리사주조합 및 소액주주들이 추천한 후보자 각 1인은 반드시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이 역시 회사법의 기본 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주주 재산권을 침해해 위헌의 소지도 있다. 전자투표제 의무화는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이나 이 역시 충분한 검토 없이 도입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소수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고 대주주의 권한을 제한하자는 취지이지만 기업은 민주적 조직이 아니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과 도전을 해야 한다. 기업 경영은 신속한 전략 수립과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고 1인 1표가 아닌 1주 1표를 기본으로 자본다수결 원칙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그 구성원인 주주들도 기업의 발전과 이익창출에 따른 시세차익 등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주식을 보유한다. 1인 1표를 행사해 기업과 경영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게 궁극적인 주식보유의 목적은 아니다.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자는데 반대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바람을 타고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법안들이 통과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일부 지자체와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근로자이사제만 봐도 그렇다.

근로자이사제는 은행자본주의와 협력적 노사관계라는 경제‧사회적 토양에서 자라난 제도다. 자본시장 자본주의와 대립적 노사관계 환경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는 제도다. 현재 우리 노조의 행태에서 볼 때 경영의 투명성 확보라는 목적 달성보다는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경영효율성이 저하될 것으로 우려된다.

개정안들 중에는 자사주의 처분을 제한해 회사의 자산에 대한 소유권 행사를 부당하게 제약하는 내용도 있다. 자사주가 우리 기업들이 적대적 M&A나 경영간섭을 방어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처분 제한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대주주의 부당한 지배력 강화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에게 유일한 방패인 자사주 취득과 처분의 자유마저 없이 글로벌 경쟁에 나서라는 것은 가혹하다. 다른 나라에는 이에 상응하는 다른 방어기제가 마련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해외 투기 자본들은 시세차익을 노리고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 간섭에 나설 수 있다. 유일한 무기인 자사주의 취득과 처분을 제한한다면 최소한 포이즌필(Poison pill)과 같은 다른 무기를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기업들은 국제적 기업 사냥터에서 외국자본들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원리에 따라 움직여야 할 기업 경영을 정치적 프리즘으로 굴절시켜서는 안 된다. 나름대로 경제민주화 법안의 목적과 배경이 있겠지만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지, 우리 기업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흔히 말한다. 이런 법은 이 나라에 있고, 저런 법은 저 나라에 있는데 왜 우리만 안 된다고 무조건 반대만 하는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나라에는 그 법이 있는 대신에 다른 보정장치가 있다는 사실은 감춘다. 각 나라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만 발췌해서 하나의 이상한 괴물을 만들고 있다. 호랑이의 앞발, 악어의 꼬리, 독수리의 부리를 가진 동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포용적 성장이 아니라 포용적 규제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서 위기를 탈출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경제민주화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동응 경총 전무
[이동응]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