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국회 측이 탄핵사유서를 헌법재판소에 다시 제출하겠다고 20일 밝혔다. 탄핵의 근거로 적시한 13개 헌법·법률 위반 내용을 고쳐서 헌법 위반으로만 재작성한다는 것이다.

탄핵소추위원장인 권성동 법사위원은 “대통령이 어떤 헌법상 원칙을 위반했는지를 중심으로 탄핵소추의결서를 다시 작성해 헌재에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행정소송인 탄핵심판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직무 집행을 금지시킬 만한 이유로 헌법상 의무를 어겼는지를 가려야 하는데 형사재판으로 가려야 할 것까지 열거한 탄핵사유서를 고치겠다는 것이다.

즉, 국회 소추위가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주권주의, 언론자유, 생명권 보호의무 등 헌법상 의무를 어겼는지를 다시 쓰겠다는 것으로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권 위원장은 “탄핵사유서에 명시된 뇌물수수 강요, 직권남용 등은 별도의 형사재판에서 가리겠다”고 했지만 당초 미르·K스포츠 재단의 기업에 대한 출연금 모금이 뇌물수수라고 주장하던 것에서 발을 빼는 형태를 보인 셈이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국회 측이 탄핵사유서를 헌법재판소에 다시 제출하겠다고 20일 밝혔다. 탄핵의 근거로 적시한 13개 헌법·법률 위반 내용을 고쳐서 헌법 위반으로만 재작성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 12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심판 촉구 촛불집회./연합뉴스


역사적인 탄핵 절차를 희화화시키는데 국회마저 힘을 보태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박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는 당연히 범죄가 확정된 다음에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탄핵소추위가 새로 작성할 의결서에는 대통령의 생명권 보호의무밖에 남지 않을 예정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조만간 언론을 통해 공개할 연설문을 지인에게 보여준 것이나 세월호 사건에서 구조대책에 미흡했다는 주장으로 탄핵을 주장하겠다는 것이다.

헌재는 작년 12월22일 첫번째 변론기일에 “소추 의결서에 기재되지 않은 새로운 사실로 임의로 추가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권 위원장은 새로운 사실을 추가할 수는 없으나 줄이는 것은 괜찮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공소장 변경 불허’라면 추가는 물론 변경, 삭제 모두 불가하다는 의미라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에도 국회가 탄핵사유를 추가 제출하자 헌재는 ‘국민 뜻이 왜곡되기 때문에 판단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가족이 없는 박 대통령이 오랜 지인인 최순실이라는 인물을 비선실세를 둔 것은 국정 판단에서 단순한 자문을 받기 위한 것일 수 있다. 최순실이 권력을 등에 업고 비리를 저질렀다고 하더라고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국정논단’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약할 수밖에 없다.

또 세월호 침몰 사건은 정말 불행하고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해경의 구조작업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은 시스템의 문제이다. 오랫동안 역대 정권을 통해 해결되지 않은 재난구조에서의 시스템 미비 문제에 대한  책임을 현 정권 대통령에게만 물어야 하는지도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다.
 
지난 19일 헌재의 탄핵심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대통령이 그 즈음에 피곤해 하셨기 때문에 컨디션을 회복하시는 게 좋겠다 싶어서 그날 일정을 안 잡겠다고 보고 드리고 일정을 뺐는데 공교롭게 그날 사고가 났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전 비서관은 또 “박 대통령이 워커홀릭 수준으로 일했는데 관저에서 쉬기나 한 것처럼 잘못 알려지고 매도되고 있다”며 “언론에 나오는 것을 보면 관저에서 쉬기나 하고 미용시술 받고 맨날 해외순방 다니는 것만 좋아하고 너무도 매도되고 희화화돼서 그 부분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미국에 새 행정부가 들어서고, 사드 문제로 본격적인 대 중국 외교를 펴야 할 중요한 시점에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국회 소추위가 이제 와서 탄핵사유서를 수정하겠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이 사건을 희화화시키는 데 최고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헌재가 이런 국회의 부적절한 시도를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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