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되면서 재계 등에서는 특검 수사 방향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정농단을 초래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의혹을 규명하는 수사가 대기업에 대한 집중적인 사정의 양상을 보이다보니 특검이 재벌 사정에 나선 듯 하다는 재계 측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인 19일 오전 6시15분께 의왕시 서울구치소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재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특검팀은 지난달 21일 출범 첫날부터 삼성을 겨냥한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삼성의 제3자 뇌물공여와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사이의 대가 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삼성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부회장), 장충기 차장(사장), 승마협회장을 맡은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등이 줄줄이 특검팀 사무실에 불려갔다. 지난 12일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소환돼 스무 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조사를 받았다.

특검팀이 이 부회장을 대상으로 청구한 구속영장은 이날 새벽 기각됐지만, 삼성은 그동안의 수사로 큰 동요를 겪었다. 연간 매출 300조 원이 넘는 삼성그룹의 총수 이 부회장이 특검팀 사무실과 법원, 구치소를 오가는 모습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전해졌다.

이런 양상에 대해 재계에서는 특검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모든 기업을 뇌물죄로 몰아가려고 했던 것이라며 매우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특검 수사의 목적이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이 아니라 기업 총수들을 잡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국정농단이 수사의 중심인데 오히려 재계를 덮치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특검팀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과 상관 없이 SK그룹과 롯데그룹, CJ그룹  등 다른 대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할 뜻을 밝히자 재계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이는 모습이다.

이에 재계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을 걱정하며 이제라도 수사의 본래 목적을 되돌아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특검의 다음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SK그룹, 롯데그룹 등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다른 기업도 특검 조사의 불똥이 해당 그룹 총수에게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이에 각 그룹의 수뇌부와 법무팀은 특검의 칼날이 언제쯤, 어느 정도 강도로 다음 기업을 향할지에 조심스럽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는 삼성에 이어 SK그룹, 롯데그룹 등에 대한 수사까지 본격화하면 관련 기업의 경영활동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한 SK그룹은 대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이 커짐에도 최근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등 주요 계열사가 잇따라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히며 정면 돌파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다만 특검 수사가 그룹 수뇌부에 이어 최태원 회장에게까지 미치면 이 같은 경영 계획을 정상적으로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어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5년간 40조원 투자와 7만명 신규 채용' 등을 추진하는 롯데그룹에도 여러 현안이 쌓여있는 상태다.

특검팀은 수사 확대를 염두에 두고 이미 최태원 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 등 재벌 총수 여러 명을 출국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와 롯데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당시 각각 111억원, 45억원을 출연했다. 당시 SK는 최태원 회장 사면, 롯데는 면세점 인허가라는 현안이 맞물려 있었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이 SK와 롯데에 현안 해결을 대가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출연금을 요구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CJ, 부영 등 다른 대기업들도 특검 수사가 어느 정도로 확대될지 면밀히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신세계 '쭉' 한진 '뚝'…재계 순위 지각변동

신세계가 한진그룹을 밀어내고 10대 그룹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2016년 3분기 공정자산을 기준으로 출자총액제한집단에 속한 30대 그룹의 재계 순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0대 그룹 1183개 계열사의 공정 자산총액은 1560조3507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계열사는 13개사(1.11%), 자산은 17조8842억원(1.2%) 올랐다. 공정자산은 비금융사는 자산을, 금융사는 자본과 자본금 중에서 큰 금액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그룹별로 순위가 오른 곳은 10대 그룹에 진입한 신세계를 비롯해 KT(▲1), 대림(▲1), 미래에셋(▲6), 에쓰오일(▲3), 영풍(▲2), KCC(▲2), KT&G(▲1) 코오롱(신규) 등 9곳이었다.

이에 반해 두산(▼1), 한진(▼3), 대우조선해양(▼2), 금호아시아나(▼1), 현대백화점(▼1), OCI(▼2) 등 6개 그룹은 순위가 내려갔다.

신세계는 35개 계열사가 총 32조9773억원의 공정자산을 보유했다. 계열사 수는 1개 느는 데 그쳤지만 자산이 3조8120억원(13.1%) 오르면서 순위가 3계단 상승해 10대 그룹에 포함됐다.

하지만 한진은 한진해운과 종속회사들이 그룹에서 분리되면서 38개이던 계열사가 30개로 줄었고 공정자산도 29조3036억원으로 7조7218억원(20.9%) 축소되면서 10대 그룹에서 제외됐다.

재계 1위는 삼성으로 59개 계열사가 350조7545억원의 공정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2위는 51개 계열사를 거느린 현대차(209조6183억원), 3위는 SK(89개 계열사, 공정자산 163조863억원)였다.

이어 LG(72개, 109조3702억원), 롯데(94개, 108조8944억원), 포스코(38개, 76조9406억원), GS(68개, 61조467억원), 한화(60개, 59조9909억원), 현대중공업(26개, 52조2259억원) 순이다.

30대 그룹에 새로 이름을 올린 곳은 코오롱이 유일했다. 코오롱은 사실상 그룹이 해체된 현대그룹을 밀어내고 30대 그룹에 재진입했다. 2015년 30대 그룹 밖으로 밀려난 지 2년 만이다. 

코오롱은 계열사 수가 39개로 1년 전에 비해 4개 줄었지만 공정자산이 4344억원(4.8%) 증가하면서 순위가 올랐다.

재계 순위가 가장 많이 오른 곳은 미래에셋이었다. 지난해 24위였던 미래에셋은 이번에 6계단 오른 18위를 기록했다.

공정자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그룹은 1년 동안 5조6497억원(5.5%)이 증가한 롯데였다. 이어 한화가 5조2936억원으로 2위, 미래에셋이 5조1023억 원으로 3위다.

반면 감소율 1위는 한진(7조7218억원 감소)이었고, 2위는 대우조선해양(3조5742억원 감소), 3위는 포스코(3조2920억원 감소) 등의 순이었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