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규제 등 원칙금지 예외허용...최악의 규제공화국 전락

   
▲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원장,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박근혜대통령, '줄푸세공약'이 원래 진심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규제를 ‘원수’ ‘암 덩어리’ 로 표현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필자는 박대통령이 2007년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질서는 세우고)’ 공약이 박대통령의 원래 정치철학이고 진심이었다고 믿는다. 이제 집권 2년차에 정부규제에 관한 본심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기대도 크지만,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1980년대 이후 역대 정부가 대를 이어 지금도 추진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개혁정책의 하나가 바로 규제개혁이다. 거의 20년 가까이 규제개혁을 했고 선진국형 개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지금 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었어야 한다.

지난 20년간 역대정부 규제개혁, 성과는 미약하기만 

그러나 현실은 아직도 대한민국의 기업 환경은 우리 경쟁국보다 못하고, 식품안전, 생활안전, 환경보호 같은 민생보호 수준은 아직 선진국에 못 미치고 있다. 2014년 현재 약 15,000여개로 추산되는 우리나라의 정부규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특별히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누비면서 기업활동을 하는 다국적 기업들조차 한국에서는 규제 때문에 기업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나라 규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규제가 저질이기 때문이다.

규제로부터 국민이 받는 부담은 밟아야 하는 절차나 제출해야 하는 서류의 개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규제라도 그 규제를 지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적 물적 고통을 포함한 총체적 준수부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절차가 복잡하고 기준이 모호해서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민원의 결과는 집행자의 임의적 판단에 달려 있다면, 그것이 비록 한 개의 규제조항일지라고 규제를 받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다.

절차 복잡, 기준 모호, 민원결과는 공무원 자의적 판단에 달려

우리나라 규제가 품질이 낮은 불량규제로 여겨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많은 규제제도와 절차가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법자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민간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아예 국민들을 잠재적 범법자로 가정하고 도입된 규제들이 대부분이다. 민간은 자신들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유롭게 풀어 놓으면 엉망이 되기 때문에 정부가 미리 막아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규제들은 전형적으로 인허가 규제와 같은 사전통제를 통해 원칙금지, 허용 예외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규정에 되는 일만 나열하고 규정에 없는 일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형식이다.

포지티브 규제가 시장과 기술변화  발목잡아

이런 규제 풍토에서는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민간 경제활동의 뒷다리를 잡게 된다. 결과적으로 민간은 피동적으로 규정이나 지키면 된다는 풍조가 생기고 창의성과 다양성이 억제된 하향평준화가 초래된다. 소수의 잠재적 범법자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국민이 단체기합을 받는 셈이다.

   
▲ 박근혜대통령이 최근 규제를 쳐부셔야 할 원수, 죽여야 할 암덩어리라며 연일 규제혁파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 규제는 국민을 잠재범법자로 간주하면서 정부가 사전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로인해 원칙금지, 예외허용이라는 최악의 규제공화국으로 전락했다. 이젠 우리나라도 규제품질을 선진국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 규제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제3의 규제감시기구와 전담자를 배치해서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또 민간 입장에서 우리나라 정부규제가 고통스러운 큰 원인은 규제의 절차와 기준이 모호하고 포괄적이어서 결과가 예측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집행하는 공무원이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관청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민간인은 관청에만 가면 이유 없이 위축되고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창의성 다양성 가로막는 공무원들의 자의적 규제권한 행사

이것은 부정부패와 권력남용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기업활동의 불확실성을 높여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된다. 한국의 기업 환경에 대한 국제비교에서 항상 한국은 규제리스크가 크다고 지적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설적으로 되는 일은 확실히 되고, 안되는 일은 절대로 안 되도록 하는 것이 기업 활동을 도와줄 수 있다.

오랜 동안 규제개혁을 외쳐왔지만, 국민들이 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비록 숫자는 줄었지만 아직도 규제 내용과 집행 측면에서 이런 불량 저질 규제들이 남아있고 또 계속 생기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과정도 규제품질 사전점검 필수

국회의 입법과정에도 행정부과 같은 규제품질의 사전 점검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인들이 민생을 챙긴다고 할 때마다 늘어나는 것은 새로운 규제고, 기존 사업자들의 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보호 장벽들이다. 결국 시장의 자유로운 거래를 제한하고 국민들의 경제적 기회를 줄일 뿐이다.

행정부 쪽도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분배와 형평, 참여의 이름으로 각종 할당제, 의무제, 허가제와 같은 고강도의 규제가 여러 분야에서 계속 도입되고 강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규제들이 대부분 비전문적 관찰과 정치적 판단에 의해 도입되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효과, 준수부담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도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규제는 '감추어진 세금', 집행부서에 백지위임도 문제 

정부규제를 ‘감추어진 세금’이라고도 한다. 더구나 주무부서가 해당 분야를 가장 잘 알 것이라는 전제 아래 규제 집행부서에게 사실상 규제의 입안부터 집행까지 백지 위임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정부규제가 집행자 편의 위주로 절차와 기준이 정해지고, 국민이 져야 하는 부담이나 부작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마구잡이로 규제가 도입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정부규제가 집행자 편의 위주로 만들어지고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적 문제를 가지게 된 배경이다. 학계에서는 규제의 도입과 변화 과정을 공익 증진을 위한 과정이라기보다는 이익집단의 이해조정의 산물로 보고 있다.

상향식 읍소형 규제개혁은 실패, 하향식 재추진돼야

중요하고 민감한 규제가 개혁의 대상이 될 때마다 온갖 이익집단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규제를 집행하는 관료조직도 하나의 이익집단일 뿐이다. 규제완화와 규제개혁에 관료집단이 저항하거나 소극적인 것은 이런 점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규제 품질에 대한 평가를 보다 객관화하고 민간의 눈높이에서 규제개혁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하는 규제 개혁 시스템의 정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80년대에 실패한 것으로 증명된 민간이 건의하고 관료가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소위 ‘상향식’ ‘읍소형’ 규제개혁 모델이 현 정부 하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다. 이것이 정부의 규제개혁이 겉도는 이유다. <행정규제 기본법>의 취지를 살려 규제개혁을 다시 민간의 관점에서 ‘하향식’으로 재추진되어야 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정부규제 품질개선 시급

규제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규제 아닌 다른 대안은 없는지, 규제를 하더라도 더 효과적이고 지키기 편하고 덜 부담스러운 규제수단은 없는지 고민하자는 것이다. 기업부담을 줄이기 위해 규제를 없애고 완화하는 것도 좋지만, 진정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면 우리나라 정부규제의 품질부터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정부규제의 문제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규제가 정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행정서비스의 일종이라면 서비스 품질 관리 책임은 당연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져야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규제개혁이야말로 정직하고 성실한 보통사람들이 손해 보지 않고, 우리 사회에 반칙과 특권을 해소하고, 부정부패를 줄이고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개혁과제인 것이다./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원장,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이 글은 조선일보에 게재된 것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