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장애인 청년, 전문가 배려차원...최종 결정은 당원과 국민에게 위임

   
▲ 박종운 시민정책연구회 연구위원
기초 선거 공천 유무의 유불리

새누리당은 과거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정치 ‘법인’인 정당이 한정치산(限定治産)을 선고받아야 할 불법한 제도도 아닌데 기초선거에 한해 한정적으로 ‘후보추천’이라는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은 ‘위헌’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에 도달하자, ‘위헌성’을 피하기 위해 기초선거 공천을 지속하기로 했다.

이와는 달리 ‘새정치연합 + 민주당’은 기초선거 공천 폐지 주장은 물론 공천제가 지속되는 경우에도 공천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매개로 하여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주장의 위헌성을 차치하면,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에서의 언론 자유 차원에서 인정할 수 있다.

'새정치+민주' 기초공천폐지는 자기파괴적인 행태

그러나 공천제가 지속되는 환경에서 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자기파괴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자기파괴적 명분으로 연합을 해놓고, 자기파괴라는 현실에 부닥쳐서 이를 뒤집자니, 이는 통합의 근거를 없애는 것으로서 다시 통합 파기를 선언할 수밖에 없는(?) 예정된 악순환을 향해 진퇴양난의 길을 걸어갈 것으로 보인다.

기초선거 불공천이 왜 자기파괴적인가? 비유를 들어보면, 삼성의 갤럭시폰과 LG의 옵티머스 폰이 시장 선택률(market share)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 치열한 ‘충성 봉사’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갑자기 한 회사가 ‘브랜드 경쟁에 반대한다. 우리는 브랜드를 감추고 경쟁할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브랜드에 쌓인 신뢰가 구체적인 상품 선택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소비자의 상품 선택의 지혜를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진열대에서 보면 제일 앞에 잘 보이는 곳에 1번 브랜드의 상품이 있는데, 이와 경쟁하는 상품은 소수당의 브랜드보다도 더 뒷전에, 그것도 이 가계 저 가계마다 놓인 위치가 제각각이다.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근 30년 전에 모 기업집단의 총수는 일본 전자제품 가계의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제품들을 모아다가 태워버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리고 이제는 진열대의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이 비유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지만, 기초선거 불공천은 브랜드의 이익, 전시장에서의 위치의 이익 모두를 날려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파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초선거 불공천이 자기파괴적인 두 번째 이유는 선거운동의 혼탁을 막기 위해 타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을 금지한 것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을 보면, “제88조(타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금지) 후보자, 선거사무장, 선거연락소장, 선거사무원, 회계책임자, 연설원, 대담·토론자는 다른 정당이나 선거구가 같거나 일부 겹치는 다른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이 나온다. 이는 같은 당의 시장 군수 구청장 후보와 시군구의원 후보 사이의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도지사나 도의원, 광역시장과 광역시의원 후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선거구가 일부 겹치는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후보 간 정책협력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공약을 오직 ‘개인기’로만 달성하겠다며 선거운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자기파괴적인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사실 기존 자치단체장과 의원의 알량한 기득권 유지 욕구로 인한 공천폐지 요구 때문이었고, 또 두 야당의 경합으로 인한 공멸을 두려워한 두 야당 지도부가 예상되는 결과에 겁을 냈기 때문이었다. 브랜드를 단 후보를 내놓는 과정에서 공장의 반장과 종업원 사이에서 반장이 종업원을 닦달한다는 이야기는 그들 내부의 문제다. 국민을 위한 개혁과는 전혀 무관한 문제다.

상향식 공천 혁명, 우선 시작하고 나중에라도 합의하에 제도화해야

이에 반해 새누리당은 기초선거 공천을 유지하는 대신, 기초선거 공천 폐지 공약을 내기에 이르렀던 문제의식을 실질적으로 반영하기 위하여, 당협 위원장의 독단을 제약하는 전면적인 상향식 공천을 도입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과거의 공천심사위원회가 아닌 ‘공천 관리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 여야가 기초선거 공천제 폐지를 놓고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안철수의원과 김한길대표의 '새정치+민주당'은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는 경쟁사와 치열하게 쟁탈전을 매장에서 자기 브랜드를 없애는 것처럼 자기파괴적인 행태다.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은 당원과 국민에게 공천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공천혁명이다. 김한길 민주당대표(우)와 안철수 새정추의장(가운데)이 합당을 선언한 후 회견장을 걸어나오고 있다.

우선 상향식 공천의 도입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는 정당사에서 정말 획기적인 것이다. 지방자치 선거의 부활이 이루어진지 24년차에 이르는 이 시점에서 드디어 공천단계에서부터 상향식(bottom up) 방식이 실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향식 공천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공천권자가 바로 당원이요, 국민이기 때문에 어떤 후보든 당원과 국민에게 주파수를 맞추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공천혁명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이 바라는 개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공천혁명이 제자리를 잡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은 여야가 상향식 공천을 합의하고, ‘전산 통합 명부’를 기초로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의 경우’ 반드시 상향식 공천을 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전산 통합 명부’를 통해 중복투표에 의한 역선택까지 배제된 상태에서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투표하도록 하면 정당의 후보 선정에 관심을 가지는 국민들은 후보 선정단계에서부터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존 지방자치단체장 및 의원들의 기득권, 그리고 주요 정당 지도부의 소심함 때문에 엉뚱한 쪽으로 논란이 흘러가고, 그들의 반대로 이러한 공천혁명의 법적 제도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렇지만 일부 정당에 국한된 것이기는 해도, 상향식 공천을 감행하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것이다. 비용문제와 역선택 문제, 그리고 경선 후원금 제도만 뒷받침 된다면,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국민공천으로 과감히 더 개방도를 높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선 공천 지역제’보다는 제한적 의미의 ‘우선 공천 권고제’로 선회하자

공천제도의 장점은 정당의 지향과 의지에 맞는 브랜드형 인물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법에 공개되도록 되어 있는 부분인 병역, 납세, 학력, 범죄 등에 대해서 사전에 1차로 거를 수 있게 됨으로써, 정치소비자인 유권자의 부주의로 인한 실수의 가능성도 줄인다는 것이다. 장애인, 여성, 청년, 정책전문가 등 기존 선거환경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을 정당의 브랜드로 뒷받침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러나 상향식 공천을 실시하면서 전략공천도 폐지한 마당에 특히 장애인, 여성, 청년, 정책전문가 등을 공천할 수 있게 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우선공천 지역’ 제도이다. 비록 그것이 전략공천의 일종이긴 하지만, 과거의 전략공천과 다른 것은 중앙당에서 일련의 특정 선거구들에 후보를 선정해 내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특정 선거구에 여성 청년 후보를 선정하도록 지정하여, 그들끼리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에 임박해서 갑자기 특정 선거구가 여성 청년 우선공천 지역으로 지정하면 이는 예측가능성, 신의성실 원칙 등에 위배되며, 더구나 그 지역의 선거를 준비해왔던 우수한 후보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주게 된다. 따라서 우선공천 지역 선정 방식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여성 장애인 청년, 전문가 그룹 배려 가능 

개선 가능한 방식은 제한적 의미의 ‘우선 공천 권고제’로의 선회이다. 이것은 상향식 공천의 틀 안에서, 중앙당 내지 도당, 당원협의회가 ‘우선 공천 권고’를 할 수 있으되, 최종 결정은 ‘책임당원 2: 일반당원 3: 일반 국민 3: 여론조사 2’에 따르든, 혹은 국민경선제의 결과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럴 경우 중앙당 내지 도당, 당원협의회의 권고가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당 상층부의 권고를 받지 못한 지역 내 토착 후보가 최종적으로 ‘공천’ 결정될 수도 있고, 혹은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이 미는 후보가 ‘공천’되는 것으로 결정날 수도 있다.

중앙당 등의 권고가 힘이 강력할 것이라고 따라서 이 경우 상향식 공천이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향식 공천을 ‘상왕식 공천’이라고 비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산발적인 개별 후보의 경우에만 그러하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미국에서는 세금을 이미 충분히 냈다는 의미의 납세자 권리운동인 티파티(TEA Party, Taxed Enough Already) 운동이 (비록 최근에는 오바마 행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에 맞서다가 정부 폐쇄(shut down)를 유발한 죄(?)로 집중적으로 비난을 받아서 이젠 인기가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적자재정을 남발하고 거기다 돈이 더드는 각종 선심성 공약을 실행하는데 제동을 걸고 있다. 이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성향이 비슷했던 공화당의 후보경선에 적극 참여해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후보로 선출되며 당당히 진출했던 것은 아래로부터의 힘으로 기존 정당 상층부의 ‘작용’을 뚫었기 때문이다. 티파티 운동의 영향력 확대는 상향식 민주주의에서 중앙당 등의 권고가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최근 대한민국에서도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보육, 이제는 무상버스 공약으로 무상시리즈가 계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각종 시설물 유지 보수 등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물론 현재의 세입 예산 범위 내에서 진행되기에 본격적인 저항운동으로 형성되지는 않고 있으나, 소득공제 축소 등의 방식으로 세금을 올리려고 한 것에 대해 거센 저항이 일어났던 적도 있다. 앞으로 무상시리즈가 지속되면 결국 세금을 올리자고 하는 운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 경우에는 한국에서도 세금을 더 올리자고 하는 사람에 대한 저항운동이 본격화될 수도 있다. 그러한 성격의 운동이 결국 정치권에서 자리를 잡는 데는 상향식 공천제가 훌륭한 토양이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여성운동이 이런 제약을 뚫었다. 비례의 경우 여성이 홀수번호를 차지하게 되어있고, 지역구에서도 일정 비율을 공천해야만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국고보조금을 삭감하는 ‘징벌’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내파벌과 계파간 화합위해서도 필요

또한 상향식 공천제와 ‘우선공천 권고제’가 당내 의견그룹 내지 파벌 등과 관련해서도 유효하다고 본다. 물론 필자는 당원들의 투표에 의해서 뽑힌 당 지도부가 당의 정체성을 맞추기 위해 우수 후보자를 영입하거나, 당의 정체성 지향성 정책 등에 맞는 후보자를 미는 노력이 기본적으로 온당하다고 본다. 선거에서 후보를 내는 것에 전략적 고려가 없다면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정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내에는 여러 의견 그룹들이 있고, 파벌 등이 있기 때문에, 마침 해당 선거를 지휘하는 지도부가 되는 행운을 가졌다는 이유로 상대 의견그룹 내지 파벌 등의 후보자들을 ‘학살’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이러한 ‘민주적’ 지도부의 ‘독재화’ 전횡을 가로막기 위해서도 실질적 상향식 공천이 절대 필요하다. 그래서 지도부가 당의 정체성 지향성 정책 등에 맞는 후보자를 미는 것에 ‘권고’ 정도의 의미를 두고 그 효력을 제한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2:3:3:2든 국민경선제든 상향식 공천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중앙당 등이 ‘우선공천 지역제’를 강행하기보다는 제한적인 의미의 ‘우선공천 권고제’로 선회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고 본다. /박종운 시민정책연구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