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연구자금 이공계 95% 싹쓸이, 기술결정론 맹신 교육 당국과 학자들 탐욕 이기주의가 나라 좀먹어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현대자동차 공채 인문계 제외. 4대 그룹 채용에서 인문계와 이공계는 20:80. 삼성그룹 작년 하반기 대촐 신입사원 약 5,500명 가운데 85%가 이공계. 이 때 인문계 출신 입사 경쟁률은 이공계 8.8:1의 9배 수준인 75:1. 이렇게 되자 슬픈 인문계라고 언론들은 후벼 파고 있다. 대조적으로 이공계는 신입사원도 최고경영자(CEO)도 전성시대라고 띄워준다. 새 봄 캠퍼스를 찾는 취업설명회장에서도 인문계는 미어터지고 이공계는 썰렁하다고 일제히 보도해준다. 
 

먼저 대한민국 미디어 펜대들에게 묻는다. 대학들이 값싼 문과만 선호하고 늘려 놓아서 인력 수급이 안 맞는 미스매치가 생겼다고 누가 그러던가? 문과 쪽 반발로 교육부가 학과 정원을 못 줄여 결국 대학마다 대략 문과 반 이과 반으로 고착화되었다는 건 또 어떤 아무개 분석인가?  언론이라면 현상 너머 본질을 항상 다루고 파헤쳐야 하는데 이번에도 참 안타깝다.

슬픈 인문계가 가리키는 본질은 문과 과잉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디어들은 헛다리 짚었다. 본질은 이공계 기피라고 바람 잡으며 똘똘 뭉쳐 폭리를 취한 이과 이기주의였다. 이과 빅 마우스들이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한정된 국고, 기업투자, 교육 자원을 기술결정론 미신이 머무는 이공계에만 편파적으로 퍼부은 지난 10여년에 걸친 분탕질에 다름 아니다.

가장 크고 유효한 증거는 국가 R&D (연구개발) 정책이다. 올해 국가 R&D예산은 17조원쯤 되고 최근 10년간 해마다 10조~15조원 수준을 유지해왔다. 여기서 비중을 보면 이공계가 95% 이상, 슬픈 인문계는 잘 봐줘도 5% 미만으로 계속 홀대 받아왔다. 하도 슬퍼 인문한국이라는 HK사업을 2007년에 도입했다지만 매년 4000억~ 2000억원 정도로 더 서글프게 주저앉고 있다.

그나마 최근 10여년 정도 인문계 관련 국가 R&D 예산 내막을 보면 더 씁쓸해진다. 대표적인 CT라는 게 있다.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을 말한다. 이게 말하자면 인문계로 위장한 이공계 잔치다. 3D 영화 디자인하고 모바일 게임 같은 새로운 문화콘텐츠 연구하고 개발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연 예산 500억여 원으로 시작해서 2,000억여 원까지 키운 이 인문계 군자금이 실제 쓰인 곳은 대부분 기술 분야다. 이공계 과학 영역도 아닌 단순 기술 개발 쪽으로만 쏠렸다.

3D기술이라면 <아바타>처럼 구상하고 기획하고 개발하는 쪽이 아니라 할리우드 기존 2D 영화를 3D로 변환하는 기술 처리가 대부분이었다. 문화를 키워 창조경제 한다고 국가 R&D 예산을 어렵사리 받아와 문화부를 통해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 흘려 보냈지만 정작 집행자들은 숫자로 성과가 계산되는 응용 기술 분야로 낚여들고 말았다. 공무원 단기업적주의 전형적인 예다.

더 우악스러운 코미디는 창조경제를 신봉하는 박근혜 정부 2년차 국가예산에서 문화기술(CT)이 문화부를 떠나 미래창조과학부로 옮겨갔다는 사실이다. 문화의 기술이 기술의 문화로 둔갑했다고 할까? 이렇듯 기술결정론이 나라를 통치해왔다. 국가 R&D에서 5% 미만, 실제로 8000억 원도 안 되는 자원을 인문계에 투입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대한민국 미디어 펜대들은 여태 이런 본질적 이슈를 제대로 분석해본 적이 없지만 인문계 학자라면 누구나 느끼고 있다. 그건 이렇다. 정부가 15조원을 국가 R&D로 투자한다면 민간도 매칭해서 그만큼 한다. 총 30조원이라는 중요한 종자돈으로 해마다 1년 내내 판매와 수출, 고용과 복지로 이어지는 실물 경제 농사를 짓는다는 얘기다.

   
▲ 인문계 홀대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국가연구개발 예산의 95%가 이공계에 편중되고, 인문계는 고작 5%만 받고 있다. 이공계 빅마우스들이 이공계기피를 무기로 나라예산을 거의 독점하면서 인문계는 고사위기에 몰리고 있다. 문화기술(CT)도 <아바타>같은 3D영화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데  지원되는 게 아니라 할리우드 기존 2D 영화를 3D로 변환하는 기술 처리에 그치고 있다. 이제라도 이공계 편중지원을 점검해서 이공계와 인문계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언론들도 이공계 홀대론에 현혹되지 말고, 대학현장을 보면서 균형된 시각으로 써야한다. 3D영화의 간판인 <아바타>의 한 장면

여기서 인문계 식구들이, 학생들이, 학부모들이, 시민들이, 국민들이 최소 10여 년간 소외받고 홀대를 받아왔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정부도 기업도 장관도 CEO도 매년 숫자놀음으로 성과 보고할 수 있는 기술 분야에만 맞춰 실물경제 농사를 짓다보니 스마트폰을 만들어도 소프트웨어, 솔루션, OS(운용체계) 없는 하드웨어 캔(can)만 생산하는 반쪽자리가 되었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아트워크 산물인 디자인도 선구자 애플에 비하면 노상 뒤처져왔다. 방송영상에서 절대적인 카메라 장비는 일제 아니면 안 되고 후반제작 편집 소프트웨어는 100% 미국제다.

정부는 기술만이 아니라 과학도 같이 가는 S&T(Science and Technology)라고 이공계 집중을 변호하지만 실상은 호흡이 긴 중장기 학문인 과학조차도 기술결정론에는 맥 못 추는 지경이 되었다. 반도체공학과와 휴대폰학과를 합작한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 대학 공조, 즉 산학연관이 아니었던가?
 

우리나라는 생존이 필요해서 경제개발을 했고 어쩔 수 없는 경제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를 겪었다. 그렇게 산업화 시대가 지나갔지만 이내 정보화가 오면서 난데없이 기술결정론이 고개를 쳐들었다. 핸드폰, 가전, 자동차가 나라를 이끄니 기술이 전부인줄 받든다. 순수 과학마저 기술 단기업적에 내몰렸다. 황우석박사도 옆 나라 미녀과학자도 줄기세포 과학을 기술처리 하느라 문제를 일으켰다.

이렇듯 이공계 기술실적만 있고 인문계 연구윤리는 실종된 대가를 곳곳에서 수시로 치르고 있다. 그럼에도 외환위기 이후 이공계만 편애해왔다. 이공계 기피라고 호들갑 떨며 BK 21 같은 국책사업 독점한 대학들도 문제지만 기술결정론에 빠져 세계 경제, 국제 정세를 잘 못 판독한 정부 언론 재계 지도자들이 더 답답하다. 고등학교도 국립으로 과학고만 키우고 외고는 민간으로 방치하고 규제만 했다. 그러니 인문계 영재들은 하버드나 미국 대학으로 국외 유출되고 과학 영재들은 의대나 대기업에만 줄을 섰다. 결국 쭉정이로 만든 국내 상경계, 법정계, 인문학 등 인문계 청춘들은 룸펜 산업예비군으로 방황하게 되었고...

이 모두 영혼 없는 기술결정론, 인문사회 선비정신 기품 없는 이공계 엔지니어에만 배팅한 우리 사회 업보다. 국가 R&D 같은 한정된 자원을 인문, 이공 균형과 견제 없이 이공계 기술 쪽으로만 퍼주고 끌어 댕긴 탐욕적 집단들이 주범들이다.

이제라도 국가 경영에서 체크 앤 밸런스(check and balance)가 무엇인지를 되새겨야 한다. 이공계 전공자, 기술자만 우대해서는 기술입국도 과학입국도 될 리 없다. R&D 지표 세계 2~4위까지 하면서 쓸 만한 국산 소프트웨어 하나 없는 나라 한국을 만든 원인이 인문계 홀대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가?  경제, 경영학마저 금융공학, 정보시스템 쪽으로만 청춘들을 내몰아 꿈도 없는 로봇 샐러리맨 양산하면서 창조경제나 백년대계를 논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도 분명히 답해야 한다. 엔지니어가 필요하면 독일처럼 기술전문학교, 마이스터고로 충당해 스스로 키우면 되지 않나? 대우조선처럼 고졸자 뽑아 사내대학에서 투자해 딱 맞는 인재를 키워도 될 터이고.
 

좀 더 기술결정론이 극단화하다간 대학 교육 전체를 홀라당 태울 수도 있다. 가뜩이나 대학 특성화다 구조개혁이다 해서 취업 정거장이 된 대학인데 인문계 기피와 홀대가 더 심해진다면 정신도 철학도 지혜도 전략도 윤리도 가치도 없는 깡통 기술자만 넘쳐날 게 뻔하다. 언론 미디어 펜대들부터 앉아서 기사, 사설 쓰지 말고 현장에 와 보시라. 기술결정론 맹신하는 교육 당국자와 일부 학자들, 기업 관계자들 탐욕과 이기주의, 단기업적주의가 나라를 좀먹고 있다.  /심상민 성신여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