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부터 공석인 憲裁 소장 임명권 적극 검토하라
대통령 탄핵 졸속 처리 막고 지지층 결속 효과도
   
▲ 조우석 주필
모두가 나 몰라라 하는 상황에서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이 책임있는 제안 하나를 설 연휴기간에 던졌다. 당장 이틀 뒤인 2월1일부터 헌법재판소장 자리가 공석인데 왜 이걸 방치해두고 있느냐는 지적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탄핵 판결을 예단하거나, 조기 대선을 서두를 게 아니라 후임자 임명을 절차에 따라 진행하자는 얘기다. 

당장 여여 모두가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책임 있는 정치권이라면 응당 검토했어야 옳았다. 실은 이미 늦었다. 후임자 임명 없이는 헌법상 9인으로 규정된 헌재가 비정상 상황에 빠져드는 게 불 보듯 빤한데, 각자가 원하는 결론 얻기에만 급급한 건 너무도 무책임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갈등은 점점 극단으로 고조되고 있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헌재 결정이 신속히 이루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신뢰를 충분히 얻어야 할 것이다. 이 역사적 재판이 재판관 결원(缺員)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면 신뢰 확보가 미흡해 보이는 것 또한 자명하다." 

나경원이 설 연휴 때 돌린 보도자료

나 의원이 29일 돌린 보도자료는 설득력이 크다. 현재 상황은 이렇다. 헌재의 소장-재판관의 임기는 6년인데, 박한철 현 소장은 2011년에 임명됐다. 현행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임기만료일까지 후임자 임명을 규정(제6조)하고 있으나, 누구도 이걸 신경을 쓰지 않아왔다. 

급한대로 헌법재판소는 권한대행을 선출할 예정인데, 박한철 소장은 이정미 재판관을 내정한 듯이 이미 말한 바 있다. 문제는 이정미 역시 한 달여 뒤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는 처지란 점이다. 그는 3월13일까지만 근무하는데, 그렇다면 이정미 대행체제를 1개월 뒤 또 다시 바꿔줘야 한다.

이런 비정상적 상황 대문에 정치권과 언론은 헌재 소장 임명 껀은 나 몰라라한 채 3월초 탄핵 결정, 5월 초 조기대선이란 정치일정부터 덜컥 제시한 것이다. 이정미 대행체제가 끝나기 전에 마무리를 짓자는 강박관념이다. 이게 시간에 쫓겨 등장한 매우 섣부른 정치일정이란 걸 세상이 다 안다.

이 지점에서 황교안 권한대행의 역할론이 제기된다. 지금의 불합리한 상황을 선제적으로 치고 나갈 필요성이다. 치고 나가 건, 가만히 있건 논란을 부른다면, 정공법이 우선이다. 나 의원이 "여야는 황교안 권한대행에게 박 소장 후임 지명·임명권을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한 것도 정치적 복선이 없는 원칙의 천명으로 해석된다.

단 그는 신임 소장 지명·임명권만을 언급했지만, 실은 두 가지 옵션이 모두 가능하다. 우선 신임 재판관 임명부터 생각해볼 수 있다. 대통령 지명 몫인 3명의 재판관 중 한 명인 박한철의 경우 재판관의 한 명이자, 헌재 소장의 직책이었다. 때문에 황 권한대행은 신임 재판관 한 명에 대한 임명을 우선 검토해볼 수 있다.

   
▲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중인 엄중한 시기에 헌법재판소 박한철 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졸속 심판이 우려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이를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제안했다. 비정상을 바로잡기 위한 황교안 권한대행의 역할론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새 헌재 소장 후보감 서기석-조용호

신임 재판관은 본래 대통령 지명 몫이라서 국회 동의(과반의 찬성)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단 요식 절차인 청문회만 거치면 되기 때문에 정치적 부담이 덜한데, 황 권한대행으로서는 탄핵 결정 때 확실하게 기각 표를 던질 소신파를 지명하는 게 당연하다. 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이 일어도 문제없다. 태극기 세력이 결집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이게 물리적 시간이 걸리는데다가 헌재 소장 빈자리를 방치해둔다는 단점도 있다면, 보다 적극적인 선택은 신임 헌재 소장 지명·임명권 행사 쪽이다. 즉 지금의 재판관 8명 중에서 한 명을 지명해 신임 헌재소장으로 임명하는 안이다.

재판관 8인이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을 내정했다 해도 황 권한대행이 지명·임명한 신임 헌재소장이 우선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신임 헌재소장 후보감으로는 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이 꼽힌다. 두 재판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3년 전에 각각 지명했던 사람으로, 확실한 보수 성향이다.

단 신임 헌재 소장은 헌법 규정에 따라 국회 동의가 필수다. 나 의원의 제안처럼 여야가 황 권한대행의 인사권 행사를 인정해주면 만사 오케이겠지만, 반드시 그렇게 될 보장은 없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설사 국회 동의 과정에서 과반 표결이 안 된다 해도 큰 문제는 없다.

지금의 날치기 졸속으로만 흘러가는 탄핵 시계를 멈출 수 있는 효과가 우선 있다. 무엇보다 헌재를 정상화하려 했다는 황 권한대행의 노력을 국민들이 확인할 기회다. 때문에 다소의 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 없다 해도 그걸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황 권한대행이 분명히 해야 한다. 

냉정하게 말해 현재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헌재 주변에서는 기각 결정보다는 인용 쪽이 우세인 듯한 분위기인데,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2월 한 달 막판 뒤집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즉 지금 상황은 조작된 촛불 민심만을 일방적으로 옹호해온 언론 탓이 절대적으로 큰데, 태극기 민심의 폭발적 확산도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황교안의 정치적 자산은 박근혜에게서 나온다
 
여기에 새로운 변수가 신임 헌재 소장 지명·임명 문제다. 이 문제는 단순한 헌재 재판권 지명-임명을 넘어 고도의 정치적 함의와 확장성을 동시에 가졌다. 그걸 떠나 황교안으로서는 중요한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정상화라는 명분도 크고, 권한대행으로서 당연한 권리 행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국회는 탄핵되거나 해산당하지 않기 때문에 국회 몫의 헌재 재판관 3명을 언제나 확보한다. 대통령은 직무정지를 당하는 순간 자기 몫인 3명을 행사할 수 없다. 이런 기형적 상황에서 헌법정신인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지키는 게 소중하다. 그걸 제대로 하자는 게 황 권한대행의 인사권 행사라고 보면 된다."

즉 국정의 연속성과 헌법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황교안 앞에 놓인 신임 헌재 소장 지명·임명이란 선택의 하나가 아니라 의무라는 뜻이다. 아직은 미지수인 황교안의 정치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최대의 기회라는 점도 흥미로운 관측 대목이다.

쉬운 얘기다. 황교안의 정치적 자산은 박근혜에서 나온다. 이것을 애써 뿌리치고 혼자서만 쉬운 길을 가려 할 경우 황교안의 대권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박근혜라고 하는 대한민국 산업화 정통성 세력의 정치적 후광을 업고 들어가는 게 황교안이 일어서는 지름길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황교안이 단순한 권한대행만이 아니었고 박근혜 구하기를 위해 이렇게 몸을 던졌다는 걸 국민과 지지세력에게 보여줘야 옳다. 그걸 입증해보일 최대 찬스가 헌재 소장 지명·임명이란 빅카드라는 판단에 변함없다. 황교안, 당신의 정치력을 지금 보여 달라./조우석 주필 
[조우석]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