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친북민족주의 반대한민국 정서 공유, "386이여 박수칠 때 떠나라"

   
▲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한국 현대사에는 몇 개의 ‘세대’가 등장한다. 4.19 세대가 있었고 6.3 세대가 있었으며 짧았지만 전태일 세대도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으로 출현한 게 386 세대다. 그런데 이 구분은 좀 이상하다. 앞의 셋은 전부 사건이나 인물을 중심으로 명칭을 붙였다. 그런데 386 세대에는 그게 없다. 만약 그런 식으로 이름을 붙이려면 386이 아니라 ‘5.18 세대’라고 하는 것이 맞다.

386의 계보는 4.19나 6.3에서 이어지는 게 아니다. 그 계보는 남한 좌익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6.25 전쟁 동안 가장 활발하게 타 올랐으며 이후 지리멸렬했던 남한 좌익 운동이 화끈하게 되살아난 것이 바로 386인 것이다. 6.25 전쟁에 대한 예전 명칭은 ‘동란(動亂)’이었다. 사실 이 명칭이 전쟁의 전반부를 설명하는데 타당하다. 초반 6.25 전쟁의 성격은 북한의 인민군과 남한 좌익이 합세하여 벌인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남한 좌익의 존재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전선 아래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은 모조리 국군의 만행이 된다. 점령지에서 벌인 학살은 인민군과 남한 좌익들이 양분해서 했다. 누가 반동분자인지 찍어주는 것은 남한 좌익의 몫이었다. 그들은 지목했고 인민군은 총탄을 박았다. 총알이 부족하거나 해당 인간의 가치가 총알에 못 미친다고 판단했을 때는 죽창으로, 돌멩이로 해결했다.

인천 상륙 작전으로 허리가 끊긴 좌익들은 산으로 들어간다. 이 때 인원이 적게는 2만에서 많게는 6만 여 명에 달했다. 전쟁 발발 직후 남한 정규군이 2만 5000명을 헤아린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병력이다. 물론 궤멸 당했다. 그러나 잔당은 남았다. 미처 북으로 올라가지 못한 좌익들 중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일부는 몸을 숨긴 채 때를 기다렸다.

   
▲ 386세대는 남한좌익 운동을 화끈하게 부활시킨 세대들이다. 인혁당 통혁당 남민전 등의 후신이다. 이들은 5.18를 맞아 학원을 혁명요새로 만들면서 공산혁명 투쟁을 가속화했다. 이후 386은 군사정권에 대항한 전기 386, 대학당시 탈이념적 공부에 열중했다가 죄의식을 느끼며 더욱 좌익적 행태를 보이는 후기 386, 생활속에서 좌파운동을 하고 있는 생활 386, 80년대 이데올로기에 여전히 갖혀 있는 이념386 등 네부류로 나뉜다. 남한에서 폭동을 일으키려했던 이석기는 대표적인 이념386분자이다.386은 반미, 친북민족주의 반대한민국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된 이석기가 재판을 받고 있다.

4.19로 사회혼란이 증폭되자 이들은 혁신계라는 이름을 들고 나왔다. 지지리 운도 없었다. 박정희의 5.16은 이들의 한껏 고양된 정서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들은 더 깊이 들어간다. 그들의 꿈은 공산 혁명 전위정당을 만드는 것이었다. 실제로 몇 번 만들었다. 인혁당, 통혁당, 남민전 등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식으로 허술하게나마 전위정당을 만들어도 막상 지도할 대중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전위는 고립되어 있었고 때마다 적발되어 감옥으로 형장으로 갔다.

그런데 행운의 5.18이 터진다(이 명제는 아직 참이 아니다. 터졌는가 아니면 터트렸는가의 중간 어디쯤에서 진실은 방황하고 있다). 5.18은 격분의 심장을 참 많이도 만들어냈고 엄청난 숫자의 자발적 대중이 생겨났다. 굳이 찾아다니며 포섭하지 않아도 알아서 제 발로 조직에 들어왔다. 학원은 혁명의 요새가 되었다. 그렇게 6.25 전쟁 이후 최고점으로 불 타 올랐던 것이 386 좌익 혁명 운동이다.

민주화는 포장지였다. 실제로 그 시기 동안 조직 내에서 진짜로 민주화를 주장하면 개량주의자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한없이 뻗어나갈 것 같았던 386은 두 번의 사건으로 주춤한다. 마음속의 조국인 제국이 무너져 내렸으며 받들어 모셨던 왕조는 백성들을 굶겨 죽였다. 발생에서 30 여년이 지난 2014년 현재 386은 크게 넷으로 나뉜다.

먼저 전기 386과 후기 386이다. 전, 후기 대학 출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전기 386은 당시 무인 정권과의 싸움에서 최전선에 섰던 사람들이다. 소련 등 동구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되던 시기 이른바 평등파(PD) 운동권은 순발력 있게 전향하면서 그 이데올로기를 내려놓는다. 90년대 북한의 실상이 알려지고 300만명 가까이가 굶어죽었다는 사실 앞에 이번에는 자주파(NL) 일부가 돌아서서 그 칼끝을 북한 전체주의정권에 겨눈다.

비행기를 납치했던 적군파는 “우리들은 내일의 조다”라고 외쳤다. 조는 국내에서 ‘도전자 허리케인’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복싱 만화의 주인공이다. 전기 386은 맞아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불타서 재가 될 때까지 싸우게 해 달라던 조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시대에 최선을 다했다. 남김없이 아낌없이 불살랐다. 이들 중 많은 숫자가 전향이라는 형식으로 삶의 궤적을 바꿨다. 어쩌면 그 경로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지적 토양은 척박하고 분노는 일상이었으니까.

후기 386은 운동권 심파(sympathizer의 약자로 동조자들의 의미)를 중심으로 동심원처럼 한국사회에 퍼져있는 무리들이다. 이들은 동료가 구호와 함께 투신하는 모습을 도서관에서 지켜보았으며 시위 도중 부상당해 피 흘리는 친구들을 피해 후문으로 귀가했다. 친구가 감옥에 갈 때 그들은 회사에 취업했고 사법 연수원을 다녔으며 언론사에 취직했다. 당연히 이들의 부채의식은 어마어마하다. 어떻게든 자기 치료도 해야 한다. 그래서 더 극성이다. 현재 반(反)역사, 반(反)대한민국의 든든한 후원군은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여전히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세상을 보고 있으며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읽었으되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에는 관심도 없고 마르크스는 알아도 미제스는 들어 본 적이 없다(당연히, 마르크스가 ‘자본’ 제 1권을 출간한 후 칼 멩거의 한계가치이론으로 반박을 당하자 후속편 출판을 연기했다는 사실은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는 것이라고는 80년대 지하 대학에서 선배들로부터 배운 반쪽 지식이 전부다. 그러면서도 그게 세상의 모든 진리이자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게다가 공부할 나이는 이미 지났다. 그래서 이들은 철지난 노래를 부르고 빛바랜 이데올로기를 향수 대신 몸에 바른다. 정말이지 최악이다.

세 번째는 생활 좌익이다. 이들은 지난 30년 간 꾸준히 진행해 온 사회운동이 생활과 결합된 사람들이다. 각종 사회단체, 시민단체는 이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표방하는 창구이자 생활의 터전이다. 전향? 안 한다. 하고 싶어도 난처하다. 생활 기반도 무너지고 십 수 년 간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도 엉망이 된다. 생활 좌익, 이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애들 선거라고 어른 선거와 다를 리 없다. 홍보 인쇄물은 학교 앞 인쇄소에서 공짜로 찍어주는 게 아니고 자원 봉사자도 밥은 먹여야 했으며 워크숍이라도 한 번 가려면 재정이 휘청거렸다. 그렇게 총학생회 선거를 치르는데 후보당 적으면 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이 들어갔다. 궁금하지 않은가. 대체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물론 어디선가 자금이 유입되거나 혹은 집에다 손 벌리는 실버스푼도 있었겠지만) 그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선거를 치른단 말인가.

답은 별로 어렵지 않다. 선거 이후의 체육대회나 축제에서 그 비용을 털고 가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기념품 단가는 서류상 700원이고 실제 제작비는 100원 안팎이다. 이 차익으로 선거 빚을 갚는다. 기념품보다 단가가 센 졸업 앨범도 애용 항목이었다. 도덕적인 고민? 별로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전체 운동의 일부라고 생각했으니까. 목적을 위해 수단에 대한 고민쯤은 조금 보류해도 된다고 믿었으니까. 몇 해 이렇게 하다 보니 꾀가 생겼다. 매번 눈치 보며 대행사를 고를 게 아니라 아예 기념품 제작, 인쇄물 회사를 차리면 눈치 안보고 주문을 넣을 수도 있고 액수도 편하게 조작할 수 있지 않은가(지금과 달리 수의계약에 대한 간섭과 감독도 없었다). 그걸 현실화 시킨 것이 이석기의 (주)CNP다.

학교 앞 책방이 유일한 수익 모델이었던 것에 비하면 규모나 세련미에서 일취월장이다. 이런 식의 각종 대행사 사업은 이른바 진보 인사라는 사람들이 선거에 출마하고 제도권 정당으로 운동 인자들이 진입하면서 본격화된다. 액수는 억 단위로 오른다. 자금 마련 차원을 넘어 거의 수익 사업 수준이다.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바로 생활 좌익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80년대에서 시계가 멈춘 이념 386이다. 이들에게 남한은 여전히 미제의 식민지이며 한반도는 분단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으며 예속 독점 자본가들이 민중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세상이다. 북한의 세습 군주는 아직도 이들에게 경외의 대상이다. 북한은 미제와 대립구도 하에 있으므로 북한의 핵개발은 정당하며 모든 군사적 도발에는 그 이유가 있다.
 

이들의 이름은 '일심회'라고도 하고 '실천연대'라고도 하며 이후 왕재산으로 불리다가 통진당이라는 이름을 거쳐 RO라는 현대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름은 또 바뀔 것이고 시대 착오적인 싸움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386의 특징을 꼽으라면 반미, 친북 민족주의, 반(反)대한민국 정서다. 시간이 흘렀다고 386을 486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해괴한 발상이고 잘못된 표현이다. 위에 적은 세 가지가 386의 기본 정서였고 그 정서에 호응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386이다. 예를 들자면 노무현 전대통령이 그랬다. 아직도 학교 안에서 반미 대자보를 써 붙이는 학생이 있다면 그 어린이도 386이다.

공도 분명히 있다. 어쨌거나 민주화를 이루어냈으며 사회 각 부문을 약진시켜 대책 없이 국가에 밀리던 후진국형 사회구조를 개선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이별할 때가 있다. 박수 칠 때 떠나라, 라는 말도 그래서 있을 것이다. 박수를 받으며 내려놓는 것, 버리는 것, 이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우리는 어둡고 답답하고 무서웠던 그러면서도 새벽이 임박했다고 믿고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서 끌어냈던 날들을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고 감히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