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구계획 절반 실행...신용도 낮춰 주가하락 등 큰 피해

   
▲ 이의춘 미디어펜 발행인
신용평가사들은 청부업자들인가? 감독당국이 기합이나 메시지를 주면 곧바로 기업신용도를 무지막지하게 조정해버리는 사례가 적지않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야구’는 실종되고, 관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이 최근 현대그룹과 동양그룹, KT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신용평가를 급격히 떨어뜨린 것은 사후약방문인데다, 구조조정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경영난을 겪는 기업일수록 계열사 매각과 핵심자산처분, 인원축소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다. 신용평가사가 이들 기업에 대해 한꺼번에 급격히 신용도를 추락시키는 것은 매각과 인수합병, 재무개선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하는 악재가 되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하이에나같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공원에는 하이에나가 쓰러지거나 죽은 누우나 인팔라를 잔인하게 먹어치운다. 신용평가사들도 평소에 제대로 평가를 하지 않고, 기업이 간과 쓸개를 내놓을 정도의 고통스런 재기에 나설 때 잔인하게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해당기업에겐 ‘깐이마 또 까는 격’이다. 은행이 평소에 ‘비오는 날 우산을 빼앗지 않겠다’고 공언하다가, 불황이 닥치면 자금난을 겪는 기업부터 빌린 자금을 급격히 회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외환위기 시절 미국의 무디스와 S&P,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에 대한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8단계나 떨어뜨려 정크본드로 전락시킨 바 있다. 위기이전에 신용등급을 조정하지 않고 한국정부가 외자유치와 달러조달에 사력을 다하는 위중한 시기에 국가신용등급을 대폭 추락시킨 것.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이같은 사후약방문식 행보로 인해 한국은 달러차입금리가 올라가고, 외자유치에도 차질을 빚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다.

   
▲ 신용평가사들이 구조조정중인 기업들의 신용도를 지나치게 급격히 떨어뜨려 오히려 재무구조 개선노력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현대그룹의 경우 현대증권 등 금융부문을 일괄매각하는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으로 3.3조원의 자구계획중 절반가량을 이행했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가는 중이다. 경영의 불투명성이 해소되는 상황에서 한신평이 현대상선 신용도를 3계단이 떨어뜨린 것은 현대의 재무개선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정은 현대그룹회장(맨왼쪽)이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현대그룹에 대한 신용평가사의 과도한 신용도 하향조정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4일 현대상선 현대로지스틱스의 신용등급을 한꺼번에 3계단이나 낮췄다. 현대상선 회사채 신용등급을 BBB+에서 BB+로 떨어뜨린 것.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도 현대그룹계열사에 대한 신용등급을 낮췄다. 한기평과 나이스신용평가의 경우 그래도 한두단계 떨어뜨렸지만, 한신평은 무려 3계단이나 내렸다.

한신평이 현대상선에 대해 급격한 신용도 조정을 한 것은 자구노력이 부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같은 이유는 타당하지 않다. 현대그룹은 올들어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해왔다. 그야말로 몸통까지 팔아서 정상화에 전력투구중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그룹은 3조3,000억원의 자구노력 계획중에서 절반가량인 1조5400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나름대로 발빠른 실적이다. 채권단의 예상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재무구조를 개선중인 것이다.

한신평은 현대의 자구노력을 제대로 평가도 하지 않고, 급격한 하향조정을 해 아쉬움을 주고 있다. 물론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가 신용평가사들에게 닦달을 했을 것이다. 동양사태 이후 똑바로 평가를 하라고 요구했을 것은 불보듯 뻔하다.
물론 신용평가사들이 자금난등을 겪는 기업들에 대해 신용도를 하향조정하는 것은 시장과 소통하는 것일 수 있다. 그동안 부도기업이나 구조조정기업에 대해 후하게 신용평가를 했다는 비판도 감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용평가를 조정해도 옥석(玉石)은 가려서 해야 한다. 현대그룹은 신속한 재무구조 개선노력으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핵심자산을 팔지 않았다면 신용도의 무더기 강등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등 금융전부문을 매각하고, 현대상선의 각종 자산까지 팔아서 성과를 내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오히려 투자자와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긍정적인 행보로 간주할 수 있다. 시장의 신뢰를 얻어가는 과정인데, 여기에 신용도를 급격히 떨어뜨리면 어떻게 되는가?

한신평의 이번 무더기 신용등급 하향조정은 현대계열사의 주가를 급락시키고, 투자자들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게 만들고 있다. 신용평가사도 환자를 살리는데 동참해야 한다. 구조조정 기업들이 정상화에 적극 나서도록 지원을 해줘야 한다. 분투하는 기업에 대해 다리를 거는 행태는 온당치 못하다.

아무리 동양사태로 인해 신용평가사들이 감독당국에 의해 혼쭐이 났다고 해도 현대그룹에 대한 과도한 신용도 추락은 지나친 감이 있다. 구조조정실적을 감안하는 스마트한 신용평가가 아쉽다. 구조조정을 방해하는 악덕 신용평가사가 돼선 곤란하다. 그럼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악수가 될 것이다. 샤일록 신용평가사가 되지 말아야 한다. [미디어펜=이의춘 발행인jungleel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