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상승 따른 재고평가 이익에 非정유 두각
수익증가 유지 전망 속 '트럼프 리스크' 변수
[미디어펜=김세헌기자] 지난 2015년부터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국내 정유업계가 지난해 역대 최고의 성적표를 받아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가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 미디어펜 자료사진

10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먼저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화학·윤활유 부문의 호실적에 힘입어 사상 최대 규모인 3조2286억원을 기록했다. 정유·화학업계를 통틀어 연간 영업이익이 3조원을 넘긴 최초의 사례다.

매출액은 전년보다 18.3% 감소하면서 39조5205억원으로 집계됐다.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지난해 평균 유가(두바이유 기준)가 2004년 이후 최저치인 연평균 배럴당 41달러대를 보인데 따른 것이다. 

매출은 낮지만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면서 영업이익률도 2004년 이후 가장 높은 8%대로 집계됐다.

SK이노베이션이 사상 최대 실적을 견인한 것은 화학 사업과 윤활유 사업으로 꼽힌다. 화학 자회사인 SK종합화학과 2014년 파라자일렌(PX) 중심의 화학설비 시설로 탈바꿈한 SK인천석유화학의 영업이익이 각각 역대 최대인 9187억원, 3745억원을 기록했다.

SK루브리컨츠,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석유개발 사업(E&P) 역시 견조한 실적을 보이면서 비정유 사업에서 벌어들인 영업이익만 지난해 동안 2조원에 달했다. 이는 정유 사업을 담당하는 SK에너지와 배터리 사업을 제외한 성과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에도 정제마진의 강보합세 지속과 양호한 화학제품 스프레드 유지 등으로 호실적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GS칼텍스도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2조140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도 전년보다 45.8% 증가한 1조4170억원이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연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다만 매출액은 저유가로 인해 9.1% 감소한 25조7702억원으로 집계됐다.

GS칼텍스는 지난해 국제유가가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사상 최대 수준의 영업이익을 달성한 것에 대해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자산 평가이익, 석유화학 및 윤활유 제품 스프레드(석유제품과 원료의 가격 차이) 확대로 인한 환경 변화의 영향을 들었다.

더불어 그간 생산시설과 고도화시설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생산 경쟁력을 높인 점, 공정 개선 활동을 통해 원유 도입부터 정제, 판매에 이르는 전체 공정에서 원가 절감 노력을 한 점 등도 호실적의 배경으로 꼽았다.

에쓰오일(S-Oil) 역시 지난해 매출 16조3218억원, 영업이익 1조6929억원, 순이익 1조2622억원을 기록해 1976년 창립 이래 최대 실적을 냈다. 전년과 비교해 매출은 8.8% 감소했지만, 매출은 107.1%, 순이익은 99.9% 증가했다.

사업부문별로는 정유 7575억원, 석유화학 5169억원, 윤활기유 418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등 모든 사업부문에서 고른 실적을 냈다.

   
▲ 에쓰오일 온산공장 / 에쓰오일 제공

에쓰오일은 파라자일렌(PX), 고품질 윤활기유(그룹III)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비중을 확대하고, 지난 2015년부터는 울산공장 시설개선 사업 등으로 생산효율과 수익성을 높인 결과 10.4%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보였다.

특히 계절적 수요 강세로 인한 정제마진 회복과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관련 이익으로 정유사업 부문은 전기 대비 흑자 전환했고, 비정유부문에서도 높은 수익성을 유지해 9.7%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53% 증가한 9657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달성했다. 매출은 8.6% 줄어든 11조8853억원에 머물렀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호실적의 원인으로 정유 부문에서의 꾸준한 실적과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들었다. 2010년 현대중공업그룹에 편입된 이후 정유에 치우친 사업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비정유 분야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온 결과다.

그동안 현대오일뱅크는 현대오일터미널, 현대쉘베이스오일, 현대케미칼 등 자회사 설립을 통해 비정유 사업에 진출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정유업계는 지난해 정유사들의 호실적이 정제마진 하락 속에서도 완만한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평가 이익(lagging effect)이 크게 작용한 데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고평가 이익이란 해외에서 원유를 수송해와 국내에서 정유를 거쳐 제품을 생산하면서 시간이 흐르는 사이 국제유가가 올라 누리게 되는 이익을 의미한다.

주목할 점은 정유 업계의 호실적 원인이 단지 재고평가 이익에 있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유가 상승도 한 이유지만 이번 정유 업계 호실적의 핵심에는 비정유 부문, 즉 석유화학 부문에 있다는 평가다. 

정유업계는 올해 전망 역시 긍정적으로 점치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수요 증가세가 유지되는 가운데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비회원국들의 감산 합의로 유가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주력산업의 부진 속에서도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됐던 정유 및 석유화학업계에 올해도 순풍이 불고 있다"며 "유가상승의 기조가 보이고 있지만 제품 가격이 아직은 양호한데다 비정유 부문에 대한 투자 등 꾸준한 체질개선으로 수익성 개선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다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 강화에 이어 환율조작국 카드를 꺼내 든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예의주시하고 있다. 

환율의 영향을 많이 받고, 원유 도입은 물론 생산품의 70% 이상을 달러화를 기반으로 거래하는 구조인 정유업계는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 경쟁력이 감소할 것이란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