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논리' 배제된 금융상품 결국 '소비자 외면'
[미디어펜=백지현 기자]“정권이 바뀌고 새 정책이 추진되면 은행들은 ‘반강제적’으로 관련 정책금융상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마치 ‘통과의례’라고 보면 어떨까싶네요.”

은행권 관계자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업계가 처한 현실에 대해 이 같이 토로했다.

“정책금융상품을 공익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무조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시장논리보다는 태생자체가 정치적 성향이 강하다보니 ‘지속되기 힘들다’는 게 정부주도 상품의 한계입니다”고 꼬집었다.

   
▲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역시 역대정부의 전철 그대로 답습하는 모양새다./미디어펜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금융허브’, 이명박 정부 땐 ‘녹색금융’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금융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금융개혁 정책과 맞물려 금융권에선 관련 상품이 봇물처럼 쏟아졌지만, 정권말기에 대부분 흐지부지되거나 소멸됐다.

MB정부 당시 금감원 수장이던 김종찬 원장은 ‘개인용 자전거보험’ 1호 가입자로 등록하며 상품 독려에 나섰다. 김 원장은 “친환경 산업 성장 추세에 발 맞춰 관련 보험상품 개발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MB정부 당시 선전했던 녹색금융 상품은 정권이 바뀌면서 자취를 감췄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역시 역대정부의 전철 그대로 답습하는 모양새다. 2014년 3월 “통일은 대박이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의 드레스덴 연설 이후 금융권엔 통일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NH농협·KB국민·IBK기업·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에서 앞 다퉈 통일관련 예·적금 상품을 선보이며 정부정책에 화답한 것이다.

이들 은행이 선보인 통일대박 상품들은 대부분 이자기금으로 대북사업을 지원하고, 실향민과 개성공단 입주기업 임직원 등에게 특별우대 금리를 제공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출시 초기만 해도 판매금액이 1조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제한돼 있고,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상품의 수요가 급격히 줄었다. 상품의 만기 시점을 고려하면 실적은 더욱 떨어질 것이란 게 은행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A은행권의 관계자는 “현재 판매는 하고 있으나 상품을 찾는 이는 거의 없다”며 “수요가 끊기면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더 이상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판매가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농협은행이 내놓은 ‘NH통일대박 예·적금’은 출시 2년여만인 지난해 10월 판매가 중단됐다. 상품을 찾는 수요자가 갈수록 줄어드는데다 기존 고객까지 이탈하면서 은행이 판매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판매가 중단되기 바로 한 달 전 정기적금 수신실적은 162억원, 정기예금 수신실적은 87억원에 그쳤다.

다른 시중은행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KB국민은행의 ‘KB통일기금적금’은 지난해 11월 기준 3954억원의 잔액을 기록했지만, 올해 초 3851억원으로 줄었다. IBK기업은행의 ‘IBK통일대박기원통장’의 경우, 상품계좌 수는 9300여좌(작년 1월 기준)에서 올 초 6200여좌로 줄었다. 우리은행의 ‘우리겨레통일 정기예금’의 실적도 큰 폭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상품 뿐 아니라 통일금융을 연구하기 위해 전담조직을 꾸린 은행들의 관련 연구회는 현재 명백만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5년마다 새로운 정부주도의 금융상품이 쏟아졌다 없어지기를 반복해 왔다”면서 “전 정부가 시행했던 정책이라면 흔적을 지우고 새 정책을 세우면서 이 같은 일들이 관행처럼 반복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상품은 정권을 뛰어넘어 시장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개발돼야 한다”며 “시장논리가 배제된 금융상품은 결국 소비자의 외면으로 이어지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