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결정 규칙, 의사결정 비용 최소화와 소수자 착취 방지 균형점 찾아야

 이성규의 정치인의 사익추구 행위 특강 4

본 코너에서는 ‘정치인들의 사익(私益)추구 행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나쁜 민주주의: 정치인·관료들은 왜 사익만 추구하는가?』 (이몬 버틀러 저, 이성규·김행범 옮김, 북코리아, 2012년)를 연속적으로 게재하기로 한다. 

󰋼 “의사결정에 필요한 다수결의 수가 많을수록 의견일치에 도달하기 더 어렵지만, 반면에 소수자들이 착취될 가능성은 더 적어진다”. 󰋼 “집합적 의사결정은 쉽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반면에 반대자들에 대해 강제력의 사용을 최소화해야만 한다”.

   
▲ 이성규 국립안동대 무역학과 교수
2장 누가 정부를 필요로 하는가?

어떤 사업들은 우리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특정 사업에 관계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사업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실시하고자 하는 사업에 드는 노동과 비용, 그리고 혜택을 서로 나누어 가지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고용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도시에 거주하는 어떤 가정이 해변가에 있는 멋진 별장 한 채를 사기를 원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 이 가정은 혼자서는 그 매우 값비싼 별장을 사거나 마련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가정이 별장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비용을 서로 분담한다면 ‘별장 마련’ 사업은 가능해 질 것이다. 즉, 어느 한 가정은 자원해서 별장을 장식하고, 다른 가정은 별장에 가구를 비치하고, 또 다른 가계는 잔디를 깎고 정원을 손질하고, 또 다른 가정은 별장에 식료품이나 필요한 물품을 비축한다면 여기에 참가한 모든 가정들이 만족할 수 있는 ‘별장 마련’ 사업은 비로소 가능해 질 수 있다. 이와 같이 별장 마련은 ‘사적재’(private goods)로서 비용문제 때문에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여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한다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사업에 해당된다.

문제는 ‘공공재’(public goods)에 있다. 왜냐하면 공공재의 경우는 사적재와 다르기 때문이다. ‘공공재’란 정의상 사람들이 공공재 공급에 어떠한 기여(비용부담)를 하지 않더라도 공공재 공급으로부터 발생하는 혜택들을 향유 할 수 있는 재화를 말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공공재와 같이 다른 사람들의 노력의 결실을 대가 지불 없이 공짜로 누릴 수 있다면 자발적으로 그 공급에 기여할 유인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흄(David Hume)이 예시한 고전적인 공공재의 예는 ‘항구 준설’과 ‘군대 양성’이었다. 사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상업 및 교역의 증진과 개선된 안전(즉, 공공재)으로부터 혜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공공재를 공급하는 데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더라도 똑같은 혜택을 얻는다면 누가 항구 준설에 드는 비용을 자발적으로 부담하고, 또 누가 자발적으로 군대에 입대하겠는가?

   
▲ 공공선택이론에선 의사결정과정에서의 규칙을 중시한다. 의사결정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다수자에 의한 소수자약탈을 막을 수 있는 규칙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단순 다수결투표보다는 만장일치제가 가장 좋은 규칙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공공선택학의 대가인 뷰케넌과 털럭 등은 가장 좋은 규칙으로 가중 다수결 투표 또는 3분의 2투표가 바람직하다고 했다. 뷰캐넌은 정부는 자기의 삶과 목표를 갖고 자체적으로 성장하는 유기체가 아니고, 집답적 개인들이 이익을 관철하기위해 만든 수단이라고 봤다. 경제민주화 정책들도 개인들로 구성된 집단적 개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위해 만든 정책수단들이다.

반면에 털럭(Gordon Tullock)은 공공재의 사례로 한때 악명 높았던 ‘런던의 스모그’(London smog; 런던을 뒤덮은 연기 섞인 안개를 말함)를 들었다. 분명히 그러한 오염은 사람들이 연기가 없는 무연(無煙) 연료를 사용(대체)함으로서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연 연료는 비용이 더 비싸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오염 감소 노력이 사회의 전체 오염을 제거하는 데 아주 작은 기여를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누가 추가적 비용을 지불하겠는가? 또한 많은 사람들이 무연 연료로 대체하여 전체 오염 수준을 크게 감소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였지만 여전히 일부 무연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연 연료로 대체한 사람들의 희생(기여)에 ‘무임승차’(free-ride)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과연 누가 추가적 비용을 지불하겠는가?

이러한 ‘공공재’ 문제의 결과는 잠재적으로 혜택을 가져다주는 사업들, 예를 들면, 안전의 증진 또는 공기 정화 등과 같은 사업들이 사회적으로 결코 공급되지 않거나 공급된다고 해도 불충분하게 공급될 것이다. 공공재로 분류되는 몇몇 재화들은 종종 나중에 공공재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예를 들면, 항구 준설의 경우 항구 내 시설을 사용하는 선박들에 대해 무료 사용이 아니라 ‘항만 사용료’를 부과함으로써 준설에 드는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 이 경우에 항구 준설은 더 이상 공공재가 아니다.

그러나 공공재와 관련하여 많은 이론적 그리고 실제적 경우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중요하다고 생각되지만 시장이 공급할 수 없거나, 또는 시장이 공급하더라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그러한 사업들은 ‘정부를 고용하여’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투표를 통해 집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며, 이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비용을 공유하도록 강제(强制)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연기를 발생시키는 연료들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국방과 공공사업에 드는 재원을 조달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뷰캐넌(J. Buchanan)과 털럭(G. Tullock)과 같은 정통 공공선택학 연구자들은 국가를 ‘유기체적’(organic)인 것으로 보지 않고 있다. 여기서 유기체(有機體)란 그 자신의 삶과 목표를 가지고 자체적으로 ‘성장하는’ 조직을 의미한다. 그 대신에 뷰캐넌과 털럭은 정부(국가)를 단순히 하나의 ‘수단’으로서 인식하고 있다. 즉, 정부는 합리적(rational)이고 이기적(self-interested)인 개인들이 결합하여 ‘집단행동’(collective action)을 통하여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들을 증진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의사결정에 드는 비용

이러한 배경 하에서 다음의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즉, 이러한 집합적 의사결정을 하는 데 어떤 규칙(rules)이 적용되어야 하는가? 특히 모든 사람들이 집합적 사업에 참가하도록 강제하는데 필요한 다수결(majority)의 크기는 얼마이어야 하는가?
 

아마 이상적인 규칙은 “만장일치제”(unanimity rule)일 것이다. ‘만장일치제’란 어느 누구도 의사결정 과정에 강제적으로 참가해서는 안 되며, 또 모든 사람들이 상호 혜택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기여하도록 동의하는 규칙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의 대규모 사회들에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로부터 동의를 얻으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들이 필요할 것이고, 이는 실제로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또한 만장일치가 필요한 경우 어떤 한 개인이 어떤 사업에 대해 반대(거부)할 지도 모른다. 그런 이후에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 사업에 찬성하여 해당 ‘공공재’가 공급된다면 자신은 무임승차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장일치보다 더 적은 수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투표 규칙이 있다. “다수결 투표제”(majority voting)가 이에 해당된다. ‘다수결 투표제’란 투표자들의 과반수(majority)가 자신들에게 혜택을 가져다주는 특정 사업에 찬성하여 이를 통과시키는 데 적용되는 규칙을 말한다. 그러면 다른 모든 사람들(즉, 과반수 미만에 속하는 사람들)은 다수결의 결정에 따라 그러한 사업을 강제적으로 수용해야만 하거나, 그 사업에 드는 비용을 강제적으로 부담해야만 한다.

실제로 다수결에 의한 이러한 착취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예를 들면, 소수자들이 강하게 반대하거나 또는 그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는 정부 사업이나 활동들에 대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또는 보조금 지급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강제적으로 조세가 부과된다. 종종 다수결 규칙은 이보다 더 한 경우도 있다. 즉, 다수자들은 소수자들에 대해 자신들이 믿는 가치까지도 강요하며, 마약 소지와 같이 뚜렷한 피해자가 없는 사소한 ‘경범죄’에 대해 검찰에 고소하기도 하고, 다른 경우에는 소수자들의 기본적 자유를 침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들은 다수결의 횡포와 착취에 해당된다.
 

의사결정에 필요한 다수결의 수가 많을수록 한편으로는 의견일치(또는 만장일치)에 도달하기 더 어렵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수자들이 착취될 가능성은 더 적어진다. 이를 뷰캐넌(J. Buchanan)과 털럭(G. Tullock)의 주장을 빌려 표현하면 “다수결에 필요한 수가 많을수록 의사결정 비용(decision-making costs)은 더 높아지고, 외부 비용(external costs; 소수자들의 착취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사결정에 필요한 다수결의 수가 더 적을수록 한편으로는 의견일치를 보기가 더 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수자들이 착취될 가능성은 더 커진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뷰캐넌과 털럭의 주장을 빌리면 “다수결에 필요한 수가 적을수록 의사결정 비용은 더 낮아지고, 외부 비용(소수자들의 착취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균형을 찾아서

이상적으로 우리는 의사결정에 드는 비용과 외부 비용의 ‘총합’이 최소화되는 곳에서 성립되는 다수결(이를 ‘최적 다수결’이라 함) 규칙을 찾을 수 있다. 이 경우의 최적 다수결은 합의(의견일치)에 쉽게 도달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작아야만’ 하며, 동시에 소수자들의 착취를 어렵게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커야만’ 한다.
 

물론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국가들의 정치제도에서 널리 채택·사용되고 있는 의사결정 규칙은 “단순 다수결 투표제”(simple majority voting)이다. ‘단순 다수결 투표제’란 시민들의 절반 이상(즉, 과반수)이 찬성 투표하는 것에 따라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공공선택학 연구자들은 ‘어떤 투표 규칙을 적용할 것인가’라는 투표 규칙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정부의 결정들은 주로 ‘강제’(coercion)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투표에서 과반수 미만에 해당하는 ‘소수자들’은 다수결(즉, 과반수)이 원하는 것에 대하여 강제적으로 그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고, 다수결에 의한 결정의 결과를 받아들여만 한다.

이 과정에서 소수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강하게 반대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단순 다수결 투표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상충관계가 존재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집합적 의사결정이 쉽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반대자들에 대해 강제력의 사용을 최소화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집합적 의사결정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수결이 요구하는 사업으로부터 어떠한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는 반대자들에 대해 최소한의 강제력을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단순 다수결 규칙’은 비록 오늘날 세계 정치제도에서 널리 유행하고 있지만 최상의 투표규칙(best rule)이 아닐 수도 있다. 뷰캐넌과 털럭의 주장에 의하면 비록 단순 다수결 규칙이 현재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을지라도 다수결 투표와 관련하여 ‘마법적인’(즉, 요술방망이와 같은) 규칙은 아니다. 뷰캐넌과 털럭은 단순 다수결 규칙 이외에도 많은 다른 투표 제도들이 존재한다고 지적하였다. 예를 들면, ‘2/3찬성 규칙’과 같은 “가중 다수결 규칙”(qualified majority rule)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관계된 문제(사안)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다른 투표 규칙들을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소수자들이 착취되는 위험(가능성)이 낮은 경우에는 사람(시민)들은 ‘단순 다수결 규칙’을 선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민들은 소수자의 착취 위험이 높은 경우에는 ‘훨씬 더 많은 다수결’을 요구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외부 비용(소수자들의 착취 가능성)이 높을수록 투표 규칙은 더 많은 사람들을 포함해야만 한다.
이것은 과세(課稅) 문제와 관련해서 빅셀(K. Wicksell)이 왜 ‘만장일치’에 의한 결정을 지지하는 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뷰캐넌과 털럭은 미래의 모든 투표 규칙을 결정하는 ‘헌법’은 반드시 만장일치적으로 채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출처: 『나쁜 민주주의: 정치인·관료들은 왜 사익만 추구하는가?』 (이몬 버틀러 저, 이성규·김행범 옮김, 북코리아, 2012년) /이성규 국립안동대 무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