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항일 기자] #1. 30대 회사원 김모씨는 최근 아파트 분양권을 부인 명의로 계약하고 은행에 중도금 대출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전업주부인 김씨의 아내가 소득이 없어 대출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은행 측의 답변. 결국 김씨는 분양권 명의를 자신의 이름으로 다시 작성하고 나서야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2. 50대 가장인 이모씨도 얼마전 다소 황당한 경험을 했다. 훗날 자녀에게 증여할 목적으로 새 아파트 분양권을 매입하려고 했는데 은행측으로 중도금 대출은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까다로워진 금융권의 중도금 대출 심사로 분양권을 찾는 매수자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지만 분양권 거래도 쉽지 않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분양권은 대부분 중도금 대출이 실행된 상태라 까다로운 심사를 피할 수 있지만 일부 은행들이 대출 승계과정에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금융권이 분양권 거래에서까지 '갑질' 행세를 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 작년 2월 이후 분양권 거래 현황./사진=서울부동산정보광장.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11·3 대책과 함께 중도금 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대체 수단으로 분양권을 찾는 매수자는 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1월) 서울 아파트 분양권 거래량(입주권 제외)은 384건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38%나 증가했다. 이는 2007년 이후 1월 거래량으로는 가장 많다.

같은 달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 건수가 5431건에서 4526건으로 20% 가까이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분양권 거래가 꽤 활발하게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중도금 대출이 집행된 분양권에 대해서도 일부 은행들이 승계 심사를 깐깐히 하고 '갑질' 논란과 함께 그나마 남아있는 주택 매수세를 꺾어버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한 건설사 관계자는 "통상 분양권 전매 과정에서 중도금 대출 승계는 문제가 없다"며 "정부의 중도금 대출 규제 강화 권고를 분양권 매수자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은 금융권의 횡포"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도금 대출 승계 없이 분양권을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이미 중도금 대출이 나간 분양권에까지 개인의 신용등급을 잣대로 하는 것은 시장을 거래절벽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신규 분양단지에 대한 시중은행의 중도금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수요자들이 기분양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기분양권에 대한 중도금 대출 심사도 깐깐해지면서 금융권의 '갑질' 횡포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해 분양한 단지들 중 중도금 대출 납부일이 임박한 곳./자료참조=각 사 제공.

이 때문에 은행들이 결과가 정해진 의미없는 '줄다리기 싸움' 끝에 금리 인상 등의 방법으로 대출을 실행해주는 이른바, '대출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도금 대출 규제 강화는 정부의 권고 사항이지 의무가 아니다"라며 "건설사는 물론 대출이 절실한 서민들을 대상으로 대출장사를 하는 금융권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알지만 금융권의 대출장사가 부동산시장을 더욱 옥죌 뿐만 아니라 서민들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며 "맹목적인 규제 보다는 필요한 곳에 자금이 흘러들어갈 수 있는 보다 세심한 정책과 금융당국의 지도가 필요한 것 같다"고 조언했다.
[미디어펜=조항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