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아이,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대학원생이 KBS PD가 됐다. PD의 책상은 'KBS의 편의점'이라고 불릴 정도로 먹거리로 즐비하다.

"PD가 전문분야를 정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거예요. 자신이 좋아하는 걸 제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먹는 걸 좋아했어요. 동료나 선후배들은 제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이야기들 하세요."

   
▲ 이욱정 PD/사진출처=뉴시스

아시아의 면(국수)이 대륙과 문화권을 넘어 세계인의 입맛을 바꿔가는 여정을 담은 '누들로드'로 다큐멘터리의 퓰리처상이라 불리는 피버디를 수상한 이욱정 PD의 이야기다. "연출가는 만드는 대상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말들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연출가는 그 반대로 대상 한가운데로 뛰어들죠. 이욱정 PD는 그런 사람입니다."(서재석 KBS TV본부장)

이 PD는 '누들로드'로 다큐멘터리 PD로 일가를 이룬 뒤 사비를 털어 세계적인 요리 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로 요리 유학을 떠났다. 스스로 돌이켜도 무모한 도전이었다. "야구 전문PD가 야구를 안 해보고 야구 전문 PD가 될 수 없듯 직접 요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돌이켜보면 무모한 일이었죠."(이 PD)

제작 기간 2년, 제작비 24억원이 투입된 '요리인류'는 이제는 셰프가 된 이 PD가 역사를 이어온 음식과 그 음식 너머의 인류를 말하는 8부작 다큐멘터리다.

"5년 전에 '누들로드'를 기획했을 때 음식으로 문명사를 다룬다는 것에 의아한 시선이 있었어요. 이후 5년 남짓 동안 우리 사회가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다면 지금은 먹는다는 게 문화적인 놀이가 됐다고 봐요. 일상적인 행위이자 창의적이고 흥미진진한 여흥, 레저, 놀이가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놀이를 통해 모두가 치유를 받고 싶고 위로, 위안을 받고 싶은 겁니다."(이 PD)

8편 모두 기존 HD보다 4배 더 선명한 차세대 UHD TV용 4K 촬영을 도입해 '맛있는' 화면을 담았다. '다큐3일' '스타키친' 등을 연출한 김승욱 PD, 김승환·한주열 촬영감독이 함께했다.

"배고팠을 때가 가장 위험했죠. 한번은 인도에서 카레를 맛있게 끓여줬는데 건더기를 다 건지고 라면을 넣어서 먹었어요. 눈물이 날뻔했습니다"(김승욱 PD), "카메라가 맛있게 많이 먹었죠. 요리에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는데 가장 맛있는 순간에 메모리와 외장하드를 배불리 채웠죠"(김승환 촬영감독), "요리보다 인류를 더 많이 찍었습니다. 버라이어티하고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한 다큐같아요."(한주열 촬영감독)

상반기 '빵과 서커스' '낙원의 향기, 스파이스' '생명의 선물, 고기' 등 3편을 내보낸다. 26~28일 밤 10시 KBS 1TV에서 볼 수 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누들로드' 감상평이 있습니다. 어떤 중학생이 '누들로드'를 보고 국수를 먹는데 숙연해졌다고 말했어요. '요리인류'도 그런 반응을 얻을 수 있다면 성공한 거죠."(이 PD)

하반기 '세상의 모든 빵' '매혹의 요리-카레' '불의 요리-바비큐' '실험적인 요리를 다루는 '쿠킹스페셜'로 이어진다.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요리인류' 시리즈를 만드는 게 인생의 목표에요. 인류를 대표하는 음식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는 음식 등 인문학적이면서 심화된 내용을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요리인류'가 잘 돼야 계속할 수 있겠죠."(이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