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자중 불가피…반문연대 협력 또는 좌우대결 명분쌓기 필요
[미디어펜=한기호 기자]헌법재판소가 전날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여당 지위를 상실한 자유한국당이 당분간 패닉 상태를 면치 못하게 됐다.

당내에서 탄핵 반대를 주도했던 친박계는 특히 헌재 결정 '불복'과 '승복' 후 조기 대선 국면에서의 후퇴 기로에 섰다. 이들은 일단 제도권 정치인으로서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이지만, "악법도 법"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탄핵 초기부터 반대해온 김진태 의원은 "대한민국의 법치는 죽었다", "마녀사냥"이라고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헌재가 선고 21분 만에, 당초 탄핵소추안에 포함된 혐의 13개 관련 구체적 사실관계를 설명하지 않고 대통령직 파면을 선언한 데 따른 반응으로 보인다.

다만 탄핵 선고일 이후 60일 이내 대선을 치르게 되면서 한국당은 빠른 대선 체제 전환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책만 하고 있을 여유조차 없다"고 말했고, 정우택 원내대표도 "60일 이내 대선이라는 국가적 과제가 남았다"면서 일치단결과 함께 "보수대통합의 대선승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 여권 유력 주자로 분류되는 홍준표 경상남도지사(오른쪽)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왼쪽)은 전날(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에 대해 승복한다는 입장을 냈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오후 대국민 담화 발표를 통해 "더 이상의 장외집회를 통해 갈등과 대립을 확대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고언도 남겼다./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친박계가 탄핵 불복 여론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당에서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홍준표 경상남도지사도 "헌재 결정 존중" 입장을 나란히 내며 혼란 확산 사전 차단에 나섰다.

앞서 탄핵심판 절차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홍준표 지사가 먼저 "유감스럽지만 헌재 결정은 받아들인다"고 승복한 뒤 "이제는 대란대치를 해야 할 때"라고 대선에 집중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대란대치는 크게 어지럽혀 크게 다스린다는 홍 지사의 슬로건이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대한민국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한 자유민주국가로 우리 모두가 헌재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며 "지금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승복할 수 없다는 분도 있을 것이지만 이제는 수용하고 지금까지의 갈등과 대립을 마무리해야 할 때"라고 호소했다.

또한 "더 이상 장외집회를 통해 갈등과 대립을 확대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오늘 (탄핵 반대) 시위과정에서 소중한 생명을 잃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며 "앞으로 더 이상 이런 희생이, 또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돌발행동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두 여권 유력주자가 승복 입장을 낸 이상 친박계를 중심으로 한 탄핵 반대파 의원들은 물리적으로 헌재 결정을 되돌리는 일이 불가능하고, 대선 전략 마련에 집중하는 게 최선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지지율 35% 전후를 구가하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1강' 대 10%안팎의 중소 주자들이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돼 있다. 기존 양대 패권이라 불리우던 친박과 친문 중 전자는 당분간 숨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고 후자가 득세하면서 정적들의 화살이 더욱 집중될 전망이다.

더민주 내에서 친문계와 대립한 끝에 '경제민주화는 포퓰리즘'이라는 비난까지 직면한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는 비례대표 의원직을 포기하면서까지 탈당, 반(反)패권과 개헌을 기치로 한 '제3지대 연대' 구축에 나서고 있다.

비박계 바른정당에서도 대선주자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잇따라 김종인 전 대표와 접촉하고, 창당 주역 김무성 의원도 반문재인·개헌을 연결고리로 한 제3지대 구성에 적극 나서겠다고 공언하는 등 연대 명분 만들기에 협조적인 분위기다.

'보수후보 단일화'를 고집하던 유승민 의원조차도 안철수 의원 뿐만 아니라 국민의당 전체까지 포함하는 반문연대에 다소 긍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한 바 있다. 탄핵 직후 정병국 당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단이 총사퇴한 것도 '새 얼굴'을 내세워 오랜 지지율 침체 극복과 제3지대 형성 주도권 확보를 도모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왼쪽)과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운데) 그리고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지난달 15일 여의도 한 호텔에서 회동해 분권형 개현에 뜻을 모으며 '제3지대 연대론' 군불떼기에 들어간 바 있다. 김무성 의원과 김종인 전 대표는 최근 '반문재인'과 반패권, 개헌을 기치로 한 제3지대 연대를 적극 도모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국당은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 여론을 주도하며 국민의당·바른정당과 함께 더민주 친문계를 압박하려는 구상을 해왔으나, 우려했던 탄핵이 현실화하면서 대선 전 개헌은 사실상 물건너 갔고 집권여당의 지위를 잃었다.

이런 가운데 가능한 선택은 포괄적인 반문·개헌 제3지대 연대에 주도권을 포기하고 협력하거나, '보수우파 대 진보좌파' 진영싸움으로 대선 국면을 이끌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정치권 이합집산의 진행 양상에, 후자는 좌우간 명분을 건 여론전에 귀추가 달렸다고 볼 수 있다.

한국당으로서는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시내 모처에서 김종인 전 대표와 조찬 회동을 갖고 탄핵 이후 정국 구상을 논의, 특히 조속한 개헌 추진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루는 등 일단 제3지대 연대 협력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무능하다"고 규정했지만 보수 색채가 뚜렷한 홍 지사를 중심으로 "전열 재정비"를 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정통보수층의 지지 대부분이 쏠린 황 대행의 출마 여부도 미지수로 남아있다.

반문연대든 좌우대결이든 종국에는 문 전 대표와 1대 1로 맞붙을 후보를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지만 양측이 먼저 '명분 대결'을 벌이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공적으로 삼은 문 전 대표에 대한 지지도 추이에 따라 한국당-제3지대-더민주 3개 진영 후보 간 3자 대결이 펼처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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