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움직일 유일 정치인…'시즌2' 시작을
18일 태극기 집회 흔쾌한 모습으로 등장하라
   
▲ 조우석 주필
나만의 판단이었지만, 헌재가 탄핵 각하·기각 결정을 내리는 희망사항을 전제로 그려봤던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랬다. 헌재의 결정 직후 박근혜 대통령은 "명예회복에 감사하지만, 잔여 임기를 다 채우진 않겠다"는 전향적 입장을 밝히는 게 우선 필요하다.

조기 하야 선언은 탄핵 기각 이후 예상되는 사회적 논란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그 에너지를 보수정권 재창출에 쏟는다는 그림이다. 국정의 남은 과제? 그게 큰 문제인데, 그건 새로 뽑을 지도자의 몫이라며 여운을 남기면 된다. 물론 지난 주말, 현실은 달랐고 누명 탄핵의 굴레를 벗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이 끝내 서울 삼성동 사저로 돌아갔다. 착잡하다.

그럼에도 이 땅의 언론은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는 걸 잊지 않았다. "모든 결과는 안고 가겠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했던 그의 메시지가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이라고 규정했고, 검찰 수사 전망까지 곁들여 으름장을 놨다.

가관이다. 국회-검찰-언론이 만들어낸 거대한 날조극으로 헌법기관인 대통령을 내쫓고, 이젠 그것에 승복하라는 억지 종용이라니! 부끄러운 잔명(殘命)을 유지해갈 저들의 요구와 대조적으로 더 분명해지는 건 박근혜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깨끗했다는 점이다. 동시에 당장 수백 만 명을 움직이는 대중 동원력을 가진 정치인은 그가 유일하다.

   
▲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에서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오후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에 도착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박근혜는 은퇴한 게 아니다

감히 예상컨대 이미 시작된 탄핵 역풍이 앞으로 어떤 파괴력으로 번질 지 아무도 예상 못한다. 그 징후의 한 자락이 태극기 집회다. 이번 누명 탄핵은 지지층의 충성도를 더 높였을 뿐이다. 이 땅의 거짓언론들은 그가 자연인 신분임을 강조하지만, 착각 마시라.

박근혜는 은퇴한 게 아니다. 전직 대통령 신분을 유지한 채 존재만으로 영향력을 유지하는 후광(後光)을 계속 키울 것이다. 그런 효과란 정치공학 따위로 계량할 수 없는데, 지난 4년의 공과를 우리가 익히 알기 때문이다. 통진당 해산, 역사교과서 정상화 추진 등에서 재확인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대한민국파였다.

엉터리 헌재가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헌법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일갈했으나 엄연히 그 거꾸로가 맞는 소리다. 김대중-노무현 좌익정부 10년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비정상의 정상화' 드라이브를 걸었던 것도 그였다.

그게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던 이명박 정부와 구분되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익정부 9년 동안 얼마나 '빨간 물' 망조(亡兆)가 좀 빠졌을까? 안타깝게도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 대청소는 이뤄지지 않았다. 외려 대한민국파가 반격을 받았다. 제왕적 국회, 정치 검찰, 반역 언론으로 이뤄진 반(反)대한민국파가 똘똘 뭉쳐서 한 여인을 쓰러뜨린 게 이번 탄핵 사태다.

뿌리를 파고 들어가면 87년 체제가 나온다. 1960~70년대 위대한 성취를 보였던 박정희 모델에 대한 반대진영의 구축이 87년 체제의 아성이었다. 그때 이후 30년, 민주화를 가장한 사회주의 세력과 주사파 등 반체제 세력이 정치사회적 헤게모니를 거의 모두 쥐었다.

어느덧 여의도 국회는 반체제의 숙주(宿主)로 변질됐다. 그리고 이때 정치인-대학교수-신문기자-판검사-경찰 등 대한민국 제도권 범털 대부분이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로 타락했다.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란 주사파 등 반체제 세력에 면죄부를 주거나 그들을 민주세력-양심세력이라고 믿는 덜떨어진 무리를 말한다.

그들은 헌법 4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말로만 떠들어대며, 자신을 합리적 보수 내지 멋진 자유주의자라고 착각한다. 막상 체제수호엔 나 몰라라 하기 때문에 속물에 불과한데, 이번 강일원-이정미를 포함해 헌재 8명의 재판관 전원이 그쪽이다. 뿐인가?

   
▲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가 내려진 뒤 이틀이 지난 12일 청와대를 떠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우린 박근혜의 정치적 진화를 믿는다

크게 보아 종편-조중동 모두가 그렇다. 그런 범(汎)속물-범 부패기득권세력, 그들이 힘을 합쳐 무력시위를 한 게 이번 대통령 탄핵 사태다. 이들은 자신들이 한 짓을 명예혁명으로 포장하는 비상한 재주도 갖고 있다.

개혁파 박근혜는 이런 비정상화를 척결하려다가 자신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결국 대한민국을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다. 용의주도하지 못했고, 무기력하다는 일부 비난도 피할 수 없다. 더 심한 비판도 피해갈 수 없다. 혹시 그가 충분히 용감하고 이념무장이 확실했는가? 바로 그 질문이다.

왜 집권초기 광주 5.18묘지를 찾아 화해를 구걸했는가? 제주 4.3을 국가추념일로 한 건 또 뭔가? 일본에 반대하고 중국에 괜한 기대를 걸다가 집권 초 3년 외교를 헛바퀴 돌렸다. 정치란 피아(彼我)의 구별인데, 집권 초기 100% 대통령이란 헛구호도 어설펐다. 물론 지난 1년여, 이 모든 걸 바로 잡는 노력은 그의 정치적 진화과정을 보여준다고 나는 믿는다.

마무리 한 해를 남긴 시점에서 돌연 하차한 건 진실로 뼈아프지만, 그에겐 또 다른 기회다. '박근혜 시즌2'를 시작하라는 신호다. 60대 중반, 아직은 젊다. 무엇보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당신을 기다린다. 우리 기대를 버리지 말길 바란다.

누구의 오해처럼 우린 친박 세력이 아니다. 단지 대한민국파일뿐이다. 당장 이번 주말 태극기 집회(오후 2시 서울시청 앞) 때 손에 태극기를 들고 나오는 박근혜, 당신의 모습을 보았으면 한다. 상식이지만, 태극기를 이기는 힘은 아무 것도 없다. 이 나라를 살리는 대역사(大役事)의 지렛대, 그게 당신의 몫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린 아직 박근혜, 당신과 헤어지지 않았다.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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