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이틀만인 1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삼성동 사저에 도착해서야 첫 입장을 냈다. “이 모든 결과를 제가 안고가겠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이다. 

이 발언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정치권은 “박 전 대통령의 불복 선언”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정치권은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히 승복과 불복을 떠나 대선가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대선 레이스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소재로 보는 것이다.

기간이 짧은 조기 대선 정국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되면서 탄핵기각을 주장해온 여론이 동정론으로 확산될 경우 여러 변수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관측이 그 배경이다. 박 전 대통령은 과거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만큼 보수층 결집력이 큰 인물인 만큼 대선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이 대리인단의 주장처럼 “사법적 증거가 약한데도 나쁘게 형성된 여론 탓에 소위 괘씸죄에 걸려 탄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수 있다. 탄핵심판 이후에도 일각에선 “헌재가 소추안에 하자가 있는 국회의 자율권은 확대해 해석하면서도 대통령의 통치력은 축소 판단했다”는 견해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통령의 사저 앞 발언은 그동안 탄핵 기각을 외쳤던 지지자를 발견한 정치인이 마지막으로 보여준 리더십의 발현일 뿐이라고 믿고 싶다. 강력하게 불복을 외치려고 했다면 사저에 복귀하는 길에 타인을 통한 입장 발표보다 좀더 적극적인 방법을 택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헌재가 지적한대로 대통령의 권한남용과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이 오래된 폐습인 것은 맞다. 역대 정권마다 친인척 비리가 있었고, 그래서 대통령이 퇴임한 뒤 아들이 구속되고 형님이 처벌받는 일이 꼬박 벌어졌다.

역대 정권마다 조금 덜하고 더한 정도의 차이로 되풀이되어온 폐습이 있었으니 박 전 대통령은 ‘왜 나만’이라는 억울한 심정이 들 수도 있겠다. 실제로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이 그녀의 저속한 일탈과 연루돼 생각보다 확대된 것을 세세하게 몰랐을 수도 있다. 

   
▲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에서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오후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에 도착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지금 박 전 대통령은 개인적인 송사에 휘말린 것이 아니다. 이정미 재판관은 탄핵심판 선고 마지막 부분에서 “이번 대통령 파면은 보수 진보의 이념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 폐습을 끊어버려야 한다는 여론을 헌법재판소도 거부할 수 없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정치적 폐습은 대통령만 바꿔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 특권 등 개혁 대상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그래서 이번 사태를 맞으면서 대선후보를 포함한 각 정당 지도부가 국가적 불행 사태를 애통해하고 자숙하는 태도를 보이기를 바랐지만 일부  승리에 도취해 박 전 대통령 때리기에만 몰두하고 있어 씁쓸함을 남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이제라도 헌법수호의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박 전 대통령이 전직 국가수반으로서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와 대통령 파면이라는 국정혼란이 초래된 사태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말할 때이다. 

지금 박 전 대통령이 과거 한나라당 후보 시절 경선패배에 당당하게 승복 선언을 했던 그때 그 심정은 결코 아니겠지만 그래도 지지자들을 위해서라도 용기 있는 모습을 다시한번 보이기를 바란다. 분노란 나약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분노만 하고 있으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보수는 진보의 구태를 답습할 때 더 크게 추락할 수 있는 법이다. 쟁취가 본능인 진보는 대결 구도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보수는 진보와 완전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보수적 가치는 다름 아니라 헌법수호·법치주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목소리가 크지 않고 눈에 띄지 않지만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 보수의 가치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을 선택했던 절반의 국민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 난국을 보수가치 실천으로 풀어가야 하고, 그 마지막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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