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 아닌 진짜 골드미스의 이야기…자신의 삶의 개척하는 진짜 여자 이야기
   
▲ 조윤서 거목엔터테인먼트 대표
국내 안팎이 시끄럽다보니 꽤 조용하게 지나갔지만, 지난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1908년 미국의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여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시위를 벌인 날을 기념해 제정한 날이다.

여성주의를 담은 1870년 헨리크 입센의 소설 '인형의 집' 주인공 노라가 집에서 가출한다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파격적 결말로 사회에 충격을 던진 후 근 40년 만이었다. 이후 여성의 인권은 진일보해왔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20세기 초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 불평등을 토로하고, 1991년 미국 대중영화 속 델마와 루이스가 그랜드 캐니언 절벽을 향해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남성의 속박에서 자유를 선언한 이후로 여성평등은 제대로 자리 잡아 왔을까?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여성평등에 관한 인식이나 논쟁은 아직까지 노처녀 혹은 김치녀 등의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연극 <다가진 여자>를 기획하게 된 것도 이런 인식이 바탕이 되었다.

학문적 페미니즘 연구는 활발하지만 나와 엄마, 동생, 친구 등 내 주변의 평범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잘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다는 현실도 이번 연극의 동력이다. 여성이란 존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는 느낌이 든다. 고학력이든 저학력이든 고수입이든 저수입이든 남성에 의해 선택받는 피동적인 존재랄까? 봉건사회적 관념이 채 사라지지 않았다.

   
▲ 다가진 여자 출연진.

골드미스라는 신조어에 담긴 압축된 느낌도 별로 다르지 않다. 30대 이상 미혼여성 중 높은 학력과 경제적 능력을 갖춘 여성 골드미스, 그런데 이 단어에도 속물적 뉘앙스가 배어 있다. 상품을 소비하는 경제주체로서의 용어지 여성의 존재나 자아가 담긴 용어는 아니다.
 
약 백 오십년 전, 남편에게 의존하던 노라가 집을 나오며 자아 독립선언을 했던 시대에서 현대 여성의 주체적 인식은 얼마나 더 나아졌을까?

<다가진 여자>는 언젠가 친구와 함께 홍콩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친구와 때로는 킥킥 대면서 또 어떤 순간은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이 연극을 구상했다.

<다가진 여자>의 여주인공은 말 그대로 다 가진 여자다. 변호사 직업에 학력, 재산, 몸매까지 다 가진 여자, 특급 골드미스 '다가진'의 사랑쟁취기다. 처음으로 시도한 나의 첫 상업연극인데, 무엇보다 가장 신경 쓴 것은 재미였다. 메시지에 치우치다 보면 너무 무거워지고 이것저것 다 놓칠 것만 같았다. 돈 주고 재미없는 연극을 보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으니까.

다가진 주변에는 여러 남자들이 등장한다. 어린왕자와 같은 후배 신입변호사 천왕성, 근육질의 섹시한 미남 요리연구가 강건한, 늘 마음속에 간직했던 첫 사랑 오빠 김민섭, 다가진의 절친이자 고민 상담을 들어주는 게이 모델 라이언킴, 웃음을 주는 멀티남 등. 코믹하고 장난스러운 대사 속 곳곳에 웃음 코드를 장치했고,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 속에서도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려는 여성의 자아 찾기라는 사회적 메시지도 담으려고 노력했다. 부자든 가난뱅이든 여자는 그저 남자에게 기대고 명품백이나 바라는 속물처럼 비춰진 현실은 정말 아니지 않나?

공연 전 코스 식사를 먼저 즐긴 후 1시간 10분 동안 극을 즐기는 것으로 순서를 꾸몄다. 어떤 면으로는 참 특이한 시도인데, 다행히 공연이 오르는 무대인 '슬로우 시티' 식당 측은 이런 콘셉트에 대해 잘 이해주었고, 흔쾌히 무대를 빌려주었다.

직접 기획하고 대본 쓰고 연출 하면서 고민도 많았지만, 결과물은 썩 만족스럽게 나온 것 같아 다행이다. 다행히 공연을 준비하면서 리허설을 본 주변 분들의 평가가 좋아 일단 한숨을 돌린 것 같다. 곧 무대에서 여러 관객들을 만날 <다가진 여자>는 개그콘서트보다 재미있을 것이라고 자부하고 싶다.

주인공 다가진의 좌충우돌 사랑쟁취기를 통해 골드미스라는 용어도 재정립이 되었으면 좋겠다. 골드미스는 속물 김치녀, 나이만 먹은 노처녀, 소비욕만 높은 미스들이 아니니까. 골드미스는 자기 삶을 개척해 가는 진짜 여자를 일컫는 용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삶의 주인공이고 싶은 대한민국 모든 여성과 그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갈 남성에게 연극 <다가진 여자>를 감히 추천한다. 대한민국 골드미스 화이팅! /조윤서 거목엔터테인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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