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9000억원대의 기업비리로 구속기소된 현재현(65) 동양그룹 회장이 27일 법정에 출석해 사죄의 말을 전하면서도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친 것"이라는 변명을 내놨다.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위현석) 심리로 열린 현 회장 등에 대한 첫 공판에서 현 회장은 "그룹 회장으로서 신속한 구조조정이 필요했는데도 불구하고 상황을 낙관해 구조조정 시기를 놓쳐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며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자들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 회장의 발언은 구조조정 실패로 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 '경영상의 책임'은 인정하지만 투자자들을 속이려는 의도로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판매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내포된 것으로 풀이된다.

   
▲ 검찰이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의혹을 받고 있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을 세번째 소환한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중앙지방검찰청으로 현 회장이 들어서고 있다./뉴시스

현 회장 측 변호인 역시 "경영 실패에 따른 형사책임은 겸허히 받아들이겠지만 기업이 도산한 것을 두고 사기죄의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무리하다"며 "재판부의 면밀한 검토를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어려움에 빠진 기업은 회생을 노력하기보다 부도를 선택하는 것이 옳고, 회생을 위한 기업활동을 계속하면 사기죄가 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사기성 CP 및 회사채 발행 혐의와 관련해 "당시 계열사 일부를 매각하면 CP를 전액 회수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계열사 매각과 관련한 협상이 결렬되기 전까지는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등 변제를 위한 노력을 다 했다"며 "처음부터 속이려는 의도로 CP를 판매했다는 사기 혐의는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현 회장이 계열사에 자금을 부당지원해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계열사가 잘못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모기업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당장의 자금 지원으로 손해를 봤다고 해도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모 회사의 이익을 위해 자금을 지원한 것이라고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법정에는 현 회장의 재판을 방청하기 위한 동양 사태 피해자 100여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현 회장이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자 고성을 지르거나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재판장의 강력한 경고로 심리는 원활하게 진행됐다.

다만 오전 재판을 지켜본 이들은 "아무도 사기를 인정하지 않는다", "변호인들이 양심도 없이 변론을 하고 있다"며 욕설과 함께 휴정된 법정에서 잠시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미디어펜=장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