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산업 혁명당시의 노동법 답습 획일적 틀 족쇄 작용 불보듯
   
▲ 이동응 경총 전무
과거 증기기관이 등장하고 공장제 생산시스템의 혁신이 일어나던 18세기 무렵,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은 신분과 일자리에서부터 먹고 자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부분이 바뀌는 혼란스럽고 따라잡기 어려운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놓여있었다. 이전에 지켜지던 규범과 관습들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었다.

1884년 토인비는 그 시대의 변화를 "산업혁명"이라고 일컬었다. 그 혼돈과 격변의 시대에 열악한 공장에서 급여를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태동한 법체계가 바로 노동법이었다. 당시 영국의 공장법과 아동노동보호법이 노동법의 시작이라고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다시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한다. 인공지능의 등장, 네트워크를 통한 실시간 정보획득과 교환, 생산 자동화, 모든 생산장비와 생활용품이 인터넷을 통해 연동되는 사물인터넷 등 기술의 급격한 변화는 사람들의 일자리와 먹고 자는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시스템까지 같은 속도로 변화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 시대에 토인비가 살아있었으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조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진행 양상이 어떻게 될지, 구체적으로 어떠한 변화가 초래되고 또 우리 인류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 갈지에 대해 아직은 뚜렷하게 답할 수 없다. 하지만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아도 이미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하는 장소와 상관없이 사용자와 근로자, 근로자와 근로자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간대가 다른 외국 기업과의 원격 화상 회의는 이미 익숙한 장면이고, 엄청난 넓이와 규모를 자랑하는 생산시설 내에 근로자가 거의 없는 자동화된 생산시설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특정한 기능을 보유한 근로자가 여러 사용자와 계약을 맺고 각각의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도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노동법 체계는 여전히 1차 산업혁명 당시의 이념을 그대로 바닥에 깔고 있다. 정해진 시간에 같은 공장에 모여 같은 일을 하는 것을 전제로,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고 같이 쉬어야 한다고, 오래 일할수록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던 시대에 만들어졌던 법률체계와 해석론이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 세계는 4차산업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우리의 노동법 체계는 여전히 1차 산업혁명 당시의 이념을 그대로 바닥에 깔고 있다. 사진은 '4차 산업혁명이 바꿀 대한민국 미래를 대비하라'는 미디어펜 '2016 신성장동력 플러스 포럼'. /사진=미디어펜

현재 확산되고 있는 "일하는 방식"만 생각해보아도 지금의 노동법제는 시대적 요구와 동떨어진 낡은 틀이며, 낡은 규제가 되었다. 일률적인 근로시간, 임금산정 및 지급 방법을 규정하고 있으며, 하나의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이라는 획일적인 틀로 사업장 전체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통일적으로 규율하려 하는 근로기준법 등 기존 노동법체계는 오히려 보호가 아닌 족쇄로 전락하고 있다.

노동법은 더 다양한 종류의 근로자와 그만큼 더 다양한 근로제공 방식에 적용될 수 있도록 유연화 되고 세분화 되어야 하며, 획일성과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에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문제를 규율할 수 있도록 혁신되어 나가야 한다.

단순히 노동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근로자 범위의 확대, 사용자 개념 확대와 같은 임시방편적인 변용을 주장하는 것은 법률의 현실 부적응 문제를 더 확대할 뿐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새로운 노동법체계의 등장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최저 근로기준의 일률적 강제라는 통제 일변도의 노동법에서 벗어나서 사용자와 개별 근로자 각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초한 다양한 근로조건 및 일하는 방식 설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규제적 관점의 '기준법' 이외에 계약의 성립과 형성, 종료라는 자유의사의 합치를 중시하는 관점의 '노동계약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일본 노동계약법이 아무도 예상 못한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계약'의 관점이 부각되어야 한다는 점, 근로조건 및 일하는 방식의 다양성 확대가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하다.

독일 등 유럽의 나라들도 근로계약법 제정을 이미 검토했고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과 독일은 제4차 산업혁명 도래에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체계적으로 계획을 수립하여 세계적 흐름을 선도하고 있는 나라들이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논의, 노사관계 개선을 위한 논의, 일자리 확대를 위한 논의 등 무수한 사회적 대화와 시도들이 왜 번번이 실패하거나 용두사미로 끝나고 마는가? 현재의 노동법 및 노사관계 시스템에 관한 근본적인 회의와 전면적인 재구축이 필요한데, 이를 외면하면서 익숙한 기존의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부분수정만을 하려고 고집하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까지 지키고 다듬어 온 옛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 근로기준법을 통한 근로조건의 획일적 통제를 느슨하게 만들어 근로계약 당사자들이 다양한 근로계약의 모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유연성을 점차 확대하여 노동법이 이제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근로계약 형태, 새로운 근로제공 방식에 대해 적용될 수 있도록 새로운 관점으로 재구성 되는 데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러한 노동법의 변화를 후대에 어느 역사가가 노동법 4.0이라고 부를지도 모를 일이다. /이동응 경총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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