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출입처 변경탓 전문기자보단 범용기자 양산...보도자료 베끼지보도 관행

   
▲ 황근 선문대교수
요즈음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동영상이 이른바 ‘오바마 한국기자’라는 동영상이다. 이는 지난 1월에 EBS가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라는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다른 다큐멘터리 중에 한 부분이다. 내용은 지난 2010년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G20 정상회담 마지막 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장에서 있었던 한국기자들의 굴욕적인 침묵을 보여주는 것이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이 여러 번 한국말로 해도 좋다고 했지만 결국 그 자리에 있던 한국기자들 누구도 한마디 질문도 못한 사건이다.


이 동영상을 보면서 누구나 ‘아 한국 기자들이 영어를 전혀 못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언론사 설립이 자유로워지고 인터넷 매체가 발달하면서, 전통적인 일간신문이나 방송기자들 이외에도 기자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주요 일간신문사나 지상파방송을 비롯한 주요 언론사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엄청난 경쟁을 거쳐야 한다. 때문에 그 자리에 있었던 기자 모두가 영어실력이 부족해 그랬다고 단정적으로 결론내리기는 어렵다. 더구나 교과서로 영어배운 우리세대와 달리 지금 젊은 세대들은 실용영어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주요일간신문이나 지상파방송의 젊은 기자들 중에는 영어를 거의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으로 잘하는 사람들도 많다.
 

   
▲ 한국언론사의 기자들은 전문성이 결여돼 있다. 출업처를 자주 바꾸는 순환근무형태가 관행화되면서 기자들이 특정분야에서 전문성을 심화시킬 기회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EBS가 기획한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지난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회의에서 오바마대통령이 한국기자들과 기자회견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바마대통령이 한국기자들에게 무엇이든지 물어보라고 했지만, 한국기자들은 한마디도 질문하지 못했다. 전문성이 결여된 한국기자들의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오바마대통령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기간에 박근혜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총리간 3자회동을 하고 있다. 박근혜대통령과 아베총리간의 냉랭한 관계를 풀어보려는 오바마의 고심이 드러나 보인다.

그러면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난 것일까? 그것은 기자라는 사람들의 직업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대부분 주요 언론사 기자들은 전문기자형태가 아니다. 초보시절부터 베테랑이 될 때까지 각자 전문 취재 분야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매년 소속부서나 출입처가 바뀌는 이른바 순환근무 형태에 익숙해져 있다. 때문에 10년 이상 20년 가까이 기자로 근무해도 어느 분야에 더 많이 근무한 기자는 있어도 특정분야에 정통한 기자는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굳이 전문기자라고 한다면 아마 스포츠전문기자 정도일 것이다. 이외에도 과학전문기자나 의학전문기자 그리고 국방전문기자 같은 것들이 최근 들어 나타나고 있지만 몇몇 특정 언론사들이 예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고 일반화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누군가 냉소적으로 ‘우리 방송기자 중에 전문기자는 기상 캐스터 밖에 없다’고 한 말도 기억난다. 물론 최근 들어 사회가 분화되고 전문성이 요구되면서 기자의 전문분야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전히 전반적인 분위기는 specialist가 아닌 generalist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 언론사들은 오래전부터 기자도 철저히 전문화되어 있다. 취재 분야뿐 아니라 심지어 출입처까지 특정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백악관을 오래 출입한 기자는 아침에 백악관 경비원 표정만 보아도 동물적으로 무슨 일이 있는지 감이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사건이 터지게 되면, 확실한 취재원에게 접근해 정확하고 심도 높은 보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분야 기자생활을 20~30년 하게 되면 이른바 ‘대기자’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때문에 이들 대기자들은 해당분야 연구자나 교수들보다 훨씬 많은 정보와 판단력을 갖추고 있어, 대학교수가 주도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선진국에는 전문분야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컬럼리스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성이 결여된 우리 언론풍토 때문에 우리 언론의 고질적인 병폐라 할 수 있는 이른바 ‘발표저널리즘’이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발표저널리즘’이란 정부부처나 기관들의 대변인 발표나 보도자료(press release)를 기자들이 그대로 받아서 보도하는 것을 말한다. 더구나 최근에는 이런 자료들이 파일로 제공되어, 모든 언론보도들이 토씨까지 거의 똑같은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풍토에서 기자들이 취재원들을 직접 접촉하고 사건을 분석해서 기사를 작성하는 분위기는 결코 활성화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정부부처나 기업들의 대변인 혹은 PR담당자의 주된 역할은 기자들에게 기사를 잘 작성해 주고, 제공된 기사가 언론에 그대로 실리도록 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분위기에서 출입기자들 사이에는 이른바 특종을 하려는 의욕보다 출입처에서 제공된 뉴스거리를 자기만 홀로 빠트리는 낙종만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공모의식이 조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 오바마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한국기자들의 굴욕적 모습은 이 같은 대한민국 언론의 씁쓸한 구조적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내준 장면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분야에 정통한 전문기자도 나올 수 없고, 창의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기자는 모든 분야를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 어느 분야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후 사회 여러 분야에서 실직자들이 양산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재활용할 수 없는 실직자가 은행원과 기자였다’라는 한 교육기관 종사자의 말이 지나친 과장이 아니었던 것 같다.

또 이번 기자회견 굴욕을 보면서, ‘워싱턴 특파원이나 파리특파원이 하는 일은 본사 국제부에서 보내준 기사를 백악관 뒤뜰과 몽마르트 언덕에서 바바리 코트입고 읽는 것’이라는 대학시절 국제커뮤니케이션 수업시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나는 건 왜 일까? 세상은 점점 분화되고 전문화되는데, 우리 언론은 이런 시대추세에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래서 전문성이 부족한 언론인들이 역시 전문성이 별로 필요 없는 정치권으로 자꾸 진출하는 것은 아닐까? /황근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