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지난 2012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 경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경쟁하던 손학규 김두관 후보가 경선 보이콧을 선언한 사실이 있다. 경선 때마다 그 방식을 놓고 갈등이 고조되기 마련이지만, 특히 그해 처음 도입된 모바일(ARS) 투표에 대한 반발이 극심했다. 신원확인과 대리등록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ARS투표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후보들의 불만을 키웠다.

당시 ARS투표에 대한 불신은 경선 패배에 승복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고, 꽤 오랫동안 민주당 내부의 자중지란을 만들어냈다. 문재인 당대표 시절 안철수 박지원 김한길 의원 등의 탈당으로 지금의 국민의당을 만들어낸 것이 불과 1년 반 전의 일이다. 

이때부터 문재인 전 대표에게 ‘패권’라는 딱지가 붙었다. 민주당의 패권 논란은 최근까지도 손학규 김종인 의원의 탈당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17년 5월9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첫 경선투표에서 또다시 경선 참사를 겪고 있다.

첫 경선투표에서 결과가 사전 유출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전국동시투표의 결과는 각 권역별 경선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공개되어선 안된다. 더구나 민주당 경선 선거인단은 무려 214만명에 육박해 이번 논란의 파장이 클 전망이다.

문제는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후보나 당지도부가 후속대책에 무관심했던 데 있다. 분당의 아픔을 겪고도 아무런 사후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은 큰 문제인데도 이번에 오히려 문 전 대표는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보였으니 이번 일은 예고된 참사인 셈이다.

어떤 대결이든 패자가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갖춘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이다. 그렇다면 문 전 대표는 자신의 패권 유지를 위해서는 당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문 전 대표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23일 전주 전북도의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나고 보면 룰은 언제나 아쉬움이 있다. 개표가 되면 참관인들이 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조금씩은 유출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경선이 축제의 장이 되고 있는데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까지 말했다.  

   
▲ 더불어민주당 19대 대선후보를 뽑는 첫 경선투표에서 결과가 사전 유출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전국동시투표의 결과는 각 권역별 경선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공개되어선 안된다. 더구나 민주당 경선 선거인단은 무려 214만명에 육박해 이번 논란의 파장이 클 전망이다./사진=미디어펜

이런 발언에 역시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안희정 충남지사 측에서 발끈하고 나섰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 겸 안희정캠프 멘토단장은 2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소위 법을 어긴 것 아닌가”라며 문 전 대표의 ‘축제 분위기를 해친다’는 발언을 맹공했다. 

박 의원은 “사안에 대한 분별력의 문제”라면서 문 전 대표의 상황 판단 능력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예를 들면 지난 TV토론에서 ‘전두환 장군’이라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런 것에 대해서도 문 전 대표는 ‘내가 고른 게 아니라 TV토론팀이 해줬다’고 변명했는데 이런식으로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모르는 분별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박 의원은 또 양승조 당 선관위 부위원장이 유출된 자료에 대해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자료’라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없다면 더욱 당에서 조사하고 수사해야 한다. 검찰도 찌라시에 대해 수사하지 않나.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이니까”라고 주장했다.

이런 박 의원의 발언은 ‘문재인 대세론’을 밀고 있는 당 지도부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진다. 그동안 추미애 대표를 비롯한 비롯한 당 지도부가 경선 과정에서 당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통합하는 분위기를 이끌지 못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이번 경선투표 사전유출과 관련해 민주당은 당 차원의 진상조사위를 꾸려 조사한 결과 경기와 대구·경북, 전북 등 민주당 원외 지역위원장 6명이 22일 개표가 끝난 뒤 SNS상에 해당 지역구의 현장투표 결과를 올린 정황이 확인됐다. “문재인캠프 측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 “문재인캠프에서 한 지역을 총괄하는 사람도 있다”라는 당 핵심 관계자의 전언도 흘러나왔다.

당내 대선주자인 안희정 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은 즉각 당 지도부의 사과와 입장 표명을 요구했지만 지도부는 침묵하고 있다. 지난 ‘개헌 보고서 파문’ 때 당 지도부가 보여준 행태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툭하면 당내 갈등을 심화시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정권교체를 하더라도 과연 '대한민국 호'를 반듯하게 이끌 수 있는 통합을 이뤄낼지 우려스럽다는 시각이 많다.

현재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고, 과거 당대표까지 지내 조직력을 갖춘 문재인 후보와 경쟁하는 다른 후보들은 경선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들러리로 전락되는 치욕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주장하는 적폐청산은 이번 민주당 경선투표 결과 사전유출 논란부터 명명백백하게 가려내고 재발방지 조치를 해서 당의 자중지란을 예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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