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하드웨어 안주땐 문화독소 우려, 스마트미디어로 채워야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우리에겐 아직 덩치 콤플렉스가 있나 보다. 덩치가 커야 하고 커면 된다는 대마불사 믿음이다. 비관련 다각화 문어발 확장을 해서라도 대기업 그룹으로 가야 웬만한 외풍에도 끄떡없다는 오랜 신념이 뿌린 대마불사 착시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자동차 소비만 봐도 미국 캘리포니아 못지않다. 강남 국민차가 된 BMW, 벤츠도 소형보다는 준중형, 그보다는 중대형 위주다. 어떤 수입차 SUV는 육중한 외관이라 서울 도심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편인데도 한국에선 유독 씽씽 팔린다고 한다. 한 덩치 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독한 외형 콤플렉스가 어느새 문화, 예술, 미디어 공간마저 헤집어 놓고 말았다. 지난 3월 21일 문을 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비친 대마불사 콤플렉스 얼룩들을 세척해본다.

DDP는 소원을 이루게 해준 불시착 우주선답다. 둘러보면 우리가 꿈을 이뤄가고 있구나 하며 흥분할 정도다. 파리 퐁피두 센터 투명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기분보다 낫고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층계보다 다니기 편하다. 뉴욕 MOMA를 능가하는 세련된 뭔가도 있고 스미소니언에는 없는 젊은 북적임도 향긋하다. 모두 모두 내나라 내 땅이어서 그러리라. 바로 우리 앞마당 동대문에 세계적인 건물이 들어섰으니 뿌듯하고 대견하고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내가 가본 평일에도 돌아다니는 내내 수많은 외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서울에는 있다. 우리 베이징에는 이런 곳이 없다”며 감탄했다는 중국인 요우커들도 무척 많았다. 명동 쇼핑객, 인사동 구경꾼들을 죄다 동대문에 옮겨 놓은 듯했다. 한국 와서 짧은 일정에 업무 보고 DDP 탐방에 나선 듯 한 외국인 넥타이 부대들도 많았고.

이보다 더 대박인 것은 동대문 하면 떠오르는 킬러 콘텐츠인 패션 무대를 수놓은 토종 청춘들이다. 정면 입구에 놓인 Seoul Fashion Week 입간판 앞에서 인증 샷 찍는 친구들은 패션 프로 암(pro-am)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서툰 행색이 아마추어요 학생인 듯하지만 DDP를 들었다 놨다 호령할 프로페셔널로서 가능성을 품고 프로를 지향하는 아마추어, 프로 암(pro-am) 꿈나무들이다. 이른바 창조계급(creative class)으로 성장하여 미래 창조경제를 떠받칠 주인공이 될 터이다. 이렇게 옷 잘 입는 패셔니스타들 하얀 양말, 남자 치마, 오색 스카프들 사이를 온종일 기분 좋게 헤쳐 다니면서 드디어 그리운 내 님, 우리 국보와 만났다. 

   
▲ 동대문 DDP가 패션메카로 부상하면서 서울의 랜드마크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시가 하드웨어적 대마불사신화에 안주해 DDP를 운영한다면 문화적 맹신과 독소에 빠질 수도 있다. 불시착한 우주선같은 크고 화려한 위용의 DDP에는 스마트 미디어적 명품콘텐츠로 그 속을 채워야 한다.
 

간송미술관. DDP로 봄나들이 온 혜원 겸재 현재 추사 고려청자 훈민정음 그리고 간송 전형필과 어울리다보니 컬처 하이(culture high) 감격이 절로 솟구쳤다. 1년에 두 번 가을에 한 번 한글날 즈음에 문 여는 성북동 간송미술관이라 그토록 보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던 수많은 애호가들이 DDP라는 고래뱃속에서 국민 된 호사를 누리게 된 스토리다. 마라토너 전매특허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전시보고 전설에 전율하는 갤러리들이 받는 컬처 하이(culture high)로 고스란히 증폭되는 현장이었다.

게다가 이런 호사와 잔치를 더 잘 받쳐주는 문화마케팅도 빛났다. 삼성 UHDTV가 DDP 간송특별전 동선 모퉁이와 여백마다 재창조해서 되살리고 있는 복원 영상은 살아있는 미술관 탄생을 실현했다. 미인도 화가 신윤복 화첩 진품이 A4지 만큼이나 작고 보느라 줄 서고 모여든 이가 너무 많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아쉬움을 대형 곡면 초고화질 스크린이 위무하고 반전시켜주었다.

복분자색 마냥 입힌 조선 미인 치마와 오방색 스쳐간 머리 장식을 크게 띄우고 흘려보내는 TV를 응시하노라면 시간여행이나 미학적 커뮤니케이션 절정감이 들어온다. 반하고 만다. 모두 다 한국의 역작이다. 우리 뿌리 우리 혈세로 만든 거대한 불시착 우주선 DDP 위용이 대단하다.

그렇게 흠뻑 빠졌다 나오면서 덜컥 엄습하는 염려가 있다. 이제 100일도 안된 갓 난 DDP가 앞으로 어떤 명물 명소가 될 것인가? 과연 모두가 바라는 대로 서울 동쪽을 살리는 랜드마크가 될 텐가? 아니면 괴상한 애물단지로 주저앉을 것인가? 누구라도 함부로 답하고 예단할 순 없겠지만 눈부신 성공을 하려면 하나 뚜렷한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DDP를 매만지고 운영하며 이끌어갈 서울시 해당 조직과 왕림하는 이용자들 DNA에 찍힌 잘못된 대마불사 착각을 지워야만 한다는 조건이다.

DDP가 너무 커서 그렇다는 빈축이 아니다. 문제는 하드웨어가 크고 비싸고 화려하면 그것으로 만사 오케이라는 컬처럴 해저드(cultural hazard)다. 문화적 맹신과 위험이 독소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 사례가 많다. 광화문으로 온 국립현대미술관. 옛 기무사 터에 건립된 이 관제 랜드마크는 최고 요지에 있고 비싼 국고를 썼지만 생각만큼 강력하지 않다. 미술품 콘텐츠, 즉 소프트웨어가 시작부터 편파적이고 빈약했다는 평이다.

거기서 몇 걸음 5분이면 국립민속박물관이 나오고 20여분 거리에 서울역사박물관도 있다. 옛 문화부 자리 대한민국역사관도 코앞이다. 시인 이상이 마실 나왔던 서울역 건물도 전시, 회의 공간으로 되살아났다. 너무 많고 크지 않은가? 좁은 나라 한국 서울 도심에 지나친 난개발 아닌가? 1년에 2번 문 열고 기진맥진한 사립미술관 간송을 여태껏 국립, 시립들은 왜 품지 못했나? 직무유기 아닌가 할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하드웨어 중심 대마불사 의식이 불러온 겉도는 행정이었다. DDP가 하기 이전에 광화문이나 경희궁, 용산, 서울역이 뿌리깊은나무 간송을 진작 모셨어야 했다.

만시지탄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4000억원, 5000억원 쓰는 대마불사 비용이 곧 랜드마크로 직진한다는 보장은 아무데도 없다. 국민은 믿고 맡긴다지만 건축가도 이용객들도 만족도가 떨어지는 문제적 관제 랜드마크가 일단 들어서면 돌이킬 방법이 없다. 국민과 시민이 선택할 권리를 막고 탄생한 랜드마크라면 한낱 작가주의나 공무원 실수가 엄청난 비문화, 반문화 사례를 남길 수 있다.

숭례문, 광화문처럼. 복원 과정도 아니고 다 짓고 나서 들통 나 반성문이나 쓰는 한심한 시스템이 바로 우리들 실력이다. 황우석박사 특종도 하고 검찰총장 특종도 하던 그 잘 생긴 대한민국 언론들은 죄다 어디 가 있었나? 숭례문, 광화문 갖고 그런 장난치는 이들도 문제지만 떡 하니 새 구조물 만들면 된다는 우리 국민들 마음 속 대마불사 응어리가 결국 화근이었다. 장난쳐 속 곪은 숭례문, 광화문은 솔직히 랜드마크인가, 애물단지인가?

DDP도 열외는 아니다. 그 자리가 운동장이었기 때문에 스토리나 역사성이 더 딸린다는 지적도 있다. 패션클러스터를 반영한 디자인 주제가 채택되었지만 사실 한국 패션, 디자인, 뷰티산업은 글로벌 변방이고 하청 하급 이미지가 강하다. 스스로 디자인 자원으로 명소가 되기는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 기존 국립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에 더 어울릴 간송특별전을 선점해 기획했지 싶다. 만일 대형 이벤트로 초기 흥행에 성공하면 된다는 구상이었다면 이 역시 애물단지로 직행하는 대마불사 신념 재탕이 된다. 간송은 슬퍼할 테고.
 

이런 우려를 막을 유일한 방법은 DDP를 스마트 미디어로, 그 속을 채울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을 명품 콘텐츠로 인식하는 접근이다. UHD TV가 간송을 재생하고 홀로그램이 싸이, 빅뱅 상설 공연을 책임지는 노하우가 스마트 미디어 속 명품 콘텐츠다. 이건 대마불사가 아니라 마이크로 메이킹, 즉 정밀한 창작이다. 공간 크기나 첨단 시설 화려함 따위는 무시하는 철저한 내실 다지기요 실사구시다. DDP가 어서 판교 게임밸리 노하우나 파주 출판단지 품격, 부산 영상도시 활력을 전용회선으로 연결하고 끌어와야 한다. 한국 최고를 모으는 현명한 운영을 해주기 바란다. 미디어, 콘텐츠, 한류에 한국 최고 세계 일류가 모여 있다. 이래야만 동대문 와서 남산타워 먼 산만 바라보게 하는 애물단지가 아니 될 수 있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