쫀득쫀득 찰지고 고소..조황좋지 않을 땐 농땡이 선상 술판 흥취

   
▲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 <나는 낚시다>저자, 문학평론가
문향(文香)과 스토리가 있는 하응백의 낚시여행(5)-진해 도다리 낚시

제철 음식이 맛있다고들 한다. 봄에는 산에 들에 돋아나는 쑥이나 냉이 같은 봄나물이, 가을에는 온갖 곡식과 과일이 맛있다. 물고기도 맛있는 철이 있다. 흔히 가을에는 전어가 봄에는 도다리가 맛있다고들 한다. 실제로 광어 같은 경우에는 봄보다는 가을 이후에 살이 찰지고 맛있다. 요즘 TV 방송에 도다리가 많이 나온다. 갓 올라온 쑥과 요즘 잡히는 도다리로 도다리쑥국을 끊이면 그 맛이 기가 막히다는데, 그렇다면 도다리를 잡으러 가야지.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새벽 두 시에 친구 둘과 만나 진해로 향한다. 예전에는 진해시였지만 창원과 통합되면서 창원시 진해구가 된 곳. 벚꽃으로 전국적 명성을 얻은 곳. 낚시꾼들은 갑자기 만개한 벚꽃에도, 군항제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도다리를 어떻게 잡을까 하고 궁리한다. 우리가 아는 도다리는 원래 도다리가 아니다. 정식 명칭은 문치가자미다. 도다리라는 고기는 따로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문치가자미를 도다리라고 부르니 문치가자미가 도다리다.
 

도다리를 잡는 방법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목포나 여수 쪽에서는 배를 김 양식장 같은 곳에 고정시키고 20호 정도 봉돌 달아 던져놓고 초릿대의 움직임을 주시하다가 입질이 오면 잡아내는 낚시다. 몇 대를 편성해서 조과를 배가시키기도 한다. 남해 동부권이나 동해 남부권에서는 배에서 수직으로 내린 다음 고패질을 통해 잡아내는 낚시다. 경험적으로 보면 목포권 도다리가 씨알이 크다.

진해에 도착해서 진주에서 온 친구 한 명과 합류해서 일행 4명은 24시간 진해 명동에 있는 24시 해장국집으로 간다. 젊은 남녀들이 몇 테이블 포진해 있다. 새벽까지, 아니 이른 아침까지 마시는 그 에너지가 부럽다. 경상도 여자들의 투박한 사투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낚시점을 들렀다가 진해루를 지나 여객선 터미널 족으로 가서 낚싯배를 탄다.

   
 진해 앞바다의 일출. 육지에서 해가 떠오른다.

 배는 30분 정도 통영 방향으로 나아간다. 게으른 해가 이제야 올라온다. 진해 앞바다에 있으면 온 사방으로 산에 둘러쌓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북쪽으로는 육지가 남쪽으로는 거제도를 비롯한 여러 섬들이 포진해 있어 바다란 느낌 보다는 큰 호수라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는 것이다. 진해에 왜 군항이 들어섰는지 이해가 간다. 이 진해와 마산 앞바다는 물살이 잔잔하고 파도가 약해 여러 물고기들의 산란장으로는 안성맞춤인 모양이다. 봄에는 도다리, 여름에는 백조기, 가을에는 갈치가 잘 잡힌다. 주꾸미와 쥐노래미도 단골 손님 중의 하나다.

그래서 수십 척의 낚싯배들이 계절마다 특정한 어종을 노리고 출조한다. 선비도 5만~6만원 선으로 비교적 싸다. 배가 멀리 나가지 않고, 파도도 비교적 약한 곳에서 낚시하기에 야유회 겸해서 직장 동료들, 가족들끼리 많이 출조한다. 이른바 ‘생활낚시’의 현장이다. 한 가지 흠이라면 이곳에서 잡히는 고기들은 씨알이 좀 잘다. 때문에 전문 낚시꾼들은 진해만을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떠랴. 씨알이 좀 잘면 어떠랴. 봄 바다에 덩실대면서 몇 마리 봄도다리를 잡아 친구들과 더불어 회에 소주 한 잔 하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이른바 상춘(賞春) 낚시가 바로 진해 앞바다의 봄 도다리 낚시인 것이다.

 

   
    내 도다리 어때요?

채비를 담그자 바로 입질이 온다. 도다리 입질이 아니다. 20호 봉돌을 달고 루어 낚싯대로 낚시를 하니 제법 손맛이 좋다. 올라오니 쥐노래미다. 쥐노래미도 횟감으로 훌륭하다. 한 마리 잡이서 배에 설치된 살림망에 담아 둔다. 그리고는 입질이 없다. 한참 만에 드디어 올해의 첫 도다리를 걸어 올린다. 친구들도 몇 마리씩 걷어 올린다. 모으니 양이 제법 나온다. 그럼 신선놀음을 즐기자.

   
  한 마리 잡으면 친구도 찍고 선장도 찍고. 위장모 쓴 사람이 선장.

회를 치려고 준비하니, 선장이 다가와 젓가락 신공(神工)을 아느냐고 묻는다. 금시초문이다. 그러더니 시범을 보여준다. 도다리를 먼저 대가리와 내장 부분을 분리한다. 남은 몸통에서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사실 가자미나 작은 도다리 같은 물고기 껍질 벗기기가 가장 난해하다. 선장은 몸통만 남은 가자미를 들고 등지느러미 부분으로 젓가락을 집어넣는다. 그랬더니 쉽게 껍질과 살이 분리된다. 아래쪽도, 반대쪽도 그렇게 하니 뼈회를 바로 칠 수 있는 먹음직스런 도다리가 남았다. 선장의 가르침대로 해보았더니 별로 어렵지 않았다. 역시 신공이다. 생활의 지혜다.

   
 먹기 직전의 도다리 회.

그렇게 회를 쳐서 친구들과 한 판을 벌인다. 먹기 전에 한 장 찰칵. 역시 봄 도다리 맛은 명불허전이다. 쫀득쫀득 찰지면서 고소하다. 이런 맛을 보다보면 횟집에 가서 회를 못 먹는다. 횟집 주인들은 말한다. 양식과 자연산 맛이 별 차이가 없다고. 오히려 영양 면에서는 양식이 더 우수하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 제철에 잡아먹는 자연산의 맛을 어디 양식과 비교하랴. 그것은 자연산 봄도다리를 모욕하는 말이다. 그렇게 일행은 봄날 바다 위의 양광(陽光)에서 봄도다리를 즐긴다.

 

   
봄 햇살을 즐기면서 회와 소주 한 잔.

가끔 선상에서 한 잔하고 나면 고기 욕심이 없어지는 날이 있다. 날씨 좋고 파도가 없을 때 그리고 조황이 별로 좋지 않을 때가 그렇다. 어차피 열심히 낚시해봐야 시원찮은 조과가 예상될 경우 차라리 마음을 비우는 것이 상책이다. 농땡이를 치면서 봄 바다를 감상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배 앞쪽에서도 술판이 벌어져 벌써 점심 무렵에는 고주망태가 된 사람도 있다. 선실에 들어가 노래를 흥얼거리더니 곧 잠이 든다. 바로 이런 풍경이 진해 앞바다 낚시의 일상적 모습이다. 다들 큰 욕심이 없으니 몇 마리 물고기에 만족하고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열기낚시나 갈치낚시의 전투성에 비하면 오히려 편안한 낚시다.

바다를 보니 조그만 어선 한 척이 떠 있다. 어부 혼자 줄낚시로 도다리를 낚고 있다. 편안하게 보인다. 나의 꿈도 저것이었을까? 바닷가에서 조그만 배 한 척 마련해 낚시를 즐기는 것. 저 어부는 생계를 위해 필사적으로 고기를 잡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어부에게 조금 미안해지기도 한다.

 

   
 어선 한 척. 어부 혼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젓가락 신공을 보여준 친절한 선장님.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선장이 솜씨를 발휘해 멋들어진 선상 오찬을 차렸다. 회와 회무침, 각종 해산물이 곁들여졌다. 모두 시장한지라 맛있게들 식사를 한다. 이 식사 한 끼가 선비를 상회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진해의 거의 모든 배들이 이런 점심 식사를 내놓는다. 조과가 먼 바다에 비할 수 없으니 이런 서비스로 손님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낚시배 선장도 고기잡는 포인트도 잘 알아야 하고 이렇게 요리 솜씨도 있어야 하니, 쉬운 직업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하기야 어디 쉬운 직업이 있으랴.

 

   
 선장이 차린 근사한 오찬. 각종 해산물과 회가 푸짐하다.

오후 2시 무렵 배는 철수 준비를 한다. 항구에 들어오니 3시. 회를 먹고 잡은 손바닥만한 도다리 네 마리가 남은 조과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도다리쑥국을 먹기에는. 하지만 뭔가 아쉬운 일행은 수산센터에 들렀다. 멍게가 많다. 1킬로에 4000원이란다. 싸다. 몇 킬로를 사서 아이스박스에 담는다. 농산물도 그렇지만 해산물도 대개 쌀 때가 맛도 좋은 것이다. 친구와 교대로 200킬로미터씩 운전을 하며 가볍게 서울로 향한다.

 

   
도다리쑥국.

멍게 비빔밥에 도다리쑥국이 오늘 저녁 우리 가족의 만찬이 될 것이다.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 문학평론가, <나는 낚시다>저자